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양각색의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이 영어로 단 한 명의 이름을 외친다. 발음은 명확했다. ‘Lee’가 아닌 ‘이’순신이었다. “정말 이순신이 북미에서 인기가 있냐”는 기대와 의심이 섞인 기자의 질문에 “답변 대신 이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라며 온리 콤판(32)이 기자에게 보여준 화면이다.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만화로 그려낸 미국인 온리 콤판.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그는 최근 충무공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책 <이순신: 전사 그리고 수호자(Yi Soon Shin Warrior and Defender)>의 한국어 번역판을 출간했다. 지난 9월 3일 한국의 서울문화사와 출판 계약했으며, 지난 11월 19일 12권의 만화 시리즈 가운데 첫 권이 나왔다.
온리 콤판은 2005년 만화업계에서 일하면서 흥미로운 캐릭터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시기에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본 뒤, 단번에 이순신이라는 캐릭터에 빠져들었다. 그는 “<The 300>으로 유명한 프랭크 밀러라는 작가가 그래픽 노블을 기반으로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싸운 스파르타 군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라며 “밀러가 한 것처럼 나 역시 이순신을 재해석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순신 캐릭터에 강하게 끌렸지만, 생소했던 영웅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만화로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콤판은 “처음에는 과연 내가 이런 일을 할 만한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2년이란 시간에 걸쳐 조사했고, <난중일기>나 <임진장초>, <징비록> 같은 사료들을 보며 공부했다”라며 “지난 2008년엔 한국에 와서 육·해군 관계자들과 이순신 전문가를 만나 유적지를 답사하고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가 펼쳐 보인 책 속에서 세밀하게 묘사된 의복, 판옥선 등이 볼 수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오랜 기간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4년여의 준비과정 끝에 지난 2009년, 열두 권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 북미에서 출간됐다. 하지만 긴 시간동안 시리즈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몇 번의 중단 위기를 겪었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했던 건 가장으로서, 가족들 앞에서 당당하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11월 출판될 예정이었던 한국어판 작업이 한 차례 무산되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올해 초엔 재정난으로 후속 시리즈 발간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콤판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미국과 한국에서 2만 5000달러를 모금했다. 수많은 한국 팬들이 지원에 나서 성공적인 펀딩이 이루어져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라며 “그래서 이번 한국어판 로열티 일부를 한국의 자선단체 두 곳에 기부할 예정이다. 금액은 크진 않지만 던지는 메시지는 강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콤판은 임진왜란을 통해 또 다른 시리즈를 기획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임진왜란이 한국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영웅들의 시대이기도 했다”라며 “기회가 생긴다면 곽재우, 논개, 권율 장군 등을 시리즈로 다루고 싶다. 이런 분들을 다루는 것이 이순신에 대한 깊이를 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창작한 그래픽 노블 <이순신: 전사 그리고 수호자(YI SOON SHIN: Warrior and Defender)>는 지난 19일 양장본과 서울문화사의 남성웹툰인 ‘빅툰’을 통해 동시 발간됐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