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경영 악화로 범현대가 개입설까지 나오고 있다. 일요신문DB
지난 9일 한 매체를 통해 정부 구조조정 실무회의에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또는 매각 방안을 2차 차관회의 안건으로 상정해 공식 논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회의에서 해수부 측 관계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국적해운사를 2개 체제로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심층분석이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 선사 매각 등 근본 대책도 검토해야 한다”며 강제 구조조정까지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강경한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구조조정 실무회의의 정확한 명칭은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로, 금융위원회가 주축이 돼 산업통상자원부·해양수산부·국토교통부 등 주무부처가 참여하는 회의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정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도 있음을 의미했다.
이러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합병 및 매각설이 불거지자 현대그룹 측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합병과 관련해 정부로부터 어떠한 권유나 통보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금융위와 해수부 역시 공식 해명자료를 통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양사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합병설과 관련해 정부가 자발적 합병을 권유하거나, 강제합병을 추진한 사실이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당사자들의 반박으로 국내 해운업계 1, 2위 기업간 매각·합병설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현대그룹의 위기설은 다시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앞서 지난달 19일 현대증권 인수를 진행해오던 오릭스PE 측은 “현대증권 주식매매계약을 해제한다”고 밝혀 현대증권 매각이 무산됐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은 새로운 자구안을 산업은행에 제출해야 한다.
업계와 언론 등에서는 ‘현대증권 매각을 재추진한다’ ‘부실이 심각한 현대상선 경영권을 포기하고 대신 실적이 좋은 현대증권 매각을 철회, 현대증권과 현대엘리베이터를 지킨다’ ‘현대상선과 현대증권을 모두 매각한다’는 등의 설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그룹의 위기 상황에서 현정은 회장은 아직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가장 큰 문제는 현대그룹이 선택할 수 있는 자구안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기존 자구안에 들어 있었던 현대증권 매각을 재추진하려해도, 산업은행이 현재 진행 중인 대우증권의 매각이 마무리된 후인 내년 하반기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부채가 심각한 현대상선을 포기하려고 해도, 현대상선은 현대그룹에서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고, 규모도 가장 크다. 또한 현대상선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때부터 이어진 그룹의 근간이다.
이에 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을 매각하게 되면 현대그룹의 해체설까지 마주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현대그룹은 그동안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구계획을 세웠지만 현대상선만은 경영권을 내놓거나 매각하려 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현재 현대그룹은 매물로서 매력이 있는 사업 부문은 이미 다 팔아 더 이상 내놓을 것도 마땅히 없는 상황이다.
위기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였을까.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매각·합병설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 11일 보유 중인 계열사의 지분 매각을 통해 자금 확보에 나섰다.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아산 지분 33.79%와 현대엘앤알 지분 49%를 각각 358억 원과 254억 원에 현대엘리베이터에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현대증권 주식 일부와 현대종합연수원의 지분까지 담보로 해 현대엘리베이터로부터 1392억 원을 차입했다.
추가로 외부에서도 차입을 받았는데, 현대상선은 현대증권 주식 전부를 스마트업 유한회사로부터 2500억 원을 빌렸다. 이로써 총 4504억 원을 확보하게 됐다. 현대상선은 이 자금 중 우선적으로 지난해 현대증권 지분을 담보로 산업은행에 빌린 1986억 원을 변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단기차입금은 6527억여 원으로 늘어났다. 또한 내년에 감당해야 할 이자비용과 공모사채 만기 상환, 선박 관련 채무 등에 필요한 비용은 1조 원에 육박한다.
현재의 지분 매각만으로는 급한 불만 끄고 차입금만 늘린 실정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현정은 회장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현대상선은 지난 상반기 기준 부채비율이 880%, 부채는 5조 3880억 원에 이른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