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니퍼트
2011년 처음으로 두산 유니폼을 입고 한국 땅을 밟은 니퍼트는 그동안 다승왕도, 방어율왕도, 탈삼진왕도 해본 적이 없다. 같은 시기에 뛰었던 외국인투수들이 하나둘씩 개인 타이틀 트로피를 받아드는 동안, 늘 빈손으로 조용히 집에 돌아갔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새 시즌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다시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잠실구장 마운드에 섰다. 두산에 입단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든 KBO리그 투수들을 통틀어 통산 승리, 방어율, 퀄리티 스타트, 투구이닝, 경기 평균 투구수, 평균 투구이닝, 이닝당 출루허용률 모두 1위에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화려하게 빛난 적은 없어도 그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견고한 에이스 역할을 해왔다는 의미다. 게다가 니퍼트는 이런 성적에 대해서도 “이게 다 두산이 좋은 팀이라서 개인기록까지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좋은 공을 던지기 이전에 좋은 수비와 좋은 타격의 도움을 받았다. 팀이 좋아서 가능했지 나만 잘해서는 아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두산의 더스틴 니퍼트는 매달 수십 명의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잠실구장에 불러 야구를 보여주는 ‘사랑의 좌석 초청행사’를 벌이고 있다. 니퍼트가 7월 3일 친필 사인 유니폼과 모자, 공 등을 자비로 준비해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모습.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2013년부터는 정기적으로 매달 ‘사랑의 좌석 초청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받는 큰 사랑에 작으나마 마음으로 보답하고 싶다”는 뜻에서다. 구단에 부탁해 초청단체를 선정하고, 매월 30여 명의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잠실구장에 부른다. 친필 사인 유니폼과 모자, 공뿐 아니라 햄버거 등 간식, 응원용 막대풍선까지 모두 자비로 구입해 선물하고 있다. 야구장에 처음 나들이를 와서 니퍼트를 만나고 돌아간 어린이들은 나중에 ‘파란 눈의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내는 그림편지를 만들어 두산 구단 사무실로 보낸다. 실력과 인성이 모두 완벽하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당연히 두산도 니퍼트와 무조건 재계약하겠다는 방침이다. 올해 정규시즌에는 부상과 부진이 겹쳐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눈부신 투혼을 발휘하면서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앞장섰다. 니퍼트 역시 한국에서의 삶을 사랑한다. 스스로 “한국이 제2의 홈타운이라는 느낌이다. 아직 말은 잘 못하지만 한국말을 어느 정도는 알아듣는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여기에 결혼까지 한국인과 하게 됐으니, 귀화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니퍼트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보다 예비 아내가 미국 국적을 얻게 될 가능성이 훨씬 많다. 두산 관계자 역시 “아무리 한국 여성과 결혼한다고 해도 귀화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도 만약 니퍼트가 귀화하는 일이 현실로 벌어진다면? 두산으로서는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일이다.
니퍼트는 올해까지 5년간 한국에서 뛰었다. 재계약의 거의 확실하기 때문에 내년 초에 ‘5년간 국내 거주’라는 일반귀화 요건을 채운다. KBO는 “귀화한 외국인선수는 용병 쿼터(3인 보유 2명 출장)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두산이 ‘한국 선수’ 니퍼트 외에 용병 한 명을 더 보유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한국인 선수가 된다 해도 신인 드래프트를 거칠 필요가 없다. 일반적인 한국인 선수는 KBO리그 신인 드래프트를 거쳐야 국내 구단에 입단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그러나 KBO는 니퍼트에 대해 “기존 구단이 보유권을 가지고 있는 선수”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두산과 두산 팬들이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니퍼트가 은퇴 후 한국과 미국 가운데 어느 곳에서의 삶을 계획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론이 날 듯하다.
# 한국에 귀감 되는 용병들
롯데의 조쉬 린드블럼(위)과 NC의 에릭 테임즈도 선행을 펼쳐 귀감이 되고 있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NC 다이노스
사실 린드블럼은 미국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딴 자선재단 ‘조쉬 린드블럼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적극적으로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을 돕곤 했다. 낯선 한국에서도 따뜻한 심성은 여전했다. 롯데 구단에 문의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내고, 직접 야구 경기를 보여주며 꿈을 심어줬다. 또 한국 야구에 대한 존중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시즌 말미에 대구구장에서 KBO리그 최초의 400홈런을 때려낸 이승엽을 직접 찾아가 유니폼에 사인을 받았다. “메이저리그 대선수들의 사인 유니폼을 수집해왔다. 한국 최고의 선수인 이승엽의 유니폼도 소장하고 싶었다”고 했다.
NC 에릭 테임즈도 전반기가 끝난 뒤 창원 시내의 한 바에서 경남 고성의 한 보육원에 기부할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한 자선 행사를 열었다. 평소 그 보육원에 도움을 주고 있는 미국인 지인을 통해 연결고리를 만든 것이다. 테임즈는 자신의 유니폼과 글러브, 친필사인 티셔츠 등 애장품을 경매로 내놓아 수익금 500만 원을 마련했다. 그리고 후반기 첫 주말 3연전에 보육원 어린이 20명과 관계자들을 초청해 최고의 하루를 선물했다. 테임즈와 함께 뛰고 있는 에릭 해커 역시 2013년 9월 마산에서 딸 칼리를 낳았을 정도로 낯선 한국에 정을 붙이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칼리는 영유아 놀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어를 배우고, 집에 와서 부모에게 한국어로 얘기하며 ‘가정교사’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올해 NC의 승승장구에 앞장선 두 용병은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으로도 다른 팀 용병들의 귀감이 됐다.
# 코치로 제2의 인연을 맺어가는 용병들
팀에서 퇴출됐다고 해서 한국과의 인연이 모두 끝나는 것도 아니다. 선수가 아닌 코치로 제2의 인연을 이어가는 외국인 선수들도 점점 늘고 있다. 삼성 카도쿠라 겐 불펜 코치와 롯데 라이언 사도스키 해외 스카우트 코치가 그 시초다. 삼성은 이전에 SK에서 뛰다 2011년 용병으로 데려온 카도쿠라를 2013년 인스트럭터로 영입했다. 이후 카도쿠라가 릭 밴덴헐크의 제구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자 2014년부터 코치로 승격시켰다. 현역 시절 동료들에게 ‘쿠라 형님’이라고 불리던 친화력을 코치로서도 발휘하고 있다. 롯데도 올 시즌에 앞서 2010년부터 3년간 팀에 몸담았던 사도스키를 용병 스카우트 업무를 맡는 코치로 채용했다. 꾸준히 해외에 머물면서 좋은 용병을 뽑아올 인물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한국 야구 문화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도스키는 올해 에이스로 활약한 조쉬 린드블럼을 직접 롯데에 추천해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카도쿠라, 나이트.
이뿐만 아니다. 내년 시즌에는 또 다른 한국 용병 출신 외국인 코치들이 한국팀 유니폼을 입게 된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훌리오 프랑코는 롯데 2군 타격코치로 돌아온다. 2000년 삼성에서 뛰면서 타율 0.327, 22홈런, 110타점을 기록했던 프랑코는 1991년 메이저리그에서 아메리칸리그 타격 1위에 올랐던 특급 용병으로 유명했다. 한국에서는 단 한 시즌을 뛰었지만, 삼성 선수들에게 타격 기술은 물론 몸 관리와 마인드 컨트롤 면에서 ‘살아있는 교재’ 역할을 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롯데도 이런 부분을 높이 사 올해 일본 독립리그 감독 겸 선수로 뛰던 프랑코에게 손을 내밀었다.
또 넥센은 KBO리그 통산 48승을 올린 브랜든 나이트를 2군 투수 코디네이터로 선임했다. 2군과 3군, 재활군 투수를 아우르는 자리로 사실상 투수총괄코치에 버금가는 역할과 권한이 주어진다. 내년부터 파트별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는 넥센이 나이트에게 큰 그림을 맡긴 것이다. 나이트는 2009년 삼성에 입단했고, 2011년부터 넥센에서 뛰다 지난해 시즌 도중 방출됐다. 평소 더그아웃에서 신문을 읽는 게 취미였을 정도로 성실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방출 직후 SK에서 잠시 해외 스카우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선수로서 KBO리그를 직접 경험했던 외국인 코치들이 미국 등지에서 경험한 선진야구 노하우를 한국의 유망주들에게 전수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일본으로 떠난 용병들 성적 우즈 ‘홈런왕’으로 열도 평정 일본에서 홈런왕을 차지한 타이론 우즈. 일단 머니 게임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A 구단 용병 스카우트 담당자는 “일본에서도 트리플 A급 외국인선수의 몸값은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반면 한국 무대에서 검증된 선수들은 처음부터 최소 70만∼80만 달러 이상, 때로는 1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받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특급 용병은 이 정도 금액을 받을 수 있지만 일본은 옵션의 규모가 한국보다 커서 성적이 좋을 때 챙길 수 있는 돈의 액수가 더 많아진다. 이 담당자가 “옵션이 연봉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추정할 정도다. 또 일본은 1년 뒤부터 사실상 프리에이전트(FA)가 되기 때문에 진출 첫 해 성공하기만 하면 엄청난 액수의 대박 계약도 가능하다. 두산 출신의 타이론 우즈는 주니치에서 700만 달러(약 81억 원)의 연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구단에 입단한다고 해서 무조건 ‘저팬 드림’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선수 생활의 전기를 이루고도 돈을 쫓아 일본으로 떠났다가 실패한 용병들도 많다. 일본은 1군에서 용병 4명 등록과 4명 출전이 가능하지만, 2군에서는 외국인 선수를 무한정 보유할 수 있다. 외국인선수도 1군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검증된 용병들은 처음에 기회를 잡기는 쉽지만,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더 냉정하게 내쳐진다. 개리 레스는 2002년 두산에서 16승을 올린 뒤 2003년 요미우리에 입단했지만 3승 4패 방어율 4.14에 그쳐 1년 만에 방출됐다. 심지어 레스는 2004년 두산으로 컴백해 다승왕(17승)에 올랐다가 2005년 라쿠텐에 입단해 일본 무대에 재도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1군과 2군을 오가며 3승 9패 방어율 6.33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남겼을 뿐이다. 두산 출신의 다니엘 리오스는 한국에서 쌓은 명예까지 일본에서 무너뜨린 케이스다. 리오스는 KIA와 두산에서 여섯 시즌(2002~2007년)을 뛰면서 통산 90승을 기록했고, 2007년 22승의 금자탑을 쌓은 뒤 두산의 애를 태우다 2008년 야쿠르트로 떠났다. 그러나 첫 해 2승 7패 방어율 5.46으로 부진하다 금지 약물 복용까지 적발돼 리그에서 퇴출됐다. 2010년 두산에서 14승을 따냈던 켈빈 히메네스 역시 2011년부터 2년간 라쿠텐에서 6승 17패 방어율 3.35를 기록하면서 기대에 못 미쳤다. 올 시즌 중반 SK로 깜짝 유턴했던 크리스 세든도 비슷한 케이스다. 2013년 SK에서 14승을 올려 공동 다승왕에 오른 뒤 지난해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었지만, 4승 5패 방어율 4.67로 부진한 채 1년 만에 전력 외로 분류됐다. 물론 한국에서의 위력을 일본에서까지 이어간 선수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우즈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에서 174홈런을 터트린 뒤 2003년 요코하마에 입단해 곧바로 2년 연속 센트럴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2005년 주니치로 이적한 후 2006년 다시 센트럴리그 홈런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2년 SK에서 45홈런을 기록한 호세 페르난데스는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간 뒤 지바롯데, 세이부, 라쿠텐을 거치면서 11시즌 동안 소속팀의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2005년과 2006년에 KIA에서 뛰었던 세스 그레이싱어도 2007년 야쿠르트에서 16승, 2008년 요미우리에서 17승을 각각 따내며 2년 연속 센트럴리그 다승왕에 올랐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