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친노: 로또인가, 쪽박인가?
요한기자 미래칼럼: 2016. 4·13 총선진단 ② 문재인·친노
문재인 정치 정체성의 기원과 미래
김대중과 노무현: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았다.”
호남, ‘바보 노무현의 죽음’과 ‘노무현 친구 문재인’에 일시적 착시와 혼동
로또의 길과 쪽박의 길: 영남 3인방의 호남권력 쟁취 연합?
문재인: 가계부채와 대통합 노선을 프레임화 해야
문재인 아젠다가 박근혜 아젠다로 둔갑
출구전략, 김대중 중심 깃발로 ‘바보 노무현의 죽음’을 구현해야
박정희·김대중, 모두 살아 숨 쉬는 정치생명체
“안철수 의원, 박원순 시장 새정련 대표권한 공유합시다”
새정치국민연합 대표권한 분할론이다. 문재인 대표가 11월 18일 광주 조선대를 방문하여 밝힌 야당 정국 해법이다. 이 선거공학적 제안 속에는 새정련과 ‘정치인 문재인’의 과거의 행적과 정체성, 현재의 방안, 그리고 미래의 지향점까지도 모두 함축되어 있다.
본 기자는 앞서 「2016.4·13 총선 진단 ① 박근혜대통령」 편을 통해, 문재인 대표 체제의 역사철학 빈곤성을 지적했다. 역사철학이란, 지금 내가 남기는 발자국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현재진행형화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성찰이다.
문재인대표가 당면한 딜레마는 호남권 지지기반의 붕괴이다. 한국 갤럽이 20일 발표한 11월 3주차 여론조사에 따르면, 새정련 지지율은 35%에서 21%로 8%나 떨어졌다. 문 대표가 광주와 호남지역의 분위기를 호전시키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지지도 하락의 본질적인 요인은 어디에 있을까?
일요신문 DB
문재인 정치 정체성의 기원과 미래
문재인 대표의 정체성에 있다. 문재인은 노무현을 덧입은 정치인이다. 정확히 말해서 문재인은 ‘바보 노무현의 죽음’을 덧입고, 시대정신이 생성시킨 안철수의 대중적 지지도를 병합했다. 그 정치적 생성물이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노무현 지지도의 핵심적 바탕은 호남과 김대중이다. 김대중과 호남세력은 50년의 역사성이 융합시킨 운명공동체이다. 김대중과 호남세력이 노무현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보인 순결성, 김대중과 함께 걸어간 과정에서 감당한 희생, 지역갈등 해소에 대한 호남의 염원에 부합되었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무소속 천정배의 광주 부활, 새누리당 이정현의 호남당선은 문재인에 대한 최종경고이다.
“문재인이 노무현처럼 호남과 김대중을 위해 헌신하고 쌓은 그 무엇이 있는가?”
없다면 “부산사람이 왜, 언제까지 호남 정치권력을 좌지우지 하느냐?”라는 질문이다. 이 물음은 “친노는 호남을 정치 식민지로 여긴다”면서 박근혜 대표를 지지한 한화갑 전 의원의 논리와 맥을 같이 한다.
호남은 4·29 재보선에서 천정배(광주 서을)와 이정현(순천곡성)을 선택했다. 호남은 무엇인가를 깨달았고 결심했다. ‘바보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호남의 정치적 애도기간은 종료되었고, 문재인과 결별했다.
노무현 선택 13년, 노무현·김대중 서거 5년 만에 호남민심은 역사와 진실을 판별했다. 그 판별의 요체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역사정체성, 그리고 ‘문재인의 호남상관성’이다. 문재인 정치권력의 기원은 노무현 정권의 탄생과 함께 시작한다. 노무현 정권 초기 국가의 전략 노선과 정치지형을 뒤 바꾼 두 가지의 미스테리가 발생한다. 그 하나는 대북송금 특검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염동연·안희정의 구속이었다.
대북송금은 2003년 1월 12일 문희상 실장의 발언, 이상수, 유인태, 문재인의 연결과정으로 전개되더니, 노무현 대통령 수용결정으로 매듭지어졌다. 대북송금 특검은 당시 ‘초상집’ 한나라당에게 상상 못한 횡재였다. 이로써 노무현은 사실상 김대중과 결별했고, 김대중이 노무현에게 쥐어준 북·미 대화 중재권은 중국으로 이양됐다.
아들 부시 미 대통령은 노무현 정권을 불신하고, 6자회담을 만들어 북한 핵 딜레마를 중국에 위탁했다.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은 물론, 김정일과의 핫라인도 끊었다. 임동원·박지원은 구속되고, ‘정주영의 분신 정몽헌’은 자결했다.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 염동연, 12월 안희정이 구속된다. 두 사람 구속은 호남·충청권 김대중 세력의 연결통로의 패쇄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미스테리다. 왜 하필 안·염 두 사람만 대선 자금 총대를 메야 했을까?
4개월 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은 호남에서 판을 완전히 갈아 뒤엎었다. 이 두 가지의 핵심 미스터리의 사건 중심에, 참여정부 첫 민정수석비서관 문재인이 존재한다.
김대중과 노무현: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았다.”
사실, 대통령 권력 집중제인 우리나라 특성상, ‘새로운 권력’은 반드시 ‘지나간 권력’을 청산한다. 전두환은 박정희를, 노태우는 전두환을, 김영삼은 전·노를 싸잡아 청산했다. 김종필과 공동정권인 김대중은 김영삼 권력을 청산하지 못했으나, 노무현 정권을 창출했다. 노무현은 김대중 권력을 청산했고, 이명박은 노무현 권력을 압제했다. 문재인의 운명 정체성은 이 맥락 속 어디쯤엔가 위치한다.
‘바보 노무현의 죽음’의 역사 정체성은 2002년 이전 ‘바보 노무현’과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노무현의 죽음’으로 나뉜다. 문재인의 정치적 운명이 ‘노무현의 죽음’ 기간을 덧입는 한, 그 또한 청산되어야 할 ‘과거권력’속에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안희정은 ‘바보 노무현’의 시기이고, 문재인은 ‘노무현 죽음’의 시기에 해당한다.
노무현의 정치적 알파(시작)와 오메가(끝)의 과정을 곱씹어 볼 대목이다. 왜, 노무현을 ‘바보’라고 하고, 그는 끝내 ‘자결’ 하였는가? 그 기준은 김대중과 비교하면 간명하게 정리된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다른 듯 닮았고, 닮은 듯 다르다.
김대중 정치는 삶을 지향했고, 노무현 정치는 죽음을 지향했다. 김대중은 처음부터 삶과 희망을 추구한 현실 정치인이다. 4차례 죽을 고비, 5번 낙선, 구금과 탄압, 두 차례 망명생활을 거치는 동안, 김대중은 예수님을 부르짖고, 동정을 구하면서 국민과 호남인에게 ‘살려주십사’고 애걸복걸한다.
김대중 정치세월은 예수님, 국민, 호남인에 대한 가슴 저리는 호소의 정치 역정으로 점철된다. 그리고 김대중은 오메가(끝) 이자 역사적 탄생점을 정적 박정희가 터를 잡은 국립묘지 현충원을 선택했다.
그러나 김대중의 정치적 후계 노무현은 달랐다. 대가 무지하게 셌다. 선이 뚜렷한 노무현은 현실의 벽이 죽음과 절망 임에도 온 몸을 내던진다. 보스 김영삼이 호랑이를 잡으러 집권당 굴에 들어간다고 선언하자, 홀로 주먹을 흔들며 비판한다. 패배가 확정성인 부산에 거듭 출마하고, 씨알도 안 먹힐 지역갈등 해소를 부르짖는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방문하여 시계를 받고 지지도가 급락하더니, 지방선거 패배가 부른 최악의 상황 속에서, 정몽준 후보와 운명을 건 한판 승부를 결단한다.
노무현 정치세월은 단호하다. 국민들 앞에 미래상과 가치적 좌표를 제시하고, 스스로의 죽음을 불사하며 양단 간 선택을 강요한다. 온 몸이 단단한 검투사의 정치역정이다. 그 오메가는 생불여사(生不如死) 상황을 생사일여(生死一如)로 전회시킨 뒤, 고향 땅에 돌아가 돌이 되어 박혀버린다.
김대중과 노무현, 그 정치의 행태와 스타일, 전개과정과 양상은 판이하게 달랐지만, 민주주의와 인권, 역사적 비전과 가치라는 목표와 지향노선은 합치된다. 호남이 ‘대통령 노무현의 홀대’에 섭섭했지만, 그의 죽음을 ‘호남의 슬픔’으로 받아들인 이유다. 호남은 ‘바보 노무현의 죽음’을 ‘DJ의 정치적 후계’로서 운명정체성을 일체화했다.
호남, ‘바보 노무현의 죽음’과 ‘노무현 친구 문재인’에 일시적 착시와 혼동
문재인과 자칭 친노는 ‘바보 노무현의 죽음’을 덧입었다. 호남은 ‘바보 노무현의 죽음’과 ‘노무현 친구 문재인’에게 일시적인 정체성의 착시와 혼동을 일으켰다. 호남의 관점에서 볼 때, 최소 5년 동안 검증된 ‘문재인과 친노세력’에게서 ‘바보 노무현’의 눈물과 결기도, ‘노무현 죽음’의 비장미와 유훈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한 줌 야당 권력에 안주하고, ‘셀러리맨’ 국회의원직에 만족한 듯 보였다. 온건·중도 정치 노선을 잃고, 중산층과 서민 생활경제를 도외시 하며, 대안 없이 집권세력과 비난과 싸움만 일삼는 ‘정치 패거리들’로 비춰졌다. 호남과 김대중이 50년간 목숨을 걸어왔던 정치 운명노선은 ‘온건·중도·실사구시와 실용, 중산층과 서민, 남북 평화통일’ 21자에 있다.
마찬가지로 김구에서 시작하여 김대중을 민주주의 역사의 본령으로 여기는 호남의 자존감은 천정배나 정동영을 대통령 감으로 고평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호남이 제 손으로 ‘내 새끼들’을 죽일 바보들이 아니다.
예언컨대, 내년 4·13 총선에서 천정배, 이정현, 박주선, 박준영, 정동영 등은 모두 고향 땅에서 살아 국회에 입성한다. TV 드라마의 대사처럼 “세상에서 실패하고 손가락질 당한 영혼, 고향 땅 만은 안아 주더라”라는 독백은 진리성이 있다.
호남에는 ‘만만한 게 홍어 X’이라는 격언이 있다. 호남을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취급하다가는 그야말로 폐가망신 당한다. ‘남의 말’ 듣고 ‘김대중의 후예들’을 죽일 정도로 말랑말랑 하지 않다는 얘기다.
솔직히 문재인의 호남 딜레마는 호남과 문재인의 상관성에 있다. 박원순도, 안철수도 호남과의 상관성이 없다는 데 문-안-박의 연대가 공허하게 들린다. 목포의 한 무소속 도의원은 말한다. “허, 아직도 홍어 X으로 보네”
일요신문 DB
로또의 길과 쪽박의 길: 영남 3인방의 호남권력 쟁취 연합?
현실적으로 문재인 대표는 새정련 대표직에서 물러날 마음도 없고, 물러날 수도 없고, 물러날 필요도 없다. 문재인이 대표직에서 사퇴하는 순간, 최소 60 여명에 이르는 친노 현역 의원과 방계 친노 사회·정치세력은 몰락한다. 자칫 경쟁력 있는 미래 정치적 자산들을 도매금에 집단 순장시키는 수가 있다. 새누리당이 내심 오매불망하는 상황이다.
문-안-박 연대 제안은 마지막 카드이다. 이틀 전에 중앙일보가 제시한 여론조사 기조와 합치된다. 그 연대의 틀 안에 호남이나 김대중의 자리는 아예 없다. 박원순도 안철수도 영남이다.
영남 3인방이 호남권력 쟁취 연합을 맺자고 제안했다. 박원순을 고리로 안철수를 설득하려 한다. 문재인에게 더 이상 카드는 없다. 여기까지다. 박원순은 덥석 물었다. 안철수가 동의하면 성사된다. 성사될까?
그러나 문-안-박 연대가 대승을 거두는 길은 분명히 있다. 앞선 ‘요한 미래 칼럼’에서 지적했다. 미국 발 금리인상이 우리나라 경제를 뒤 흔들고, 중국경제에 일대 타격을 가하면, IMF 환란위기의 몇 배에 이르는 경제 대재앙의 국면이 도래할 수 있다.
내년 4·13 총선에서 국민들은 눈을 질끈 감고 야당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기호 2번을 유지한 채 선거전에 임한 문-안-박 연합군은 대승을 거둔다. 일종의 정치적 로또 복권 당첨과 같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이 ‘바보 정권’인가? 김영삼 정권이 당했던 외환위기 국면처럼, ‘모범생’ 박근혜 정권이 미국 금리 인상, 즉 미국 발 경제 쓰나미를 무방비 상태에서 맞고, 산산히 부서질 정권인가?
박 정권은 오히려 미국 발 금리인상 충격을 최소화하고 간당간당하게 버티면서,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한다. 경제 위기라는 국민적인 긴장감은 안정희구 심리를 자극하고 국난극복을 위한 역량결집의 열의로 변환되면, 국민들은 ‘현재권력’ 집권당에게 힘을 몰아줄 수 밖 에 없다. 문-안-박 연대는 반대로 ‘쪽박’을 차게 된다. 이 비전 또한 새누리당이 염원하는 총선결과이다.
문재인: 가계부채와 대통합 노선을 프레임화 해야
문재인 대표는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 밖 에 없다. 2003년 초 민정수석 시절 문재인은 노무현의 자결, 2012년 대선후보, 지금 당 대표가 될 상황을 예상했을 리 없다. 유일한 출구전략은 ‘과거의 반성과 새로운 문재인 노선’을 생성하는 길이다.
새로운 노선의 출발점은 ‘대통합’이다. 대통합은 ‘민정수석 문재인’으로부터 비롯된 호남·충청민심의 화를 풀어드려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침묵하는’ 안희정, ‘한이 맺힌’ 염동연은 무슨 생각을 할까? 역지사지해야 한다. 선거공학을 버리고 역사 앞에 서면, 문재인 대통합 정치의 연결통로는 이들 두 사람이 문(門)이다.
자기 혁신보다 더 큰 개혁은 없다. 솔직하고 작은 화해의 걸음이 대통합의 시작이다. 안·염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두를 껴안을 수 있다. 쉬운 듯 어렵고, 복잡한 듯 단순하다.
솔직히, 비노 세력은 청산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함께 스크럼을 짜야할 동지들이다. 물론 그 중에는 역사적 퇴물들도 있다. 그 판별을 ‘문재인과 자칭 친노’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정화되고, 당원과 지지자들이 결정해야 한다.
‘선택배제의 원칙’이라는 공식이 있다. 주도자와 반려자의 자격을 판별하면서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며 뺄셈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른바 성골, 진골, 두품을 정하는 이 방식은 김일성이 김정일을,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선택할 때 적용했다. 이 뺄셈의 공식이 새정련 후보결정 기준에 적용된다면, 그 순간 새정련은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정치란, 덧셈과 곱셈, 나아가 지수함수이다. 김대중은 적이었던 김종필과 박태준을 곱셈했고, 노무현은 김대중+정몽준+알파(노무현)로 승리했다. 정동영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나눗셈으로 패배했고, 문재인은 김대중과 안철수의 불완전한 덧셈으로 패배했다. 문-안-박의 연대는 어떠한가? 김대중을 상수로 놓고 나눗셈과 뻴셈을 하고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 서거 이후, 사실상 문재인과 친노가 주도한 야권은 나눗셈과 뺄셈의 길만 걸어왔다. 야당에게 대통합 노선이 개혁의 첫걸음이다. 미구에 닥칠 국가경제 위기국면에서 분열주의는 발을 붙일 틈새가 없다.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적대적이 아니라, 우리가 되어 힘을 합한다.
여권은 이미 역사 대전쟁 기치와 박근혜 프레임을 통해 총결집했다. 야권은 ‘대통합의 연합전선’이 아니면 집권여당과 게임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다. 슈퍼헤비급에게 플라이급은 그냥 ‘밥’이다.
특히 미국 발 금리인상은 IMF 재앙에서 생존한 마지막 중산충과 서민의 몰락을 예고한다. 문재인 대표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2012년 대선당시 ‘가계부채 딜레마’는 이명박 경제실패가 야당 후보에게 쥐어 준 핵심 아젠다이다. 그러나 집권당 박근혜 후보가 쥐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선거공학으로 볼 때,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단일화 필승론은 정몽준과 노무현 후보단일화가 이뤄낸 승률보다 낮지 않았다. 그러나 문 후보는 패배했다. 안철수의 미지근한 지원 때문인가? 이정희 후보의 박근혜 헐뜯기가 역풍을 초래했나?
천만의 말씀이다. 텅 빈 쌀독을 확인한 어미가 배고픈 자식들을 나무라는 격이다.
문재인 아젠다가 박근혜 아젠다로 둔갑
당시 1000조 였던 가계부채는 국민들의 ‘공포이자 가슴앓이’였다. 문-안 후보단일화 필승론에 매몰된 문 후보는 이 심각한 증상을 간과했고, ‘모범생’ 박근혜는 병증을 알아챘다. 가계부채는 선거공학을 비월한 살아 숨 쉬는 아젠다였다. 그 아젠다를 넘겨준 당사자는 다름 아닌 문재인 후보 본인이 그 어미라는 얘기다.
역설적이게도 3년 뒤 2015년 말 현재 가계부채는 현재진행형이다. 1000조가 1200조로 불어났다. 은행 융자를 안고 있는 중산층과 서민들은 미국 발 금리인상 소식이 들려 올적 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야권 대통합과 가계부채’, 이 두 가지 화두에 야권이 기사회생할 길이 있다.
노무현 정치의 폐단은 ‘선거공학’이라는 단어이다. 정치공학이나, 선거공학은 모두 인간이 과학의 이름으로 벌이는 기껏해야 확률행위에 불과하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은 과학을 초월한다.
알고 보면, 인간의 분석과 예측은 허무하다. 자칭 타칭 선거 전문가입네 하는 해설자들은 자신의 양심에 물어볼 일이다. 1998년 김대중 당선, 2002년 노무현 당선, 2012년 박근혜 당선을 콕 집어 맞춘 예측자가 있는가?
불확정성으로 요동치는 한국정치와 대선에 예언가는 있어도, 예측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예측이란 예언의 확률적 입증과정에 불과하다.
출구전략, 김대중 중심 깃발로 ‘바보 노무현의 죽음’을 구현해야
숨은 눈길은 국난극복의 방향성과 두 갈래 길을 제시한다. 문-안-박 연대는 하수의 한수 이다. 문 대표가 살아날 출구전략은 먼저, 김대중 중심축으로 획득하고, 그 다음, ‘바보 문재인의 죽음’ 의 구현에 있다.
문재인이 김대중의 깃발을 잡고 ‘노무현의 죽음’을 본 받아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로 ‘정치적 죽음’을 결행할 때, 야당의 국난극복과 선거혁명은 시작된다. 반대로 삶을 도모하려 하면, 초래되는 결과는 그와 추종자들이 감당할 몫이다.
첫째, 문재인은 총선 불출마·백의종군을 선언한다.
둘째, 당 대표직을 유지하며 가계부채 위기극복 실패의 책임을 총선 아젠다로 삼아 박근혜 정권과 각을 세우며, 내년 4월까지 선거정국을 주도한다.
셋째, 모든 인사권은 당에 일임한다. 범 중도 야권 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하여 김대중-노무현계 모든 세력이 총 집결하여 녹을 수 있는 용광로를 스스로 만들게 한다.
문재인의 살신성인만 있을 뿐 패권, 나눠먹기, 기득권, 특권도, 반칙도 없다. 오직 실사구시와 실용의 새로운 목표와 가치를 생성하여 김대중-노무현의 창진적 결합과 노선 계승을 이룬다.
김한길, 안철수, 박영선, 손학규, 정동영, 김부겸, 천정배, 이종걸, 박원순, 안희정 할 것 없이 김구로부터 김대중을 거쳐 노무현에 이르는 노·장·청 전통 야권세력이 총결집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승만으로부터 박정희를 거쳐 이명박에 이르는 박근혜의 역사 대전쟁 세력의 슈퍼헤비급 프레임에 대항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강조한다. 미국 발 금리인상은 인간의 예측을 불허한다. 미국의 기침은 중국에게는 독감이요, 우리에게는 폐렴을 예고한다. 국민들이 똘똘 뭉쳐야 극복할 수 있는, 국난이다.
생각을 바꾸면 미래의 시간이 보인다. 한국의 국가운명과 역사과정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박정희는 ‘독재자’라는 주홍글씨를 이마에 새기며, 국민들을 배고픔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산업화는 국민의 생존과 운명, 그 자체이다. 박정희를 씹어봐야 표만 떨어지는 이유이다.
김대중은 ‘40년 빨갱이’라는 낙인 끝에 IMF 국난 극복과 통일초석을 다졌다. 민주화와 인권은 인간 존엄성과 정신, 그 자체이다. 김대중을 씹어봐야 마음만 공허해지는 이유이다.
박정희·김대중, 모두 살아 숨 쉬는 정치생명체
문재인과 자칭 친노는 곱씹어 봐야 한다. 박정희와 김대중은 모두 살아 있는 정치생명체이다. 같은 현충원에 있는 두 거인을 두고, 여권은 박정희의 뼈와 영혼까지 자손대대로 현재진행형으로 우려 먹는다. 그러나 야권일부 외눈박이들은 김대중을 냄새나는 시체 취급해 버린다. (그러나 호남에게는 그리운 향기이다). 어느 쪽이 실사구시와 실용 일까? 역사란 화석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숨 쉬며 공진한다.
우리나라의 국가운명과 경제 기적은 인간과 과학의 분석과 예측을 비월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정치공학이나 경제 공학으로 분석되고 전망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뉴욕대의 토머스 사전트 교수가 서울대 교수직에 부임한다. 놀랄 일이다. 왜 하필 한국을 선택했는가? 그의 답변은 더욱 경이롭다.
“한국의 역사와 경제는 기적, 그 자체이다. 살아가며 직접 격어보고 싶다”
과학을 비월한 우리 역사와 국가운명 정체성의 자존감을 외국인 사전트 교수보다 명증하게 말해줄 수 있겠는가? 선택과 행동은 스스로의 몫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박요한 선임기자/정치학 박사 yohanletter@ilyo.co.kr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성경,역대하 20장 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