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취재진과 동행했던 그를 12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새로운 책을 출간하기 위한 작업을 하기 위해 20여 일을 일본을 누비다 돌아왔다. 이재갑 작가는 우리나라 역사 문제를 짚는 국내 몇 안 되는 사진가다. <또 하나의 한국인>이라는 저서를 통해 미군이 떠난 자리에 남은 혼혈인 문제를 다뤘고,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를 통해 일제 강제징용의 현장을 사진과 글을 통해 전했다. 일본에 관한 그의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역사의식보다는 사람 때문에 이어가고 있는 일이다. 미군과 혼혈아를 파다보니 일본이 나왔다. 피해자였던 우리를 돌아보고, 또 우리로 인해 피해 입은 베트남 사람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 모든 주제가 연결고리가 되어 이어져 왔다.”
일본, 혼혈아, 베트남 문제를 고루 다루지만, 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건 일본의 만행과 대조적으로 일본을 지탱하는 양심 있는 사람들이다. 취재진과 동행했던 기무라 씨는 이 작가가 수년째 도움을 받으며 인연을 이어온 일본의 지식인이다.
“일본 전역에 기무라 씨같이 우리 역사를 우리나라보다 더 잘 아는 지식인이 수만 명은 된다. 사진 작업을 하며 정말 놀랐다. 어떤 분들은 우리나라 역사학자들보다 더 많은 자료와 지식을 갖고 있다.”
사진가로서 그는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고 말한다. 소위 ‘업계’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주변에는 NGO 활동가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에 관한 작업에 집중하다보니 ‘마이웨이’를 가게 된 것.
“이 사람들 다 죽고 나면 정말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강제징용 피해자, 위안부 할머니들 다 돌아가시고 나면 일본은 절대 배상 안 한다. 그렇기에 기록하는 게 중요한 거다. 사진으로 남기고, 피해자들을 만나 구술 증언을 받는 이유다.”
소수의 사람들만 관심을 갖는 작업이기에 자금 문제는 항상 그를 따라다닌다. 그렇다고 대대적으로 모금을 하고, 이름을 알렸다가는 작업에 제한이 따를 가능성이 있다. 바른 역사를 알리려 노력하는 일본의 지식인들과 같이 극우세력의 공격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드러나야 하지만 또 드러나선 안 되는 일이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어렵다”고 말한다.
“되돌아보면 꼭 필요한 만큼만 지원을 받았다. 이번 일본 여정도 준비하며 눈앞이 캄캄했지만 때맞춰 작업비로 쓰라며 누군가가 지원을 해줬다. 30년 가까이 사진 작업이 끊이지 않았다는 건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내가 작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내년에는 일본에 사는 우리 민족에 대한 얘기를 다루는 책을 펴낼 예정이다. 강제징용 역사를 다룰 어린이용 서적도 출간 준비 중이다. 그는 “2020년까지 계획이 마련돼 있다”며 웃었다. 그는 힘든 길을 계속 가는 이유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 작업은 끊기는 순간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진다. 그래서 계속 이어가고 있다. 사진가로서, 내가 잘하는 것으로 세상에 도움을 주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그저 좋을 뿐이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