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최근 만난 친박계 핵심 중진 의원은 무시무시한 말을 했다. 설로만 나돌던 ‘타깃 김무성’을 입에 올리며 “이 상태로는 우리(친박계)는 가기 힘들다고 본다”고 운을 떼며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우리는 김무성을 몰아 낼 모멘텀을 찾고 있는 것이지 요즘 좀 조용하다고 해서 김무성과 함께 가겠다는 게 아니다. 유승민 사태 때는 세월호 조사와 관련된 국회법이 문제가 됐던 것이고, 지금 김무성한테는 그런 고리가 없을 뿐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개혁, 국정교과서 등에서 김무성이 비토하거나 반항하거나 딴죽을 건 적이 없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무엇이든 (우리와) 의논하고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실수하면 끝이라는 것을 김무성도 알고 있다.”
이 의원은 김무성 겨누기가 친박에서부터 거세게 일어날 것이라 알리며 “우리는 20대 총선에서 ‘K(김무성)-Y(유승민) 라인’이 유지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고도 했다. 그는 “우리는 총선에서 지는 것보다 이 둘이 당내에서 존재하는 것이 더 이른 레임덕을 부를 것이라 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곧 친박계가 김 대표 몰아내기에 시동을 걸 것이란 사전경고로 읽혔다.
이 핵심 의원을 말고도 친박계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총선을 치르고, 20대 총선에 승리하든 패배하든 친박계 위원장을 앞세우겠다는 계획을 흘리고 있다.
김 대표 측도 만만치는 않다. 이미 수개월 전 김무성 축출이 예고된 터라 친박계가 찾고 있는 그 모멘텀을 쉽사리 내주지 않겠다는 계획이 선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몇몇 장면에서 이런 김 대표의 대응과 여유가 포착되기도 했다. 먼저 친박계발 개헌론에서 김 대표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기자들의 숱한 질문에 김 대표는 “그 부분에는 답을 하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모든 에두른 질문을 비켜갔다.
사실상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홍문종 의원이 터뜨린 이원집정부제는 김 대표의 개헌 방향과 일치한다. 그래서 ‘옳다구나’ 하며 한마디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입을 꾹 닫았다. 계파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김 대표가 함정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지난해 이맘때 본인이 말했을 때 득달같이 덤볐던 친박이 임기 중반을 갓 지난 이 시점에 느닷없이 개헌을 이야기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느냐”며 “무대응이 최선의 대응일 때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부친인 유수호 전 국회의원의 빈소를 방문해 유 전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오히려 김 대표는 유승민 의원의 부친상에 가서는 “유 의원과 나는 이회창 총재, 박근혜 대표 시절부터 오랫동안 한 배를 탔고 힘든 일은 둘이 도맡았다. 유승민은 당의 중요한 자산이다. (20대 총선에서) 어려운 일이 전혀 없다”고 유 의원을 위로하기도 했다. 친박계 한선교 의원과 유 의원의 어깨를 두르며 “우리가 와 이리 됐노”라고 한탄 아닌 한탄을 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상가에서의 위로를 두고 친박계가 공세하지는 못할 것을 알고 묵혔던 감정을 표한 것 아니겠는가”라는 정치권의 해석도 있다.
한편에서는 김 대표가 최근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본다. 자신이 당 대표가 된 뒤 한 번도 앞서지 못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을 최근 새누리당이 따라잡은 것을 두고 고무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자신의 지지율을 30%대로 끌어올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미션을 수행하느라 표정을 관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러면서 김 대표 주변부에서는 김 대표에게 대선 후보감으로서 ‘대통합 이미지’를 재각인하고 당내 리더로서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국에서 색깔론을 들고 나오며 연착륙에 성공했으니 다시 통합 행보를 이어가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고 전해진다.
사실 김 대표는 여당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서 인지도를 높인 바 있다. 특히 이 통합 행보는 국민대통합 공약의 파기 일로에 있는 박 대통령과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이어서 김 대표의 강점 이미지로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3년 말 철도파업이 장기화한 상황에서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전신) 박기춘 의원과 힘을 모아 합의를 도출한 ‘해결사 김무성’ 이미지도 준비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연일 대테러방지법안 처리를 주문하는 것도, 폭력시위 주동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며 치안당국의 면밀한 수사와 법원의 공정한 재판을 촉구하는 것도 공포를 잠재울 해결사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한 시도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총선에 앞서 ‘선거의 남왕’ 이미지도 어필하려고 벼른단다. 김 대표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정부의 인사 난맥상 속에서 연전연승했다. 7·30 재·보궐 선거에서는 전남 순천·곡성에서 이정현 최고위원을 불러들였고 당시 15곳 중 11곳을 재패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막 지났던 4·30 재보선에선 필패 예상을 뒤집고 3곳을 싹쓸이했다.
친김무성계 한 인사는 “테러와 폭력시위, 그리고 선거구 획정, 공천룰, 한-중FTA 비준, 노동개혁 5대 법안, 경제활성화법안들, 금융개혁과 공적연금 등 김 대표가 야당과의 담판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들이 차고도 넘친다”며 “이런 승수를 쌓을수록 초조해지는 쪽은 저쪽(친박계)이며 우리는 유리한 구도를 이어가며 총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친김무성계를 비롯한 비박계는 오로지 “김무성이 견디기만 하면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내다본다. 유승민 의원과 측근들도 “김무성이 견디면 도와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마약사위 파문, 부친의 친일 의혹, 처남의 서울 서초갑 출마 등 가족의 흑역사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줄타기를 해왔듯 향후 공천이냐 사천이냐 하는 논란과 친박계에서 제기할 수 있는 실정 논란 등에서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주문이 끊임없다는 것이다.
최근 김 대표와 친박계는 조기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이냐 공천룰 특별기구 구성이냐를 두고 갑론을박했다. 김 대표는 조기 공관위에서 공천룰까지 논의하자는 쪽이었고, 친박계는 의원총회 결과대로 특별기구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거의 닷새간 이 갈등이 지속적으로 보도되자 한 발짝 물러나 “특별기구 구성이 먼저”라며 투항했다. 김 대표가 또 친박계에 백기투행했다는 악평도 있지만 한쪽에선 친박계와의 일합을 다시 비켜간 한 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친박의 공세와 김 대표의 대응이 날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