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대적인 힘을 지닌 코치들에 의해 심심찮게 벌어 지는 여성선수들에 대한 ‘성폭력’을 증언한 탈북여성선수의 고백은 충격적이다. | ||
이런 뜻깊은 국가적인 행사를 맞이하면서 특별히 회한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북한 체육인 출신 탈북자들이다. 95년부터 최근까지 귀순한 탈북자들로부터 생생한 북한 스포츠와 선수생활에 대해 들어본다.
국내에 거주하는 북한 체육인 출신의 탈북자는 근래 크게 늘어 20여 명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인터뷰 에 응한 탈북자 체육인들 중 신변안전 문제로 이름과 사진 노출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북한 스포츠의 생생한 모습을 알려주는 데는 주저하지 않았다.
우선 탈북자 체육인들의 대부분은 지난 월드컵 때 받았던 감동을 떠올렸다. 축구공을 통해 온 국민이 하나로 결속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한국인의 저력을 새삼 절감했다고 한다. 그러나 안정환이나 김남일 등 일부 선수들에게 집중된 팬들의 사랑은 그들 눈에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북한의 스포츠 스타는 단지 운동을 잘하는 사람일 뿐이다. 국제 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공화국 영웅’ 이라는 칭호를 받고 평양 시내에 집과 자동차(벤츠)가 제공되어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등 최고의 대우를 받지만 우리나라처럼 뜨거운 환호와 열광을 보내는 스타플레이어는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우상화를 금지하는 북한의 실정 때문. 또한 언론매체가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의 의도적인 ‘띄우기’도 불가능하고 선수를 후원해 줄 만한 ‘스폰서’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선수 선발 방법은 각 체육단 코치나 지도위원이 학교를 돌며 뽑아 가는 형식이다. 북한의 ‘체육단’은 프로구단과 흡사하다. 선수는 자신의 종목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종목에서도 뽑혀 가는 경우가 많다. 한 선수가 대개 2∼3개 이상의 종목을 거친다.
체육단에 소속된 선수들은 일을 하지 않고 운동만 한다. 거기서 대표팀에 선발되고 국제 경기에 참가할 경우 ‘체육 명수’라는 칭호를 받는다. 보상으로 1인당 4백원 정도(2백원이 북한 일반 노동자의 월급)의 월급을 받고 콩밥이나 양, 오리고기를 제공받는다. 밥의 양은 항상 그램으로 배급되기 때문에 선수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싼 베트남 쌀을 수입해 시합 전에 더 공급해준다.
▲ 지난 7일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북 통일축구 경기에 출전한 북한대표팀. | ||
99년에 귀순한 황보영 현 한국대표팀 아이스하키 선수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통 연습장에는 코치방이 따로 없지만 평양시내로 들어가면 따로 코치방이 있는데 은밀히 여자선수들을 불러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충격적인 실상을 전했다. 남자 선수들이 함께 연습경기를 할 때 가슴이나 엉덩이를 은근슬쩍 만지는 경우는 있지만 여자팀의 일부 남성 코치들은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한다고. 물론 이런 사실을 고발할 곳이 없으므로 피해자들은 그냥 속앓이만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황씨는 “선수생명도 문제이지만 북한에는 성교육이라는 게 전혀 없다. 그래서 성관계를 요구해도 그냥 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황씨에 따르면 생리나 임신 등 기본적인 성지식조차 모르는 여성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코치뿐만 아니라 북한 운동선수들 간의 위계질서는 매우 엄하다. 후배 선수들은 선배의 발 씻는 물까지 떠다 바쳐야 한다. 선후배간의 구타는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또한 훈련 방법이 엄하다보니 일부 코치들의 구타도 상당하다. 한 북한 체육인은 “몽둥이 찜질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주먹을 쓴다. 바로 면상을 구타하고 매를 맞을 때는 여자도 똑같이 맞는다”며 “훈련 강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월급과 사회적 지위 때문에 많은 북한 주민들이 운동선수를 선호한다. 또 그만큼 일류 선수가 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치열한 경쟁 관계로 인해 심판이나 경기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선수들은 ‘결단코’ 그런 일은 없다고 한다. 한 탈북 체육인은 “각 도에 체육단이 하나씩 있기 때문에 경기는 자존심 대결이다. 북한 사람들은 자존심이나 자부심이 세 심판 뇌물은 없다고 봐도 좋다”고 답변했다.
북한 체육인의 자존심은 연예인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5년간 탁구 선수로 활동했던 김수영(가명)씨는 “식당에 가면 연예인들이 앉아 있는 경우가 있는데 선수들이 보면 연예인들 보고 다 나가라고 한다. 나가지 않으면 밥상을 다 엎어 버리고 행패를 부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 대해선 대부분의 탈북 체육인들은 “남한보다 체육에 대한 인적 인프라가 훨씬 높다”며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는 분명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