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17일 열렸던 프로야구 올스타전 | ||
지난 20년간 맞대결의 결과는 프로야구의 판정승이었다. 한 해 앞서 출범한 프로야구는 일찌감치 지역연고제를 바탕으로 한 확실한 프랜차이징 전략으로 각 연고구단을 내 고장 팀으로 인식시키며 국민스포츠라는 기분 좋은 닉네임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에 반해 한 해 늦게 출범한 프로축구는 탄생 당시의 강력한 폭발력에도 불구하고 얼마 가지 않아 프로야구의 인기에 밀리고 말았다. 하지만 2002월드컵을 계기로 양자의 서열은 급격히 뒤바뀌기 시작하더니 4강 신화를 이룬 태극 전사들이 K-리그에 복귀하면서 월드컵 때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친 국민들은 자연스레 프로축구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프로축구가 연일 최다 관중 기록을 갱신하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된 반면 기세 등등하던 프로야구는 상당히 위축된 분위기다. 하일성 해설위원(KBS)은 현재의 분위기를 “침체되어 있던 축구가 활성화된 것이지 야구가 죽은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지금 상황은 월드컵에서의 뛰어난 성적에 따라 축구로서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대접이며 스타급 선수들이 배출되면서 지금의 인기를 누리는 게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것. 하지만 하 위원은 월드컵경기장에 대한 부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프로축구가 관광명소로도 손색없는 월드컵경기장에서 게임을 치르는 반면 프로야구는 여전히 20년 이상된 낙후된 경기장을 사용하고 있어 프로야구의 인기하락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기 때문. 이런 경기장 인프라 구축에 대해서는 허구연 해설위원(MBC)도 강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요즘 영화관도 새 건물과 최신 영상 기술이 지원되지 않는 곳에는 관객이 들지 않는다”고 말문을 연 뒤 “승부보다 즐기는 야구를 선호하는 관중들의 입맛을 20년 이상된 구장이 전혀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데다 오히려 관중을 내몰고 있다”며 야구장의 증개축과 신축에 인색한 자세를 프로야구 침체의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했다.
또한 허 위원은 구단 이기주의와 매너리즘도 위기의 프로야구를 불러온 원인으로 꼽으며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구단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 야구가 일주일에 6번이나 열릴 정도로 생활 속의 일부가 될 수 있었는데도 스타 선수를 키우는데 게을리 해온 것도 결정적인 악수였다는 지적이다. 그 대표적인 구단이 올해 2할의 승률로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롯데. 그나마 기대주로 꼽히던 신인들이 줄줄이 해외진출하는 걸 수수방관하다 몇 안 되는 팀내 간판 선수들마저 다른 팀으로 보내고 말았다.
사실 야구로 살고 야구로 죽는다는 구도(球都) 부산 관중의 외면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바닥권의 성적보다 투자하지 않는 구단의 무책임한 경영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에는 박찬호마저 부진해 야구의 인기하락을 부채질했고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수들은 이미 개점 휴업한 상황이다. 또한 월드컵, 아시안게임, 우천으로 인한 순연 등으로 인해 시즌 일정에도 막대한 차질이 빚어져 팬들은 발걸음을 되돌리고 있는데 실제로 올 시즌에는 한국시리즈가 23년 만에 최초로 11월에 시작될 정도다.
열혈 야구팬이 아니라면 요즘 이승엽이 홈런왕 1위를 달리고 있는지 아니면 이종범이 부상 뒤 회복해서 펄펄 날고 있는지 또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조진호가 국내 복귀, SK와 인연을 맺게 됐는지 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난해 일본에서 돌아온 이종범이 연일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며 프로야구의 인기에 큰 몫을 했던 때가 그립다. ‘프로야구의 김남일’은 언제쯤 탄생될 수 있을까.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