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M&A시장 최대 매물로 꼽히는 대우증권을 놓고 거물급 금융인 3인방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종현 기자
대우증권 인수를 놓고 맞붙은 윤종규 회장과 김남구 부회장, 박현주 회장은 금융권을 호령하는 최고경영자(CEO) 자리까지 올랐다는 공통점 외에도 호남 출신으로 사실상 고향 선·후배나 다름없다는 유사점도 있다.
윤 회장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광주상고를 졸업했고, 전남 강진 출신 김 부회장은 경성고를 나왔다. 박 회장은 광주 출신으로 광주일고를 졸업했다. 또 박 회장과 김 부회장은 고려대 선후배 사이인 데다 박 회장이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인 동원증권 출신이라는 인연도 갖고 있다.
세 사람이 성공하기까지 과정은 각각 달랐다. 우선 윤종규 회장은 상고 출신으로 국내 최대 금융그룹 회장 자리까지 오른 샐러리맨 신화의 전형으로 꼽힌다. 가정 형편상 빨리 취업할 수 있는 광주상고에 진학한 윤 회장은 졸업 후 1974년 외환은행에 입사해 뱅커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은행에 다니며 성균관대 야간대학을 졸업한 뒤 1980년 공인회계사시험에 합격했고, 이듬해에는 행정고시(25회)를 패스했다.
그렇게 공직자의 길을 걸을 뻔했던 윤 회장은 시위에 참여했다는 전력 때문에 면접을 통과하지 못해 관료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공직을 포기한 윤 회장은 이후 회계사로 변신, 국내 ‘빅3’ 회계법인 중 하나인 삼일회계법인에 입사해 부대표까지 역임했다.
윤 회장이 은행으로 돌아온 것은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한 뒤 고 김정태 통합국민은행장의 부름 때문이다. 이후 다시 김앤장법률사무소 상임고문으로 잠시 돌아갔던 그는 2010년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시절 KB금융 재무담당 최고책임자로 복귀했고, ‘KB 사태’ 이후에는 내분을 수습할 적임자로 인정받아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반면 김남구 부회장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그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유학한 뒤 동원산업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원양어선을 타고 직접 참치를 잡던 그는 동원그룹이 한신증권을 인수해 이름을 바꾼 동원증권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금융업과 인연을 맺었다.
1991년 평사원으로 입사한 김 부회장은 6년간 실전경험을 거친 후 1997년 임원에 올랐고 2000년 부사장을 거쳐 2004년 사장이 됐다. 그는 사장이 되자마자 한국투자증권 M&A에 나섰고, 이듬해 인수에 성공했다. 당시 한국투자증권은 동원증권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큰 회사였던 탓에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현재 한국투자증권을 필두로 한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2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박현주 회장은 광주 출신으로 윤 회장과 김 부회장에 비하면 평범한 배경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두 사람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남달랐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86년 동양증권에 입사한 그는 1988년 동원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입사 45일 만에 대리, 1년 1개월 만에 과장으로 초고속 승진했고, 4년 6개월 만인 1991년에는 만 32세의 나이로 최연소 지점장에 올랐다. 당시 박 회장은 약정액 전국 1위를 달성하며 이름을 떨쳤다. 1997년에는 임원에 올랐다.
성공한 월급쟁이였던 박 회장은 이때 인생 최대의 승부수를 던졌다. 동원증권 임원 명함을 버리고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박현주 1호’를 내놓은 것. 박현주 1호는 출시 1년 만에 수익률 100%를 달성하는 신화를 일궜다. 이어 1999년에는 미래에셋증권을 설립, 금융그룹으로서 모습을 갖췄다.
특이한 점은 박현주 회장과 김남구 부회장의 인연이다. 박 회장과 김 부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 선후배 사이다. 박 회장이 78학번으로 김 부회장의 5년 선배다. 또 김 부회장이 ‘참치잡이’를 그만두고 동원증권에 둥지를 튼 1991년, 박 회장은 동양증권을 떠나 동원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김 부회장이 경영수업을 끝내고 임원으로 승진한 1997년 박 회장은 동원증권 임원이 됐다. 고려대 선후배인 두 사람은 사회에서는 동원증권 경력 입사 동기이자 임원 승진 동기인 셈이다. 하지만 임원 승진을 끝으로 결별한 두 사람은 이후 베트남 펀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등을 놓고 여러 차례 부딪혔고, 이번에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다시 만났다.
윤종규 회장은 이들 두 사람과 인연의 끈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하지만 대우증권을 인수해 KB금융그룹의 취약점 가운데 하나인 증권 부문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윤 회장은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유달리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다른 인수 후보자들보다 인위적인 구조조정 우려가 적고 업무영역이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수에 성공한다면 은행은 물론 올해 초 인수한 손해보험과 함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완성할 수 있다. 윤 회장은 법률·회계·IB 등 인수에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KB 내외부의 최상의 팀을 꾸리고 대우증권 인수전에 도전하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세 사람은 금융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치를 굳힌 호남 출신 경영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면서 “특히 오너의 아들과 부하직원에서 동등한 오너 경영자로 만난 김 부회장과 박 회장의 경우 이번 대우증권 인수전은 자존심 대결로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