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당시 식사 장면. | ||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것은 어떻게 해서 감독직이 정해성 코치에서 박항서 감독으로 옮겨갔느냐 하는 부분. 지난 6일 기술위원회가 끝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진국 위원장은 박항서, 정해성 두 코치 중 한 사람을 감독으로, 나머지 한 사람을 코치로 앉히는 ‘세트 플레이’만 결정했을 뿐 누굴 감독으로 뽑을지에 대해선 정하지 않았다는 이상한 시나리오를 들고 나왔다. 김 위원장은 ‘두 사람의 의사를 물어본 후 감독과 코치를 임명하겠다’는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했고, 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기자들이 두 사람과의 ‘사전 접촉설’에 대해 묻자 김 위원장은 “누구와도 만난 적이 없다”며 강한 부인으로 일관했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10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 위원장과 만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처음엔 아시안게임 때까지만이라고 해서 고사했다가 나중에 올림픽 때까지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고 수락한 것이라고.
정리를 해보면 김 위원장은 기술위원회가 열리기 전 먼저 박항서 감독을 만나 대표팀 감독직에 대한 의중을 떠봤고 박 감독이 아시안게임 때까지라는 데에 반발하자 이번엔 정 코치를 만나 2004년 올림픽 때까지라는 새로운 카드를 제시한 뒤 정 코치로부터 수락 의사를 확인하자 기술위원회를 소집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기술위원회가 열리자 두 사람 체제로 대표팀을 끌고 가는 부분에 대해 거센 반대가 일었다. 특히 정 코치를 감독직에 앉히는 부분에 대해선 난상토론이 일어났다. 결국 마라톤 회의 끝에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감독이 되는 걸로 결론을 맺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회의가 끝난 뒤 다시 박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올림픽 때까지라면 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고 박 감독의 OK사인이 나자 정 코치와의 사전 의견 조율을 백지 상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기술위원회에 참석했던 A씨는 이 부분에 대해 색다른 해석을 곁들였다. 성인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지 않고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만 결정한 것도 그렇고, 기술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축구협회 가삼현 국제국장이 네덜란드로 날아가 히딩크 감독을 만난 것으로 보아 ‘박 코치가 감독으로 결정난 데에는 히딩크의 입김이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는 내용이다.
▲ 23세 이하 대표팀을 맡은 박항서 신임 감독. | ||
즉 히딩크 감독이 9월로 예정돼 있는 남북축구대회와 연말에 있을 한·일전, 그리고 앞으로 있을 주요 A매치 대회 때 성인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고 박항서 코치는 23세 이하 대표팀을 맡으며 히딩크의 ‘원격 조종’을 받는다는 것이다. 현재 히딩크 감독은 계약서에 사인은 하지 않았지만 축구협회의 기술고문으로만 확정된 상태다. 아직까지 그의 입에서 ‘한국대표팀 감독을 맡겠다’는 공식 멘트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협회측이 그가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성인 대표팀 감독직을 공석으로 남겨뒀고 히딩크와 호흡이 잘 맞는 박 코치에게 잠시 ‘대권’을 맡기면서 어떻게든 히딩크 체제를 이끌고 가려 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렇다면 축구협회가 이렇듯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히딩크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려 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한국 축구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히딩크 감독만 한 적임자가 없다는 것이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정몽준 회장의 대선 출마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상당수 축구인들의 지적이다.기술위원 B씨도 협회가 히딩크의 그늘을 버리지 못하면 자칫 ‘히딩크 딜레마’에 빠져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협회가 순수하게 히딩크를 통해 한국 축구의 발전만을 꾀하려는지 아니면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정치적인 목적이 없다면 히딩크만이 한국 축구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발상을 버리고 새로운 외국 감독이나 국내 감독에게 문을 열고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차기 감독을 정해야 한다.” 그러나 축구협회의 가삼현 국제국장은 이런 반응들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다.
“축구협회는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하는 곳이다. 개인의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될 수 없다. 히딩크 감독을 기술고문으로 영입하는 것은 이미 전 기술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이다. 그런 결정이 있었기 때문에 네덜란드에 가서 히딩크 감독을 만나고 온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히딩크 감독에게 목을 매는 게 아니라 어드바이스를 부탁하는 것이다. 그가 떠날 때는 국민모금운동을 해서라도 붙잡으라고 해놓고서는 이제와서 왜 다른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