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프로농구 여름 리그에서 사령탑을 맡아 신고식을 치른 유영주 감독대행(31·국민은행)은 여장부 같은 기개와 상대방을 압도하는 체격에다 걸걸한 입담으로 여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박광호 감독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인해 멋모르고 그 자리를 맡은 이후로 하루의 시작과 끝이 실수로 시작해서 시행착오로 끝나는 진땀나는 사건들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한다. 감독이란 굴레를 벗고 선수들에게 자상한 언니와 엄한 코치로 다가설 때 팀 분위기가 훨씬 좋아진다는 걸 체험했다고 말하는 유 감독대행의 좌충우돌 감독 수련기를 들어봤다.
▲ 국민은행 유영주 감독대행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감독을 맡아 무척 힘들었다고 털어놓 았다. 이종현 기자 | ||
체중이 13kg이나 불었다고 한다. 온갖 스트레스를 모두 먹는 걸로 푼 결과였다. 먹는 동안엔 아무 생각 없었으나 나중에 TV 에 나온 자신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무더위를 부채질하는 육중한 체격이 키 크고 날씬한 상대팀 남자 감독과 너무 대조적이었던 것이다.
유 감독대행은 벤치에 앉자마자 남성우월주의가 만연돼 있는 농구계의 여러 가지 편견들과 싸워야 했다.
“여자농구지만 남자들이 모두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코치도 여자가 맡기 어려웠으니까요.
그런 환경에서 나이마저 어린 햇병아리가 감독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덜컥 벤치에 앉았으니 그 모습이 얼마나 가소로웠겠어요. 물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남자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그래, 너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투로 지켜보는 눈들도 많았어요.”
화통한 성격 탓에 프런트나 타 구단 감독들과 심한 마찰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워낙 경험이 없다보니 어떤 실수도 용서가 됐다는 사실. 벤치에서 가장 당황했던 부분이 작전 타임을 부르는 타이밍 맞추기였다. 감독 데뷔전이나 마찬가지였던 삼성생명전에서는 적절한 시기를 못 잡아 여러 차례 헤맸다고 털어놓는다.
“처음엔 적절한 분배를 할 줄 몰라 초반에 선수들을 자주 불러 들였다가 정작 중요할 때 작전 회의을 하지 못할 때도 있었어요. 그리고 1분30초란 시간이 왜 그리도 긴지, 선수들에게 할 말 다했는데도 시간이 남는 거예요.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코트로 내보내곤 했어요. 감독이란 사람이 별다른 작전을 내세우지 못하니 할 말이 없는 거죠.”
심판에게 어필하는 부분도 선수 때와 너무 달랐다. 선수시절의 그는 어필 잘하는 선수 1위로 꼽힐 만큼 거칠 게 없었다. 그러나 벤치에서 심판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심판들은 나이 어린 여자 감독의 애교쯤으로 인식하는 듯 웃음으로 넘기기 일쑤였다.
감독대행을 맡고 나서 4경기 만에 지긋지긋한 7연패의 사슬을 끊고 감격의 첫 승을 거뒀다.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아쉬움은 없다고 한다. 어차피 플레이오프 진출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자신감을 되찾았다는 사실이 그 이상의 보람을 안겨준다.
선수들에게 ‘감독 언니’ 정도로 인식되었다는 유 감독대행은 경기가 치열해질수록 오히려 선수들로부터 격려와 위로를 받았다고. “작전 타임 때 들어온 선수들이 흥분하는 절 안심시키느라 더 바빴어요. 혼자서 벤치를 지키는 제 모습이 안쓰러워보였대요. 자신들의 플레이에 따라 제 운명이 좌우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완전히 거꾸로 된 거죠.”
유 감독대행은 여름 리그를 끝으로 감독대행 자리는 그만둘 계획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지도 방식은 자신에게도 또 선수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더 길어지면 들통나요. 그동안엔 임기응변으로 대처해나갔는데 어떻게 더 연장할 수 있겠어요. 욕심이요? 전혀요. 경험만 가지고 안 되는 일이 지도자인 것 같아요. 이론의 중요성을 절감했거든요. 더 공부해서 바탕을 갖춘 다음에 기회를 잡고 싶어요.”
한 가정의 아내이면서도 시즌 동안 아내이기를 포기하고 살다보니 부부간에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라는 유 감독대행은 감독생활 중 가장 힘든 부대 활동이 무엇이었냐고 물었더니 “룸살롱 가서 술 마시는 것”이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