조희팔의 세 명의 내연녀 중 가장 신임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김 씨(55)는 지난 9일 조희팔로부터 10억 원의 은닉자금을 제공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사진은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김 씨가 대구지방법원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전국 49개 센터의 다단계 사업을 운영하던 조희팔은 2008년 11월 3일 잠적했다. (주)티투의 대표이사이자 서울·경기·인천·서산 지역 총책을 지낸 김근호 전 경영고문(48)이 주도한 1차 밀항 실패부터 조희팔이 양아들로 삼았던 부산 지역 조폭 출신 조 아무개 씨(47)와 생질(조희팔 친누나의 아들) 유 아무개 씨(46)가 주도한 4차 밀항 성공까지 총 37일 동안 내연녀 김 씨(42)와 함께 전국 각지를 돌며 중국 호화 도피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37일 동안 조희팔의 수족 역할을 했던 김 씨, 조희팔의 밀항동행인 홍 아무개 씨는 그가 매 끼니마다 조희팔의 도시락을 챙겨줬다고 얘기한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김 씨의 별명이 ‘몬순이’라는 점이다. 조희팔은 또 다른 내연녀 정 씨, 최근 구속된 김 씨(55)와 김 씨의 외모를 비교하며 그를 몬순이라 불렀다고 한다. 골프장 캐디 출신인 김 씨는 조희팔과 자주 라운딩을 즐겼으며, 부산시 수영구 광안동에 위치한 한 단란주점에도 자주 동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단란주점 관계자는 “조희팔은 가게를 찾을 때마다 접대여성을 바꿔가며 마약과 섹스를 즐겼다”면서 “조희팔의 하룻밤 상대마저 못 마땅히 여긴 김 씨가 자주 접대여성들에게 시비를 걸었다”고 회상했다.
홍 씨의 증언에 따르면 조희팔이 마검포항(충남 태안군)에서 중국으로 밀항하기 직전 김 씨에게 정관계 로비 명단과 범죄 수익금의 흐름이 적힌 비밀장부를 건넸다고 한다. 당시 조희팔은 “다른 사람에게도 맡기지 말고, 특히 아버지 같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맡기지 말고, 네가 직접 불에 태우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씨에게 증거 인멸을 지시한 것. 그렇지만 홍 씨는 김 씨에게 정관계 로비명단이 작성된 비밀 수첩은 따로 보관하고 나머지 장부만 소각하도록 지시했었다고 한다. 당시 홍 씨는 김 씨에게 비밀수첩이 목숨값이니 불태우지 말고 갖고 있으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조희팔 사건의 피해자이자 다단계 회사의 실무진이었던 한 관계자는 “조희팔은 전화가 걸려오면 오른팔과 왼팔 격인 강태용이나 김근호가 있더라도 항상 자리를 피해 통화를 했다”면서 “조희팔의 철두철미한 성격으로 봤을 때 김 씨에게 비밀수첩을 줬다는 건 그 어떤 누구보다도 김 씨를 신뢰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 씨의 진술을 확보한 피해자단체의 한 관계자는 “친언니의 여권을 빌려 자주 중국을 오가는 점을 미뤄 아직까지 조희팔과 내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언젠가 조희팔로부터 버림 받을 지도 모르기에 최후의 보루로 비밀수첩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며 “로비 명단에는 국민 모두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정관계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 씨는 조희팔이 밀항한 직후 밀항을 도운 혐의(범인도피죄, 밀항단속법 위반)로 기소돼 지난 2009년 8월 6일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다.
2013년 7월 이후 김 씨의 행방은 묘연했다. 조희팔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2011년 12월 19일에 조희팔과 함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내연녀 김 씨(55)였으며, 장례식 동영상 속에 등장한 내연녀는 정 씨(50)였다. 바른가정경제실천을위한시민연대의 한 관계자는 “2013년까지 김 씨의 거주지와 연락처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김 씨가 개명을 하고 자취를 감췄다”고 밝혔다.
김 씨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가장 유력한 곳은 바로 부산광역시다. 2013년까지 김 씨가 거주했던 곳으로 알려진 지역인 데다 가족들이 여전히 그 인근에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 씨의 가족이 조희팔로부터 아파트와 개인택시 등을 선물 받았다는 소문도 있다.
김 씨의 거주지로 가장 유력하게 알려진 곳은 부산시 수영구 광안동의 한 맨션이다. 이곳에서 2005년 11월 20일부터 2013년 7월 31일까지 실제로 거주했던 김 씨는 지난 2013년 8월 이 맨션을 매각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매입 시점이 김 씨가 조희팔과 교제 중이던 2005년이라는 점이다. 시점만 놓고 보면 소문처럼 조희팔이 선물로 사준 맨션일 수도 있지만 명의자는 김 씨가 아닌 김 씨의 부친이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인물은 바로 김 씨 부친이다. <일요신문>에선 지난 1225호에서 조희팔의 필리핀 리조트 100억 원대 투자설을 보도한 바 있다. 필리핀에 거주 중인 한인들 사이에선 해당 고급 리조트의 투자자가 조희팔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의문의 투자자를 만난 한인은 그를 조희팔의 장인으로 알고 있었다. 그가 ‘조희팔의 장인’이라는 투자자를 만난 시점은 2013년이다. 조희팔이 이혼한 상태로 3명의 내연녀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여기서 언급된 조희팔의 장인은 내연녀의 부친일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김 씨의 부친이 바로 그 의문의 투자자일 수도 있는 것.
김 씨 부친의 행적이 묘연해진 시점은 2012년이다. 김 씨 부친은 부인 명의로 전세를 얻은 김해시 소재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2012년 전세 계약이 만료된 뒤 행적이 묘연하다.
한편 김 씨의 형부인 김 아무개 씨(45)가 조희팔로부터 개인택시를 선물 받았다는 소문도 있다. 김 씨 언니의 집은 김 씨가 2013년까지 거주했던 맨션 바로 인근이었다. 집 부근에서 기자를 만난 김 씨의 형부는 “좋은 일이 아니라 조심스러워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다”면서 조희팔과 김 씨의 관계에 대한 추가 질문에도 “당사자가 아니라 모르겠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피해자단체 측은 “부친 명의로 맨션을 매입하고 회사 택시를 운영하던 형부가 개인택시로 바꾸는 데만 최소 3억 원이 든다”며 “가난한 일가족이 하루아침에 억대 부자가 됐다는 건 조희팔의 선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9일 기자는 김 씨의 이전 연락처를 확보했다. 다행히 김 씨가 연락처를 변경하지 않아 직접 전화 통화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김 씨는 “조희팔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해줄 수 없다”면서 “지금 출근 준비 중이라 바쁘니 전화를 끊겠다”고 말했다. 비밀수첩 소지 여부에 대한 추가 질문에 김 씨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니 더 이상 연락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김 씨는 기자의 연락처를 수신 차단했다. 모바일 메신저로도 몇 차례 문자메시지를 발송했으나 수신 확인만 할 뿐 답장은 보내오지 않았다.
김 씨가 ‘출근 준비 중’이라고 언급한 점을 미뤄 개인 사업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피해자단체의 추측이다. 조희팔의 내연녀 정 씨가 조희팔로부터 화장품 가게를 선물 받았음을 감안할 때 각별히 신임했던 김 씨에게도 가게 하나 정도는 선물해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일각에서는 골프장 캐디 출신이라 아직도 캐디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 명의 내연녀 중 가장 신임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김 씨(55)는 지난 9일 조희팔로부터 10억 원의 은닉자금을 제공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유시혁 기자 evernur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