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초 국내에 유통된 청자의 대부분은 도굴품이었다. 도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오구라컬렉션 고려청자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에 돌려받아야 한다. 사진은 청자상감운학문병. 사진출처=도쿄국립박물관
1900년대 초 외국인이 고려청자를 매입하는 과정에 일어났던 웃지 못 할 에피소드다. 당시 일본에서는 고려청자가 고가에 거래되었다. 골동품 수집광들은 ‘천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일본 도굴꾼들이 개성과 강화도 주변의 왕가 무덤을 호시탐탐 노렸다. 파면 고려청자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굴을 판다는 뜻의 ‘호리’(掘)에 ‘꾼’을 합친 ‘호리꾼’이 도굴꾼을 뜻하는 은어로 통용되었다. 1909년 봄 인천기상관측소장 와다 유이지는 강화도를 방문한 뒤 “흡사 러일전쟁 지역의 격전지이던 뤼순(旅順) 요새 부근의 포탄 떨어진 지역과 비슷하다”라고 묘사했다. 개성과 강화도의 고려능묘에 대한 남굴(濫堀)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준다. 강화도는 몽골침입 당시 39년간 도읍지였기 때문에 고려의 왕족과 귀족들의 묘가 많았다. 호리꾼들에게는 황금의 땅이었다.
호리꾼들이 파낸 고려청자를 싹쓸이했던 인물은 초대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였다. 1909년 11월 이토 히로부미는 서울 창경궁에 식물원과 이왕가박물관(李王家博物館)을 지었다. 그리고 수집한 고려청자 등의 고미술품을 ‘이왕가’(李王家, 일본은 대한제국 황실을 강제 병합한 뒤 ‘천황가’ 아래의 ‘이왕가’로 불렀다)가 사들이게 했다. 그중 가장 우수한 자기류나 고미술품 103점은 일본으로 가져가 메이지천황에게 헌상했다. 나머지는 이왕가박물관에 전시했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식민지 사업을 달성하는 동시에 천황에게 바칠 진상품까지 챙겼다. 그때 가져갔던 103점 중 97점은 한일협정이 체결된 후 반환되었다.
몇 차례 소개했던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는 골고루 문화재를 수집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도 고려청자를 많이 수집했다. 고고유물이 오구라컬렉션의 절반을 차지하고 그 다음이 ‘청자음각보상화당초문대접’(靑瓷陰刻寶相花唐草文大)을 비롯한 고려청자였다. 당시 시중에 유통된 청자의 대부분은 도굴품이었다. 일본 수집가와 연구자들도 인정한다. 도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오구라컬렉션 고려청자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에 돌려받아야 한다.
청자상감국화문장경병, 청자상감포류문매병.
고려에서 청자를 만들게 된 배경이 재미있다. 청자는 옥(玉)을 재현하려다가 만들어졌다. 옥(玉)은 고대 중국이나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매우 귀중한 돌이었다. 군자(君子)를 상징하며, 부귀와 사후세계를 보장한다는 생각 때문에 왕의 용품이나 복식 등에 사용되었다. 고려는 중국 도공들을 후하게 대접해서 유치한 뒤 청자를 만들었지만 두 가지 면에서 중국의 것을 앞섰다. 상감기법과 뛰어난 비색이다. 상감기법은 원래의 기물에 홈을 파서 다른 재료를 넣는 것이다. 청자 겉면을 얇게 판 다음 무늬에 맞게 백토나 자토를 그곳에 넣으면 구워진 후에 다른 색이 나온다. 도자기에 정통했던 고야마 후지오(小山富士夫)는 <고려도자서설(高麗陶瓷序說)>에서 고려청자를 “조선역사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고요하고 아름다운 고려청자를 보고 있자면 어떻게 이런 게 태어났는지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라고 했다.
2002년 2월 4일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일본의 한국 문화재 약탈 문제를 ‘잃어버린 유산’(A legacy lost)이란 특집 기사로 썼다. 일본의 한국문화재 약탈이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무자비한 문화유산 파괴행위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화재 약탈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인들은 이 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분석했다. 뼈아픈 지적이었다. 그 이후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변화도 많았다. 적잖은 유물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기 위한 정부나 민간의 노력과 사회의 관심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참고문헌 <한국미술시장사자료집> 김상엽, 경인문화사 <오구라컬렉션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약탈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 아라이 신이치, 태학사 네이버캐스트 한국문화재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청자 장물아비 이토 히로부미 경향신문, 2012.11.28. <신파극 메들리, 조선 문화재 약탈사>, 한겨레21, 2007.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