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팍 살해 사건 당시 주변 인물들이 모두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 음모론만 무성했다. 원안은 투팍 소속사 사장 슈그 나이트.
1994년 린치를 당할 때부터, LA 콤튼 중심의 서부 힙합을 대표하던 투팍은 할렘 출신의 동부 힙합에 적대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R&B 힙합 뮤지션이었던 페이스 에반스와 자신이 친밀하게 지내왔다고 주장했는데, 에반스는 ‘비기’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동부 힙합 뮤지션 노터리어스 비아이지의 아내였다. 이후 투팍과 비기 사이의 언쟁과 디스는 이어졌고, 1996년 맨해튼에서 MTV 뮤직 어워즈 행사가 있었을 땐 동부와 서부 래퍼들이 실랑이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긴장 관계는 지속되던 중, 1996년 9월 7일에 투팍 샤커는 슈그 나이트와 함께 라스베이거스의 MGM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마이크 타이슨과 브루스 셀던의 헤비급 타이틀 매치 경기를 보러 간다. 샤커와 타이슨은 자선 행사에서 만나 친구가 된 사이. 경기는 1회에 타이슨의 KO 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이때 나이트의 일행 중 한 명이 경기장 로비에서 올랜도 앤더슨이라는 남자를 발견한다. LA의 콤튼 지역 갱단의 일원인 그는, 1년 전 데쓰 로우 소속 직원에게 강도짓을 한 적이 있었다. 이후 샤커와 나이트를 비롯, 동행했던 데쓰 로우 사람들이 달려가 린치를 가했고 앤더슨은 호텔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이때가 밤 8시 45분이었다.
왼쪽부터 야키 카다피, 노터리어스 비아이지, 올랜도 앤더슨
앤더슨을 손봐준 샤커는 숙소인 룩소 호텔로 가 캐주얼한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위험에 대비해 방탄조끼를 착용하곤 했지만, 그날은 입지 않았다. 이후 일행은 라스베이거스 근처에 있는 나이트의 집으로 가 휴식을 취한 후, 시내에 있는 ‘클럽 662’로 향했다. 그날 밤 타이슨과 샤커는 클럽에서 자선 행사를 열기로 했던 것. 샤커는 무대에 설 예정이었다. 약 10명의 인원이 차를 나눠 타고 이동했다. 샤커가 탄 차는 검은색 750 BMW 세단. 나이트가 운전했고, 샤커는 조수석에 앉았다. 오후 11시 즈음, 그들은 대로에서 경찰에게 저지당한다. 카스테레오 소리가 너무 컸고, 번호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번호판은 트렁크에 있었고, 경찰은 주의를 준 후 그들을 풀어 주었다. 11시 10분,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샤커는 옆 차의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클럽 파티에 초대했다. 그리고 5분 후, 흰색 구형 캐딜락이 샤커의 옆에 붙더니 뒷좌석 창문을 내리고 갑자기 총격을 가했다. 차간 거리는 약 4미터. 총 13발의 총알이 샤커의 차에 명중했고, 샤커는 가슴과 엉덩이와 오른팔과 허벅지 등에 다섯 발의 총알을 맞았다. 나이트는 목 뒤쪽에 파편이 튀어 상처를 입었다.
총격 사건이 있었던 날 MGM 그랜드 호텔에서 마이클 타이슨의 경기를 관람하는 투팍
총격을 마친 캐딜락은 가속 페달을 밟았고, 우회전을 하자 그들을 기다리던 노란색 캐딜락이 있었다. 그들은 함께 도주했다. 타이어 두 개가 펑크 난 상태에서 나이트는 힘껏 유턴을 한 후 도로를 달렸지만 곧 중앙분리대에 부딪혔다. 11시 20분경에 현장에 20명의 경찰이 달려왔고, 샤커와 나이트는 서던네바다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앰뷸런스 안에서 샤커는 “숨쉬기가 힘들다. 곧 죽을 것 같아”라고 힘겹게 말했다.
이후 일주일 동안 샤커는 코마 상태였다. 총알이 관통한 왼쪽 폐는 제거되었고,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잠깐 깨어난 적도 있었다. 약혼녀 키다 존스가 문병했을 때였다. 존스가 돈 맥클린의 ‘빈센트’를 들려주자 투팍은 잠시 의식을 되찾았고, 애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다시 깨어나지 못했고, 1996년 9월 13일 오후 4시 31분에 사망했다. 총상으로 인한 내출혈 과다가 이유였다.
경찰 조사는 많은 의문을 남겼다. 범인을 제대로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옆 자리에 앉았던 슈그 나이트는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고, 경찰은 나이트에게서 사건 해결을 위한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샤커의 차 뒤엔 일행이 탄 차가 뒤따르고 있었는데, 거기엔 객원 래퍼인 야키 카다피가 타고 있었다. 범인의 얼굴을 식별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있었던, 어쩌면 범인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던 카다피. 하지만 그는 경찰에 그 어떤 협조도 하지 않았다. 동행했던 데쓰 로우 레코드의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속사 사장인 슈그 나이트가 꾸민 짓이라는 황당한 설부터, 앙숙이었던 노터리어스 비아이지가 콤튼 지역 갱들을 동원해 저지른 일이라는 그럴 듯한 얘기까지 소문은 무성했다. 호텔 로비에서 맞았던 올랜도 앤더슨이 패거리를 이끌고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경찰에게 제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죽기 시작한 것이다. 유력한 증인이었던 야키 카다피는 투팍이 죽은 지 두 달 후인 1996년 11월 10일에 총에 맞아 죽었다. 겨우 19세였다. 6개월 후인 1997년 3월 9일엔, 노터리어스 비아이지도 총에 맞아 죽었다. 그의 죽음도 의문사였다. 올랜도 앤더슨은 1998년 5월 29일에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이 죽음들은 혹시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고, 21세기가 되어서야 서서히 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음 주엔 그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