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하리 처음처럼’ 등 과일소주의 인기가 한풀 꺾이는 모양새다. 이종현 기자
“3박스 나가던 게 요즘은 한 박스나 나가려나.”
지난 4월 그야말로 ‘없어서 못 팔던’ 과일소주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서울 시내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박 아무개 씨(59)는 과일소주 재고 관리에 여념이 없다. 쏟아지는 다양한 종류 탓에 가뜩이나 비좁은 냉장고 쇼케이스를 어떤 제품으로 채워야 할지 고민도 상당하다. 마트에는 순하리 처음처럼 유자향, 좋은데이 블루베리, 자몽에 이슬 세 종류가 들어차 있었다. 박 씨는 “주류는 계절을 탄다. 겨울은 전반적으로 주류가 덜 나가는 시기다. 젊은 사람들이 꾸준히 과일소주를 찾긴 하지만,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또 근처 주민들의 연령대가 높아 ‘오리지널 소주’의 인기를 이길 주류가 없다”고 설명했다.
올 한 해 주류업계는 과일소주 등 순한 술의 ‘효자상품’ 효과를 톡톡히 봤다. 과일 소주 시장의 문을 열어젖힌 순하리 시리즈를 출시한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영업이익이 71.5%나 올랐다. 주류 시장의 만년 ‘2인자’가 설움을 푼 셈.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를 출시한 무학 역시 3분기 판매량이 전년 대비 24%나 증가했다. 전남 지역에 거점을 둔 보해양조의 경우 3도짜리 탄산소주 ‘부라더#소다’가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다양한 종류의 과일소주 출시로 소비자들의 선택지가 넓어지면서 2015년 자영업자들의 생존전략도 바꿨다. 순하리 품귀현상이 벌어진 올해 중순에는 ‘순하리 파는 술집’으로 입소문을 타 매출 증대를 톡톡히 본 이들도 있었다. 때문에 한동안 편의점 등 소매점에서는 찾을 수 없는 순하리를 식당에서만 볼 수 있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생존전략도 물량이 풀리면서 ‘약발’이 떨어졌다.
요즘은 오히려 과일소주가 자영업자들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과일소주를 찾는 손님은 확연히 줄었지만, 원하는 주종이 없으면 나가버리는 손님들도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서울 시내 한 실내포장마차의 종업원은 “날씨가 추워지면서 일반 소주를 찾는 손님이 다시 늘었다. 그래도 여전히 젊은 손님들은 찾는 주종이 다양해 입맛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그 많은 종류의 과일소주를 다 채워 넣을 순 없어 손님들 반응을 봐 가며 물건을 들여놓고 있다”며 “‘원조’인 순하리 유자와 자몽에 이슬 인기가 그래도 꾸준한 편”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식당 주인은 “과일소주는 이제 아예 들여놓지 않고 있다. 손님들이 싱겁다고 한다. 다 한때 유행 아니었겠나”고 말했다.
다양한 미투 제품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했던 탄산소주 시장 역시 확장세는 보이지 않는다. 알코올 도수를 3도로 낮추고 탄산을 가미해 인기를 끌고 있는 보해양조의 ‘부라더#소다’ 역시 출시 직후부터 품귀현상이 벌어졌던 제품. 최근 탤런트 하연수를 모델로 내세워 TV광고도 시작했지만, 과일소주 열풍이 주춤하면서 판매량 전망은 밝지 않다. 전통적으로 독한 술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입맛에 비춰봤을 때 매출 신장에 한계가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부라더#소다 품귀 현상 당시 물량을 확보해 재미를 봤던 자영업자 이 아무개 씨(45)는 “호기심 때문에 손님들이 많이 찾았지만 요즘은 찾는 사람만 찾는다. 확연히 호불호가 갈리는 제품인 것 같다. 앞으로도 구비해둘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2의 짜장라면 전성기를 이끌어 낸 농심의 ‘짜왕’은 올해 시장 점유율 4위에 올랐다. 특히 수도권 지역에서는 점유율 2위에 올랐다. 짜왕은 굵은 면발과 불맛을 더한 소스로 한동안 품귀현상을 벌이며 ‘프리미엄 짜장라면’ 시장을 열었다. 지난 4월 출시 이후 한 달 만에 600만 개를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하면서 팔도의 ‘팔도짜장면’, 오뚜기 ‘진짜장’ 등 미투제품이 출시됐다. 미투제품들이 SNS를 통한 홍보와 품귀마케팅 등을 시도했으나 원조 제품을 따라잡긴 역부족이었다. 앞서의 편의점 업주는 “대부분 신제품이 출시되면 판매량이 잠깐 늘었다가 원조 상품으로 눈을 돌리더라. 짜장라면 역시 한두 제품만 꾸준히 나가 발주 목록을 정리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올 한 해는 유독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스타 상품’이 많았다. 어떤 제품이 해가 바뀌어서도 ‘롱런’할 것인지 소비자들의 선택을 좀 더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해외 교민들 현재 ‘희소템 앓이’ 중 “과일소주 4병에 10만 원” 헐~ “한국에서 올 때 마시려고 가지고 온 건데 생활비가 부족해서 넘겨요. 좋은데이 블루베리, 석류, 복숭아, 순하리 유자맛 4병을 120달러에 팔아요.” 호주에 사는 한인들의 커뮤니티인 호주나라에 올라온 글이다. 과일소주 네 병을 우리나라 돈으로 1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고 있다. 또 다른 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1700원 남짓인 순하리 파우치형 제품을 개당 6호주달러(한화 약 5000원)에 팔고 있었다. 허니버터칩은 올해 초 한 봉지에 30~40호주달러(2만 5000원~3만 4000원) 선에서 거래되기도 했다. 어디에 살고 있어도 한국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은 비슷하다. 국내 상품이 품귀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해외에 있는 교민들에게까지 전해지면서 올 한 해 해외에서도 희소템 구하기 전쟁이 벌어졌다. 잠시 한국에 들어갔다 오는 이들이나, 한국에서 놀러오는 지인들에게 부탁하는 구입목록 1순위로 자리 잡았다.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는 이 아무개 씨(23)는 “허니버터칩은 일본의 ‘시아와세버터칩’이 원조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허니버터칩이 그렇게 맛있다고 얘기를 해서 궁금하더라. 일본에 놀러오는 친구에게 부탁해 겨우 먹어봤다. 원조가 더 맛있었지만 ‘드디어 먹었다’는 만족감을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호주에 살고 있는 박 아무개 씨(여·28)는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살고 있어 웬만한 건 한국에서 나오는 즉시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올 초엔 순하리를 맛보지 못해 애를 태웠던 적이 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어찌나 극찬을 하던지 인근에 있는 한인마트를 한동안 수소문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허니버터칩 정식 수입이 미뤄지면서 미투제품들이 기를 폈다.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는 한 유학생은 “허니통통 등 비슷한 제품은 미국에도 있다. 허니버터칩은 한국에서 출시된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도 여전히 구하기 힘들다. 소주는 여기서 팔긴 하지만 가격이 엄청나게 차이난다. 예전에는 한 번씩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미국제품 선물하기 바빴는데, 요즘은 한국에서 맛있는 것을 구해오는 게 더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