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정환 부부 | ||
월드컵 4강 진출의 신화를 이룬 주인공들 중 해외진출 문제로 마음 고생이 심했던 태극전사의 아내들은 월드컵이란 단어 자체가 아주 먼 과거 속의 일인 양 아득하기만 하다. 월드컵의 서광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잇달아 터진 진로 문제로 엄청난 가슴앓이를 해야했기 때문.
특히 황선홍, 홍명보, 유상철, 안정환 등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이다. 얽히고설킨 데다 꼬이고 엎어진 이적 문제는 ‘첩첩산중’이란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남편의 인생사와 함께 얽히고설킨 태극전사 아내들의 하소연을 담아본다.
터키행 이적 협상이 결렬된 후 황선홍이 아내 정씨에게 가장 먼저 전화해서 한 말이 있다. “왜 나 안말렸어?”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음색에선 약간의 원망스러움이 배어나온 듯했다. 아내의 만류가 있었더라면 터키엔 가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남편의 설명에서 정씨는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고 한다.
▲ 황선홍 부인 정지원 | ||
정씨는 남편을 혼자 터키로 보낸 뒤 일본 생활을 정리하며 이삿짐을 싸느라 바빴다. 불투명한 미래로 인해 이삿짐을 한국으로 보내야 할지 아니면 좀 더 기다렸다가 터키로 부쳐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때 걸려온 남편으로부터의 전화. 협상이 결렬됐다는 소식이었다. 솔직히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고 한다.
아이들 교육 문제를 비롯해서 터키에서의 생활에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결국 정씨는 모든 짐을 싸들고 한국의 친정집으로 돌아왔지만 황선홍이 곧 훈련차 독일로 출국할 예정이라 또다시 이삿짐을 싸야 될지도 모른다.
홍명보의 아내 조수미씨는 최근 남편의 미국 프로리그 진출을 놓고 벌어진 현상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더욱이 홍명보의 진실이 왜곡된 채 구단의 입장만 대변한 듯한 언론의 태도도 섭섭하기만 하다.
“내용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왜 홍명보 같은 선수가 20만달러란 싼 이적료를 받고 미국에 가려는지 궁금해하세요. 사실 명보씨는 이적료에 연연해하지 않아요. 미국의 리그 자체가 구단의 이익보다 선수의 이익을 더 존중해주기 때문에 이적료를 높게 책정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미국 진출 자체가 단순한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미국의 선수 관리 체계나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를 보고 느끼고 경험해 보고 싶어서거든요.”
홍명보가 일본에서 포항으로 복귀할 때 홍명보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조건 없이 국내로 U턴했다고 한다. 즉 포항에서 홍명보를 일본으로 보내줄 때는 거액의 이적료(11억원)를 챙겼지만 복귀시에는 단 한푼도 주지 않고 홍명보를 영입시킨 것.
그 과정에서 홍명보는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포항과의 오랜 인연을 끊고 싶지 않았고 돈 문제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미국 진출 불가 이유 중 하나가 적은 이적료 때문이라고 하니 홍명보로선 납득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서른 살 넘은 한국 선수에게 1백만달러의 이적료를 지급하고 데려가는 나라는 거의 없을 거예요. 한국의 간판 스타다운 몸값을 받아야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구단에선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고 계시는지 먼저 묻고 싶어요.”
조씨의 생각은 의외로 단호하다. 그동안 ‘그림자 내조’를 펼치며 남편 앞에 나서길 꺼려했던 사람이 이번 일만큼은 적극적인 변호를 펼치려고 작정한 듯하다. 특히 LA에 친정이 있다는 이유로 조씨의 입김이 작용, 홍명보가 더욱 미국 진출을 원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한동안 마음 고생도 심했다.
▲ 홍명보 부인 조수미 | ||
특히 최씨는 월드컵 이후 남편의 진로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에이전트도 유럽행을 확신했고 ‘러브콜’을 보내온 팀들도 있었던 터라 서둘러 일본에서의 고별전을 치렀던 것. 귀국 후 두문불출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있는 최씨는 현재 가족들과 여행중이다.
안정환처럼 복잡한(?) 남자도 드물다. 그런 사연 많은 남편과 사는 아내 이혜원씨도 죽을 맛. 하나가 풀리면 다른 일이 꼬이고 그 일이 해결되면 또 엄청난 문제가 나타나고…. 남편의 인생 자체가 순탄치 않았던 것처럼 진로 문제로 매번 진통을 겪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이씨는 속이 새까맣게 타다 못해 숯검댕이 됐다.
한때 치솟는 CF 요청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른 일이 기억조차 가물거릴 정도다. 이씨는 요즘 이런 얘기를 자주 한다.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리긴 열렸었나요?”
이을용의 부인 이숙씨의 경우 기사내용 남편을 먼 타국땅으로 홀로 보낸 뒤 태어난 지 50일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을용의 아내 이숙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다. 하루에 두 번 이상은 통화를 하고 있지만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보니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일이 부지기수.
“전지훈련 갈 때랑 지금의 기분은 너무 많이 달라요. 전지훈련은 언젠가 돌아올 거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가지 않는 한 남편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더 절절해지는 것 같아요.”
이을용이 출국할 때만 해도 전지훈련 가는 거라며 애써 가볍게 생각했다가 남편 없이 혼자 갓난아기를 키우려다보니 그 빈 자리가 너무 커보인다고 애닳아 한다. 좀 서운한 것은 남편이 전화를 해서 아내에 대한 안부보다 아기에 대해서만 지극한 관심과 사랑을 나타낸다는 사실.
때론 아들 태석이에게 질투가 날 정도라고. 그래서 하루는 용기를 내서 “내가 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때 이을용이 “보고 싶다는 말을 하면 더 보고 싶어질까봐 말을 못하겠다”고 대답하더라고.
전화기 내려놓고 엄청 울었을 이씨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대단한 것 같아요. 사실 그거 아니면 이렇게 힘들게 떨어져서 살겠어요. 해외 진출이 남편을 더 크게 만들어 줄 거라는 믿음, 그것이 남편에게 큰 밑바탕이 돼 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고 사는 거죠.” 이씨는 10월 중순경 아들과 함께 터키로 떠날 예정이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