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목적은 남북통일축구경기 참관이었지만 부대행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터라 원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조차 헷갈릴 정도다. 한국에서의 인기를 재확인하고 엄청난 거액을 챙긴 데다 축구협회의 일방적인 ‘짝사랑’을 여유있게 지켜보는 입장이 된 히딩크 감독을 밀착 취재, 드러나지 않은 뒷이야기들을 모아본다.
히딩크 감독이 공항에서 입국 기자회견을 마치자마자 숙소인 하얏트호텔에 여장을 푼 후 곧바로 직행한 곳은 삼성카드 본사에서의 모델 조인식 현장. 그리고 이튿날에도 교보생명에서 모델 조인식과 함께 10억원짜리 보험증서 전달식을 가졌다.
삼성카드는 4일 조인식에서 히딩크 감독에게 감사의 표시로 선물을 했는데, 최고급 한복 두 벌과 히딩크 감독의 얼굴이 새겨진 순금 65돈짜리 카드였다. 특히 히딩크 감독은 한복을 입어보며 즐거워했고 진행자로부터 ‘카드가 순금’이라는 소리를 듣자 자신의 양복 춤에 얼른 감추는 유머러스한 행동까지 연출했다.
▲ 지난 7일 열린 통일축구경기 하프타임 때 히딩크 감독이 불치병에 걸린 어린이에게 사인볼을 선물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 ||
먼저 계약을 끝낸 삼성카드사에 비해 방한 하루 전까지 모델료를 협상해야 했던 교보생명은 모델 조인식에서 대대적인 홍보 이벤트를 마련했다. 월드컵 태극전사들과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선수 가족까지 총동원된 이날 행사는 3개의 식장을 빌려 성대하게 치러졌다.
교보생명측은 “히딩크뿐만 아니라 축구 전체를 아우르는 행사로 기획했기 때문에 규모가 커졌다”고 밝혔다. 한편 보험 증서를 받는 자리에 난데없이 30~40대 중년 여성들이 나타나 히딩크 감독에게 사인을 받으려고 몸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회사측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확인 결과 그 ‘아줌마’들은 자사 사원들이었고 직장 상사들의 불호령(?)으로 ‘아줌마 팬클럽’은 쉽게 제압되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은 5일 아침 예고도 없이 국가대표 파주트레이닝센터를 방문해 박항서 감독과 선수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히딩크 감독은 박 감독에게 “내가 벤치에 앉아도 쫓아내지 않겠지?”라고 물었고 박 감독은 “웰컴”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히딩크 감독은 축구협회의 강한 권유를 받고 박 감독이 동의를 하면 벤치에 앉겠다고 말했는데 박 감독으로선 이전 ‘모시던’ 감독이 벤치에 앉겠다는 걸 ‘싫다’고 거절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전반전이 끝난 뒤 히딩크 감독은 벤치를 벗어나 여자친구가 있는 귀빈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자가 관중석으로 올라가는 히딩크 감독에게 그 이유를 묻자 “나는 박 감독에게 경기장에서 조언을 하는 위치가 아니다. 그래서 올라 왔다”며 약간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히딩크 감독의 한 측근은 “사실 별문제 아니었지만 감독님이 경기에 대해 코멘트하지 않을 바에야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일어나신 것 같다”며 “자신의 의지도 아니었고 이런 일로 박 감독과 사이가 불편해진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8일 출국 전 인터뷰에서도 아예 경기에 대한 코멘트는 “박 감독에게 물어보라”며 더 이상 이야기가 확대되는 것을 꺼려했다. 히딩크 감독을 맞는 23세 이하 대표팀 선수들 중 유독 어두운 표정을 하는 선수가 눈에 띄었다.
바로 월드컵 ‘비운의 스타’ 이동국. 파주를 방문한 히딩크 감독이 이동국을 발견하고는 친근함을 표시하며 “너는 대성할 선수”라고 짧게 자른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이동국도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히딩크 감독과 악수를 했다.
그러나 전날 교보생명 보험증서 수여식장에서는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히딩크 감독과 마주 앉은 이동국은 단 한 번도 히딩크 감독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표정도 썩 밝지 않았다. 김세진 기자 blues3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