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가 주연으로 나선 드라마들이 약속이나 한 듯 사전제작을 추진하는 숨은 배경은 ‘중국 시장’에 있다. 중국 내 한류열풍이 증폭된 상황에서 그 인기를 만들고 유지하는 핵심 콘텐츠는 단연 드라마다. 특히 현지에서 인지도가 높은 한류스타가 출연하는 드라마의 경우 중국 자본은 물론 현지 제작사 역시 앞 다퉈 판권 구입을 원하는 상황. 이런 분위기에서 중국시장을 깊숙이 공략하기 위해 국내 드라마 제작진이 찾은 방법이 바로 사전제작 시스템이다.
# 안정적인 재원 확보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여배우로 꼽히는 송혜교는 현재 송중기와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에 한창이다. 내년 2월 KBS 2TV를 통해 방송할 예정이지만 이미 올해 6월부터 촬영을 시작해 거의 모든 분량을 마무리했다.
KBS 2TV ‘태양의 후예’
<태양의 후예>는 중앙아시아 가상 국가를 배경으로 재난을 이겨내는 군인과 의사의 이야기다. 그리스에서 진행한 대규모 해외로케 등을 통한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다. 최근 제작비가 줄어드는 국내 드라마 환경에 비춰보면 <태양의 후예>의 규모는 단연 최고 수준. 스타를 앞세워 규모를 키우고 사전제작까지 진행하는 데는 중국 자본의 투자 유치와 한·중 동시 방송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혜교
물론 중국으로부터의 투자 유치보다 드라마 제작진이 더 주력하는 부분은 국내와 중국에서 해당 작품을 동시에 공개하는 전략이다. 그만큼 한·중 동시 방송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중국은 아직 콘텐츠의 불법 유통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나라다. 한국에서 드라마가 방송되고 거의 실시간으로 현지 여러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불법으로 유통되는 일이 다반사다. 때문에 한국에서 방송을 마친 드라마가 중국으로 수출돼 몇 달 뒤 방송하는 시스템은 이제 무의미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온라인으로 감상한 한국드라마를 굳이 사후에 유료 사이트 등을 관람하거나 TV로 감상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SBS ‘사임당’
이영애가 드라마 <사임당 더 허스토리>로 연기활동을 복귀하면서 사전제작을 택한 이유도 이런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다. 2003년 출연한 MBC <대장금> 이후 12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이영애는 이미 8월부터 <사임당> 촬영을 시작했다. 드라마는 내년 상반기에 SBS를 통해 방송될 예정이지만 제작진은 그 전까지 전체 분량을 완성한 뒤 한·중 동시 방송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미 <사임당> 제작사는 홍콩기업 엠퍼러그룹으로부터 100억 원의 투자 협약을 체결하면서 제작비를 마련했다. 중국어권에서 그 가치를 먼저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이영애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국내에서 먼저 방송한 드라마가 추후 중국에 수출돼 공개될 때 그 관심도는 실시간으로 전해진 때와 비교해 절반 이상으로 떨어진다는 분석이 있다”며 “콘텐츠 불법 유통의 문제는 둘째 치고,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파급력이나 콘텐츠를 활용해 만드는 다양한 기획마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보니 그 대안으로 한중 동시 방송을 추진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 원하는 수익성 얻을까
드라마들이 사전제작을 통해 한중 동시방송을 추진하는 목적은 결국 ‘수익성 확보’에 있다. 중국이 세계 최고의 시장이 된 상황에서 한류 콘텐츠를 활용한 수익 확보에 드라마 제작진은 물론 한류스타들 역시 주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중국 시장을 겨냥해 사전제작으로 이뤄지는 이런 드라마들의 경우 주연 배우들의 몸값 역시 회당 수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중국 시장의 특수성 탓에, 톱스타를 내세운 사전제작 드라마들이 저마다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 방송을 추진하는 해외 드라마는 현지 심의기관인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최근 한국 드라마에 대해 과거와 비교해 까다로운 심의를 진행하는 중국에서 내년부터 잇따르는 이들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물론 한중 공동 제작의 경우 심의에 다소 유연한 기준이 적용되지만 자국 문화 보호에 주력해온 중국이 언제 그 기준을 바꿀지도 알 수 없다.
사전제작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주연으로 캐스팅된 수지
방송가에서는 사전제작 드라마의 도입이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드라마 제작 전반에 ‘고질병’으로 꼽히는 생방송 촬영과 과도한 PPL(간접광고)의 폐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기대심리도 나온다. 송혜교의 <태양의 후예>나 이영애의 <사임당>이 새로운 제작 모델을 제시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다면 그 여파는 국내 드라마 제작 전반에 퍼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부정론도 나온다. 과거 일본이 한류의 중심으로 인정받을 당시, 현지 수출을 목적으로 제작했던 드라마 대부분이 작품성은 물론 시청률 면에서도 실패를 거듭한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자본이 투입된 사전제작 드라마들이 그 실패를 답습할 가능성을 여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