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회택 감독 | ||
‘감독은 물러나라.’
지난달 20일 포항과의 경기에서 전남 서포터스 응원 구역에 걸린 플래카드의 내용이다.
이날 경기에서 전남 서포터스는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현장에 있던 구단 관계자와 일반 관중들을 당혹하게 했다. 이회택 감독은 경기중 굳은 얼굴 표정으로 벤치를 지켰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감독은 경기를 마친 뒤 대수롭지 않다는 정도로 이 일을 넘겼으나 큰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7일에도 전남 서포터들은 이 감독의 용병술을 문제 삼아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해산했다.
전남 드래곤즈 서포터(위너 드래곤즈)측은 작년에도 공개 질의서를 통해 이회택 감독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단에서는 무응답으로 일관했고 이에 서포터들은 공개시위를 하기 전에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1천5백장의 전단지를 만들어 관중과 서포터들에게 배포했다. 내용은 ‘지난 3년 간 전남 드래곤즈의 성적 및 팀 분위기 저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 감독이 사퇴하기 바란다’는 것.
▲ 김정남 감독 | ||
이런 공개적인 퇴진 요구에 대해 김문형 위너 드래곤즈 회장은 “우리 서포터들도 제 살을 베는 것처럼 아프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감독 문제뿐만 아니라 구단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투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가 이쯤 되자 지난달 28일 전남 구단측은 서포터들과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이 자리에서 서포터들은 ‘팀 서포터 공식 해체’라는 강수를 두었다. 이에 적잖이 놀란 구단측은 7개 협의안을 마련했고 ‘앞으로 재미있는 축구를 하겠다’는 조항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위너 드래곤즈 회원들은 “이러한 구단의 노력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지만 퇴진 운동을 그만둔 것은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서포터는 “다른 조항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재미있는 축구만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만족한다”며 협상내용에 대해 평했다.
팀의 전술은 감독의 고유권한이다. 이런 고유권한에 대한 서포터들의 참견은 지나친 행위라는 비판도 있는 게 사실. 하지만 전남 서포터스 김문형회장은 “우리는 서포터이기 이전에 축구 소비자다. 소비자가 경기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퇴진 주장은 갑자기 나온 것도 아니고 3년이란 시간 동안 지켜봐온 결과”라고 말했다.
▲ 지난 7월7일 전남의 서포터들이 경기 후 ‘뒤풀이 ’를 하고 있다. | ||
그러나 이런 서포터들의 의견이 무색하게 최근 전남의 성적은 괜찮은 편. 한때 리그 1위를 차지했고 지난달 27일 홈 경기에서는 전북을 2-1로 격파하는 등 좋은 경기를 선보이고 있다. 울산의 김정남 감독도 일부 울산 팬들에게 타깃이 되고 있다. 전남 서포터들처럼 강한 어필은 아니었지만 마찬가지로 ‘물러나라’는 플래카드가 한때 걸렸었다. 구단 관계자는 “김 감독은 이 플래카드를 보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구단측에서 중간에 경기 중간에 치웠다”며 “해프닝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울산은 여섯 경기 무승행진을 계속하다 지난 4일 포항전에서 3-0으로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다. 때문에 김 감독에 대한 퇴진논란은 서포터 게시판에서도 자취를 감추고 있는 상황이다. 울산 현대의 서포터스인 ‘처용전사’ 회장 김영현씨는 “퇴진 의견은 서포터들의 전체적인 의견은 아니다. 소수의견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씨는 게시판에 ‘감독 퇴진 카드섹션을 하려다 구단측에게 제지당했다’는 내용이 떠돌고 있는 것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울산 서포터들은 ‘감독 퇴진’이란 강수는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갈수록 줄어드는 관중과 서포터들이 걱정스럽기만 하다고 말한다. 한 서포터는 “‘울산현대’라는 네 글자 카드섹션을 해오다 서포터들이 모자라 한때 울산 두 글자로만 카드섹션을 했다”며 “팀이 보다 재미있는 게임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불만이 계속 터져나오자 울산 구단측도 ‘조금만 더 지켜봐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서포터들의 감독 퇴진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 서포터는 “히딩크 감독이 부진할 때 언론과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퇴진을 원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서포터들만 좋지 않게 보는 것은 옳지 않다”며 “연고팀이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은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서포터들의 지나친 간섭이 오히려 선수나 팀워크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축구인들의 지적도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대목.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퇴진 논란의 한가운데 섰던 두 감독이 이끄는 팀이 최근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