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9일 열린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1심 마지막 재판에서 재판부가 선택한 양형이었다. 재판정에 있던 장세주 회장과 변호인, 동국제강 임직원은 물론 검사까지 불만족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장세주 회장 입장에서는 실형이 나와서, 검찰은 양형이 너무 적었기 때문. 동국제강 쪽에서는 “검찰이 장세주 회장을 한낮 노름꾼으로 몰았다”며 양형이 너무 지나치다고 하소연했다. “오너가 없어서 회사 운영이 힘들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장세주 회장 입장에서는 집행유예가 안 나왔다며 아쉬워하겠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재판을 놓고 적잖은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검찰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이 4월 21일 회삿돈을 빼돌려 도박을 한 혐의에 대해 조사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됐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우선 양형의 형평성. 포스코 수사 당시 비슷한 금액(135억 원)대의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박재천 코스틸 회장은 검찰이 징역 2년 6개월을 구형했음에도,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박 회장은 검찰 수사 초기 단계부터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고, 선처를 호소했다(<일요신문> 1228호 보도).
동국제강과 비교해 봐도 규모나 위상이 다르다. 동국제강은 코스피 상장사로 주인이 ‘주주’들이지만, 박재천 회장의 코스틸은 비상장 개인 소유 회사다. 이들이 횡령한 회사 돈의 성격과 피해를 입은 대상이 명백히 다르다. 무엇보다 박재천 회장은 같은 범죄행위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
반면 장 회장은 이번에 127억 원 특경가법상 횡령 및 상습도박, 배임 및 배임수재 혐의를 받았다. 무엇보다 장세주 회장은 전과가 있다. 이미 한 차례 상습도박과 횡령으로 재판까지 받았다. 이번에 검찰의 구형도 징역 8년이었다. 그런데 법원은 양형기준(징역 4~7년)을 이탈해 가며, 징역 3년 6개월을 선사했다. 심지어 이 양형기준은 다른 혐의를 제외하고 횡령만으로 판단한 범위다.
장세주 회장의 횡령은 미국 법인을 활용했다. 미국 법인에 부외자금, 즉 비자금을 만들고 운영했는데 그 돈을 자유롭게 꺼내 미국 라스베이거스 도박 자금의 밑천으로 삼았다. 그냥 도박이 아니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VVIP 도박이었는데, 예약을 하기 위해서는 미리 수억 원의 돈을 미국 라스베이거스 도박장에 ‘예치금’으로 보내야 하는 구조다.
예약 날짜가 다가오면 장 회장은 카지노 측이 보내주는 전용기를 타고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갔다. 그리고 예치금을 꺼내 한 판에 2000만~3000만 원이 넘는 돈을 걸었다. 40초면 한 판이 끝나는 바카라를 주로 즐겼다.
미국에서 넘어온 자료 탓에 도박 자체를 발뺌할 수 없었던 장세주 회장은 재판에서 “도박은 했지만 상습적이지 않다”고 대응했다. 그리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상습도박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법조계에서 잡음이 가장 많이 나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과거 가수 신정환 씨는 필리핀에서 단 하루에 1만 3000달러를 베팅했다는 이유로 상습도박이 인정돼 처벌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법원은 하루만 하더라도 바카라의 경우 그 상습성을 인정한다. 장세주 회장은 2010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갔고, 혐의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도박을 하기 위해 마카오를 드나들기도 했다.
일반적인 재판에서는 ‘혐의 인정에 따른 자백’과 ‘피해 변상’이 대표적인 선처(감형)의 근거가 된다. 장세주 회장은 도박의 상습성과 횡령액의 사용처를 놓고 검찰과 치열하게 다퉜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장세주 회장이 “자백하고 피해를 변상했다. 뉘우치고 있다”며 양형기준 이탈을 감행했다. 이번 수사에 관여한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우리가 미국 법무부에서 받은 도박 관련 자료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부정하고 다툰 사람이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니요. 피해 변상도 검찰 수사가 시작되고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구속을 피하려고 한 겁니다. 100억 원이 넘는 거액을 급하게, 며칠 만에 변통할 수 있었다면 왜 진작 변상하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이미 도박도, 횡령도 한 번씩 처벌을 받으면서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법원의 한 관계자 역시 “장세주 사건 재판부의 판단 중 도박의 상습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다소 무리하게 판단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며 “누가 봐도 상습성은 인정했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남윤하 언론인
장세주 측 대응 살펴보니… 호화 변호인단 ‘절반의 성공’ 하지만 ‘완전한 성공’은 아니었다. 고객(장세주 회장)이 원하는 집행유예를 받아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장세주 회장이 이번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쓴 돈은 3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각에서는 변호사 비용이 50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구속만은 피하라”고 거액을 썼는데, 돈을 지불한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검찰은 2심에 기대를 걸고 있다. 상습도박 유죄와 함께, 횡령과 배임 과정에 문제점을 더욱 강하게 주장할 계획이다. ‘집행유예’를 원하는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과 ‘엄벌’을 자신하는 검찰. 이제 다시 시작될 2심 재판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