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최근 과학기술 우선 원칙을 외치면서 이 분야를 선도하는 전문가들을 파격적으로 등용하고 있다. 김정은이 최근 완공된 평양 미래과학자거리를 시찰하는 모습. 연합뉴스
고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1970년을 전후해 후계자로 점지됐다. 그로부터 20년 넘게 아버지 고 김일성 주석을 보좌하며 실정에 참여했다. 김정일은 최고지도자에 오르기 전, 2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김일성의 후광을 업고 자신만의 탄탄한 세력을 구축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이른바 군의 오극렬로 대변되는 혁명 2세대와 당의 장성택, 외교의 허담으로 대변되는 로열패밀리들에 의한 김정일 세대 구축이 그것이다.
반면 김정은은 여유가 없었다. 김정은은 아버지가 갑작스레 병세로 기울기 시작한 2008년을 전후해 그제서야 후계자로 전면에 나설 기회를 가지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급작스러운 준비를 거쳐 김정일의 사망에 이어 2011년 12월, 북한 최고지도자에 오른 김정은에겐 고작 3~4년 남짓한 준비기간이 주어졌을 뿐이었다. 김정일은 자기 사람을 직접 키워 검증할 여유가 있었지만 김정은은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이에 김정은은 로열패밀리들을 중심으로 체제를 버틸 최고위급 핵심간부 2세로는 부족했다. 따라서 김정은은 비교적 젊은 중간급 간부들 중에서 성과를 낸 소위 각 부문 능력 있는 자들을 선별하여 특혜를 주는 형식으로 자기 세력화 작업을 꾀했다. 이른바 속성 세대교체 준비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은 2008년~2009년을 전후해 자기세력들을 하나씩 구축해 나갔다. 이들을 크게 보면 세 줄기다.
첫째는 국가안전보위부와 호위총국을 중심으로 한 ‘아미산 줄기’다. 아미산은 평양시 내 서성구역과 용성구역, 대성구역 사이에 있는 해발 156m의 야트막한 산이다. 주변에는 당중앙위원회와 김정일의 21호 관사를 중심으로 국가안전보위부, 호위총국(기존 호위사령부), 현재 군 총정치국 보위국(기존 군 보위사령부), 인민보안부 등 안보 기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아미산 줄기란 과거 김일성의 ‘백두산 줄기(혁명 1세대를 지칭)’와 김정일의 ‘룡남산 줄기(김정일의 김일성종합대학 동기들)’와 견줘 북한 내부에서 새롭게 급부상하는 김정은의 안보세력을 일컫는다.
룡성구역과 대성구역 사이에 있는 ‘아미산’에는 권력핵심기관인 호위총국 제1 및 2호위부와 제2국(일명 1호 호위물자 보장총국 본부)이 남쪽에, 서남쪽에 국가안전보위부 본부, 서북쪽에 인민보안부 본부 그리고 동쪽에 군 보위국 본부 등이 포진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 권력기관 내부에서는 소위 ‘아미산 줄기’로 부르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 2009년 4월, 국가안전보위부장 자리에 오른다. 지난 연재를 통해 몇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이는 아버지 김정일의 뜻이었다. 김정은의 빈약한 정치 경력과 연륜을 그나마 보충할 수 있는 것은 안보기관 장악을 통해 물리적 통제를 하는 것뿐이었다. 이 시기부터 김정은에 의해 발탁된 국가안전보위부와 호위총국을 비롯한 위에서 언급한 안보기관 부국장급 간부들이 현재의 ‘아미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나이로 따지면 약 40~50대의 비교적 젊은 간부들이다.
해당 세력의 기반을 두고 있는 곳이 정권을 지탱하는 안보 및 경호(호위) 기관이라는 점 때문에 그 구체적인 성원들을 이 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김정은시대, 국가안전보위부와 호위총국을 비롯해 위치가 급상승한 안보기관들의 배후에는 바로 이 ‘아미산 줄기’의 득세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향후에도 이 ‘아미산 줄기’의 활동 배경은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다만 이 아미산 줄기에서 주의 깊게 볼 부분이 있다. 문제는 이 주요 세력들 중 장성택 숙청으로 현재 이 권력기관들의 주요 국장 및 부(실) 급 간부들이 대부분 숙청당하거나 한직으로 좌천되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들을 대신하여 급 승진한 신진세력들과 (장성택 진영) 잔존세력과의 내부 갈등과 이로 인한 정권의 안정성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특별히 강조되는 이유다.
‘아미산 줄기’가 안보세력이라면, 이른바 ‘봉화조’로 불리는 1.8그룹은 당내 각 부서들의 부장 및 부부장들을 중심으로 한 김정은의 정치적 호위세력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선 보통 ‘봉화조’로 지칭되지만 북한 내부에선 김정은의 생일(1월 8일)에서 따온 ‘1.8그룹’으로 더 많이 지칭된다. 핵심은 항일빨치산 계열의 혁명 3세대와 김씨 일가 및 강씨 일가(김일성의 외가)를 중심으로 한 친인척들, 즉 로열패밀리들이다.
김정은이 호위사령부를 시찰하는 모습(위)과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를 주재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들 뒤에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과 친여동생 김여정이 후견세력으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그 최종 막후에는 김설송이나 김정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이 그룹의 주요 리더들은 김정은의 통치자금으로 평균 한 해에 50만~200만 달러의 뇌물을 상납하면서 자기들의 정치권력을 연명하고 있다. 대체로 1.8그룹의 주요 관계자들은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 혹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 혹은 김정일보위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들인 것으로 확인된다.
물론 이들은 김정은이나 김설송, 김여정처럼 아버지들의 권력으로 해당 대학 졸업장만 받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나 이러한 세력들의 정치생명 연장은 해외에서 김씨 가문에게 상납할 이른바 ‘혁명자금(김정은 통치자금을 내부에서 부르는 대호)’을 어떻게든 마련하는 ‘실력’ 또한 중요하다.
앞서의 두 그룹은 김정은이 현실적으로 자기의 안위와 권력을 연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력들이다.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에도 이와 같은 성격의 세력들은 존재했다. 단 그 양상이 조금씩 더 젊어졌으며 아직 검증이 덜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 시대에 떠오르고 있는 전문가(소위 테크노크라트) 그룹은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 전문가 그룹은 김정은이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 시대와는 다른 자신만의 색깔을 그대로 투영시킨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 그룹은 북한 과학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신세력들을 말한다. 이들의 특징이라 하면 북한 정권유지의 전통적인 원칙, 즉 출신성분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검증된 ‘실력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최근 과학기술 우선원칙을 외치면서 이 분야를 선도하는 각 부문 전문가들을 등용하며 그동안 믿기지 않는 파격 인사를 단행해왔다.
이전에도 북한은 전문가 집단을 중시했지만, 실력 이전에 철저히 당성(충성도)과 학벌, 군필(오직 ‘영도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 여부 등과 함께 무엇보다 먼저 출신 성분을 기본으로 인사를 단행했다. 때문에 기존에는 핵심 고위간부가 되려면 백두(소위 김씨 가문) 및 빨치산 혈통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상황에서 반드시 군대 경력이 우선이고 대학졸업도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일성군사 종합 및 정치 대학, 김정일보위대학, 김형직사범대학 등 명문대학을 졸업해야만 가능했다. 또한 나이도 40대 후반에야 요직 등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아버지가 기존에 마련한 각 전문부문 인사 원칙과 규칙을 무시하면서까지 실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생명공학자 출신의 김승두 교육위원장이다. 교육위원장은 북한 과학기술교육계에 있어서 최고의 자리라 할 수 있다. 김승두는 2012년 2월 16일 이 명예로운 자리에 오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시 김승두의 인사는 파격이었다. 그는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이 아닌 리과대학 출신이다. 교육위원장 이전에는 리과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교육위원장 자리에 리과대학 출신 인사가 등용된 것은 김승두의 사례가 북한 정권 수립 이후 처음이다. 리과대학 출신으로는 과거 리광호 전 국가과학원장이 2004년 중앙당 비서국 과학교육부부장에 오른 게 최고였다. 그러나 리광호 전 과학교육부부장은 리과대학 출신이었지만 군대를 갔다 온 제대군인 출신이었다.
김승두 위원장은 군 복무 경험이 없는 이른바 ‘직통생’ 출신이다. 북한의 최고위 출신 필수경력 중 군필이 우선적이다. 때문에 주요 대학 중 대부분의 간부자녀들은 약 5~10년간의 군복무를 거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직통생’들은 워낙 뛰어난 실력을 가져 중학교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들어 온 인재들이기에 특별히 김 씨 가문의 접견과 같은 이른바 특혜가 없다면 직통생들은 최고위급 간부직에 등용될 수 없었다. 때문에 이른바 직통생들은 그동안 각 부문 전문 실력으로 군을 면제 받았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군필자들과 비교해 당성에서 떨어진다는 이유로 최고위급 간부 등용에서는 차별을 절대적으로 받아왔다. 특히 비 김씨 가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대학 출신에 직통생 출신인 김승두 박사(그는 생명공학부분 생물물리분과 착화합물 박사학위 소유)의 등장은 기존 북한 사회의 간부등용 틀을 깬 충격적인 사건이다.
지난 2009년 북한의 국가과학원(일반 자연과학원)에 오른 반도체 전문가 장철 역시 앞서의 김승두와 비슷하다. 국가과학원은 북한 최고 권위의 최상급 국책 연구기관이다. 한국의 과학기술원보다 급수가 더 높다. 국가과학원장은 한국으로 따지면 장관급 대우를 받는 고위급 자리다. 장철 역시 김승두와 같은 리과대학에 직통생 출신으로 현재 북한 과학기술 연구 분야 최고 정점에 서서 김정은의 큰 신임을 받고 있다.
이 밖에도 김춘섭 중앙당 기계공업부(전 군수공업부) 담당비서(전 제2경제위원회 대외경제총국 출신), 홍영칠 기계공업부 부부장 겸 국방위원회 참사(제2경제위원회 본부 기술국 출신), 홍승무 기계공업부 제1부부장, 조춘룡 제2경제위원회 위원장(제2경제위원회 전략무기 담당 5총국장 출신), 최춘식 제2자연과학원장(제2자연과학원 공학연구소 출신), 마원춘 국방위원회 설계국장(백두산 건축연구원 건축1과 설계원 출신), 한광복 중앙당 과학교육부장(내각 전자공업성 출신) 등은 김정은 시대 각 부문 전문가 출신으로서 돋보이는 행보를 하고 있는 전문가 집단 인사들이다.
북한 과학기술계는 한국과 전혀 다른 시스템이다. 한국의 경우 최첨단 과학기술을 개발하고 선도하는 것은 기업의 연구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 과학기술계는 국책 연구기관에서 개발된 최신 및 선진 응용 과학기술을 일선 공장 및 기업소에 도입 하달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의 국책 연구기관과 비교한다면, 그 위치와 권한이 한층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김정은의 전문가 그룹 등용은 분명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 앞서의 김승두, 장철의 사례 외에도 이러한 비 김일성대 출신, 직통생들을 각 연구기관이나 주요 권력기관들의 책임간부들로의 등용은 북한 과학기술계 전반에 걸쳐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관측을 지울 수 없다.
과거 일개 단위의 연구소를 놓고 보자. 연구소 내부의 연구사들 구성에서 김일성대와 리과대학 출신들이 뒤섞여 있다면, 분명 소장 자리는 김일성대 출신이 차지하는 것이 김정일 시대까지의 관례였다. 그런데 최근 국가과학원이나 제2자연과학원 등의 주요 연구소 소장급 인물들은 김정은 시대들어 이 틀이 완벽하게 실력 위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들이다. 할아버지 김일성이 ‘사상’으로 체제를 이끌었고, 아버지 김정일은 ‘군’을 앞세워 체제를 이끌었다. 이에 반해 위 상황이 하나의 일순간 현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3세대 지도자 김정은은 실력 위주의 전문가 집단을 등용하고 세력화하여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심산을 드러낸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차후 김정은 정권의 내부 간부등용 성향을 유의하게 지켜볼 대목이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필자 이윤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