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도와 협박 혐의로 검거돼 용산경찰서로 압송된 안정환 선수의 모친 안혜령씨가 얼굴을 감싸쥔 채 흐느끼고 있다. 우태윤 기자 | ||
15일 절도와 협박 혐의로 ‘동행자’ 김아무개씨(39)와 함께 용산경찰서 강력2반 형사들에 의해 검거된 안씨는 지난해 2월부터 6건의 사기 혐의로 검찰과 경찰의 수배를 받아왔다. 이번에 검거된 내용은 한 마디로 어처구니없는 경범죄나 마찬가지. 도박장에서 함께 도박을 하던 일명 ‘꽁지’ 김아무개씨의 지갑에서 현금 10만원과 신용카드 등을 훔친 뒤 이를 갚으라고 다그치는 김씨를 협박한 혐의로 붙잡혀 들어간 것이다. 사안은 아주 경미했지만 이미 수배중이었다는 사실과 안정환의 어머니라는 뗄 수 없는 꼬리표가 결국 엄청난 사건으로 비화되고 말았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돼 노모와 아들을 위해 식당, 다방, 종업원 생활을 전전했던 안씨의 인생은 파란만장함 그 자체다. 화려한 축구 인생을 펼치고 있는 아들의 그늘에 가려 ‘도망자’ 신세가 되기까지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사연들이 한가득이다.
16일 용산경찰서 강력2반 사무실에서 처음 대면한 안씨는 인터뷰를 극구 거부했다. 그때만 해도 언론에 보도가 되지 않은 상태라 기자를 보는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제발 기사화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하며 더 이상의 대화를 원치 않았다.
그러다 17일 아침 방송과 신문에 일제히 안씨에 대한 보도가 나가면서 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오후 5시경 기자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연신 눈물을 감추지 못했던 안씨는 그동안 안정환 어머니로서의 삶과 도박에 빠지게 된 사연, 그리고 아들에 대한 회한 등을 모두 털어놓았다. 다음은 안씨와의 일문일답 내용.
―유명 축구 선수를 아들로 둔 사람이 어떻게 해서 이 지경까지 오게 됐나.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에 대한 오해도 너무 많은 것 같다. 내가 처음 빚을 지기 시작한 건 도박 때문이 아니라 정환이가 대학 다닐 때부터였다. 생활이 어려우니까 뒷바라지를 하려면 돈이 필요했고 내가 버는 돈으론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씩 돈을 빌렸는데 정환이가 프로구단에 입단한 뒤 스타가 되니까 백원 빌린 돈이 갑자기 오백원 빚진 걸로 둔갑했고 돈을 갚지 않으면 정환이 찾아가서 축구를 못하게 만들겠다, 매장시키겠다는 협박도 많았다. 엄마 입장에서 아들한테 너무 부끄러웠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사채업자를 찾았고 그걸 갚지 못해 빚은 더욱 누적되기만 했다.
―항간에는 도박 때문에 빚을 졌다고 알려졌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기껏해야 오백원 천원짜리 고스톱이 전부였다. 사채를 끌어 쓴 게 잘못이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안정환에게 빚을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었나.
▲98년도에 1억6천만원 정도를 변제해줬다. 그러나 그때도 전부 정리가 되지 않고 한 1억5천만원 정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정환이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혼자서 전전긍긍하다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된 정환이가 불같이 화를 내며 결별 선언을 했다. 인연을 끊자는 얘기였다.
―혹시 안정환 엄마라는 타이틀을 내세워서 돈을 빌린 적이 있나.
▲난 단 한번도 누구의 엄마라고 내색하지 않았다. 자식 앞세워서 사기 치고 다닌다며 손가락질 받을 때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돈을 빌려주는 사람 입장에선 엄마보다 안정환을 보고 빌려줄 수 있는 게 아닌가.
▲물론 그랬을 것이다.
―빚 독촉을 받을 때마다 “곧 정환이한테서 돈이 올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들었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돈을 갚지 못하겠다면 고소 운운하며 난리 칠 것이고 또 내심 정환이가 다소 얼마라도 내놓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월드컵 이후 보너스도 챙겼고 해서 아무리 미운 엄마라고 해도 좀 도와줄 거라고 믿었다.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가. 아들이 원망스러운지.
▲내가 한 짓에 대해선 죄값을 달게 받을 각오가 돼 있다. 하지만 정환이한테는 섭섭하고 서운한 감정이 있다. 그 애가 나빠서가 아니라 한 번만 더 날 이해하고 배려해줬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정환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해 (이)혜원이와 약혼식했던 7월에 보고 그 이후론 전화 통화 몇 차례 했던 게 고작이다.
―아들 결혼식에 참석도 못했는데.
▲빚쟁이들이 잔뜩 몰려갈 거라는 얘길 듣고 어떻게 갈 수가 있겠나. 그게 엄마로서 가장 미안하다. 온몸에 마비가 올 만큼 가슴이 아팠고 한스러웠다.
―그동안 주로 어디에서 지냈나.
▲일산 작은 언니집과 포천 큰 언니집, 아는 언니네 집, 여관 등을 전전하며 다녔다. 하우스(도박장)에 간 것은 친척집에서 지내기가 너무 염치없을 때 찾아갔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도박은 할 수도 없었다.
―좋은 사람 만나서 새출발할 생각은 없었는지.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도 있지 않았겠나.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정환이가 뜨고 나니까 재혼을 생각할 수 없었다. 괜히 좋지 않은 이미지만 안겨줄까봐. 그런데 지금이 더 안 좋은 꼴이 되고 말았다.
―절도 혐의에 대해서 억울하다고 했는데.
▲돈을 훔쳤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평소부터 아는 언니였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돈을 꺼내갔다. 나중에 갚으려고 했지만 갚을 형편이 안됐다. (안씨는 하우스에서 일명 ‘이태원 언니’로 불리는 ‘꽁지’ 김씨의 지갑에서 몰래 20만원을 꺼낸 후 10만원은 다시 돌려줬지만 나머지 10만원과 신용카드로 사용한 돈을 갚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김씨가 이전에 빌렸던 4백80만원에다 몰래 쓴 돈까지 다 갚으라고 요구하자 돈이 없어 못갚겠다고 맞서는 안씨와 말다툼이 벌어졌고 이 와중에 안씨가 김씨를 협박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솔직히 지금도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다. 못난 엄마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정환이가 마지막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보다 정환이 형편이 낫지 않겠나. 날 구제해줬음 하는 염치없는 바람을 가져보는데 글쎄, 이렇게 말하는 날 욕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감당하기가 너무 벅차다. 안씨는 안정환 어머니란 타이틀이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망쳤다며 울었다. 자신의 아들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기삿거리도, 돈을 쉽게 빌려쓰지도, 빌려주지도 않았을 것이란 하소연이다. 지금 처지에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태지만 지난 일을 되짚어 볼수록 아쉽고 후회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모양이다. 담당 형사가 사다준 청심환을 앞에 두고 또다시 눈물을 흘린 안씨는 가슴이 아프지만 너무 홀가분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되뇌었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