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밀매를 소재로 다룬 영화 <공모자들>의 한 장면.
“눈치 못 채게 감시하고 있어라, 날이 잡히면 서울로 데려 갈끼다.”
지난여름, 이른바 ‘해운대 장기밀매단’의 알선책 김 아무개 씨(28)는 이 아무개 군(18)에게 은밀한 지시를 내렸다. 빌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감시하라는 것. 이 군의 감시 대상은 김 아무개 군(18)과 박 아무개 형제(18·17). 이들은 고아로 생계를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었다. 월세방과 친구 집을 전전했던 신세였던 김 군과 박 군 형제는 지난 8월부터 부산 해운대구의 한 빌라를 숙소로 이용했다. 이 군이 “여기는 우리 친척집이다. 일단 들어오면 먹을 것과 잠자리를 주겠다”고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오갈 데가 없었던 세 친구는 한 지붕 아래 모였다. 하지만 장기밀매단이 이들의 장기를 강제로 적출할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이 군은 미성년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또래를 노렸다.” 지난 24일 기자와 만난 해운대경찰서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경찰은 “이 군 위에는 장기밀매단의 알선책들이 있었다. 알선책들은 조건을 걸었다. 일단 당장 죽어도 관심 못 받을 사람, 지금 사라져도 실종신고 할 사람 없는 사람, 가족 없는 사람을 찾아보라고 이 군에게 지시했다”며 “조건에 딱 맞는 친구들이 김 군과 박 군 형제였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10대 청소년 최 아무개 군도 이 군처럼 모집책 역할을 맡았다.
해운대경찰서는 11월 19일 장기 밀매를 알선한 혐의로 총책 노 아무개 씨(43)와 김 아무개 씨(42) 등 2명, 중간연결책 2명, 알선책 8명 등 총 12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올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장기매매를 모의했다. 현행법상 장기매매는 불법이다. ‘알선’도 마찬가지다. 장기이식에 관한 법률 제7조는 “누구든지 금전 또는 재산상의 이익, 그 밖의 반대급부를 주고받거나 주고받을 것을 약속하고 장기이식 행위를 알선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구상한 이는 총책 노 씨였다. 다른 총책 김 씨는 홍보 역할을 맡았다. 경찰은 “노 씨는 자기 배에 수술자국이 있다. 10년 전 브로커 통해서 장기 밀매를 한 거다”라며 “자기가 해봤기 때문에 그런 루트를 잘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장기 매매’ 스티커를 붙이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영업(?)을 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서울과 광역시는 물론 속초와 포항 등 지방 소도시의 역과 터미널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총책들은 SNS도 충분히 활용했다. 모집책에게 지시해 “주변에 콩팥 팔 XX없냐”며 “양쪽 콩팥 크기에 따라 가격차이가 있다”며 장기 밀매업을 홍보했다. 다른 장기는 취급하지 않았다. 간은 2억 원, 신장은 1억 5000만 원으로 가격을 정했다.
총책들은 SNS 등을 통해 장기매매 대상자를 모집했다.
장기밀매의 수혜자와 대상자는 누구였을까. 경찰은 “장기는 조직과 혈액형 등 여러 가지가 맞아야 한다. 일단 수혜자는 없었다”며 “노 씨는 수혜자를 구하기 어려워 일단 성별, 연령별로 대상자들을 찾아 장기를 확보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주로 형편이 궁한 이들이 역이나 터미널 화장실 안에서 스티커를 보고 밀매단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 같은 방식으로 22명이 모였다. 밀매단은 이식대상자들과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수혜자가 나타나 장기가 완전히 이식되면 돈을 지급하기로 구두 약속만 했다. 심지어 대상자들 가운데 16명은 부산과 울산 등 전국 14개 병원에서 자비로 건강검진까지 마치고 수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밀매단은 이들 가운데 일부를 10월에 수술대에 눕힌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10대 청소년들의 장기 적출을 위한 준비도 서둘렀다.
‘해운대 밀매단’의 범행은 실패했지만 이번 사건의 뒷맛은 개운치 않다. 밀매단이 신분증을 위조해 장기이식센터를 속여 범행을 준비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장기 밀매는 주로 각 병원에 있는 장기이식센터의 장기 기증절차를 이용해왔다. 장기매매를 위해서는 이식수술이 가능한 병원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장기 이식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등록기관에 등록을 신청해야만 할 수 있다(장기이식에 관한 법률 제13조). 음지에 시설을 갖추고 장기 매매를 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있다. 때문에 기증자의 신분을 가족·친족·지인으로 위조해 장기이식센터를 통한 ‘제3자’ 기증을 하는 것이 주된 범행 패턴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지정한 병원 내 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 매매의 목적을 숨기고 이식을 하는 방법이다. 합법을 가장해 ‘수술실’을 차리는 것. 물론 이 과정에서 승인 권한을 지닌 질병관리본부를 속이는 것도 중요하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센터 홈페이지 메인 화면 캡처.
그렇다면 과연 질병관리본부를 속일 수 있을까. 이번 사건에서 궁금증을 자아내는 부분 역시 ‘신분증 모집책’들의 존재다. 총책 노 씨는 브로커를 통해 장기를 이식한 경험이 있다. 노 씨 역시 신분증을 위조해 장기 밀매를 준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즉 장기이식관리센터를 통해 질병관리본부의 ‘승인’을 받는 방식으로 범행을 계획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해운대경찰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장기이식센터를 속인 사례가 아니다. 신분 조작을 할 수가 없다. 질병관리본부를 속이는 것은 정말 까다롭다”며 “시스템상 장기 밀매를 할 수 없다. 장기이식을 하려면 질병관리본부에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등록도 해야 하고 기증자와 수혜자 두 사람 전부 등록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 산하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관계자 역시 “신분위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식 과정에서 면접해서 확인하는 절차가 있다. 병원에서 책임지고 확인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해운대경찰서는 장기밀매를 위해 질병관리본부를 속이는 것이 정말 까다롭다고 말하고 있으며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측은 신분위조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의문점은 여전하다. 시스템과 현실 사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장기밀매 수사를 꾸준히 담당했던 경남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큰 병원에 가면 장기이식센터가 있다. 그 센터에 사회복지사가 나가있다. 병원에서 고용한 사회복지사인데 그 사람들이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를 대신해서 장기이식 접수를 받은 뒤 질병관리본부에 승인을 요청한다”며 “그러면 질병관리본부에서 승인을 내주고 병원에서 그 승인을 토대로 수술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위조 신분증이 사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2월 질병관리본부에서 발간한 ‘살아있는 자의 장기 기증 업무 매뉴얼’을 살펴보면 앞서 경찰이 지적한 문제점을 알 수 있다. 자료에 따르면 장기이식대상자 신청을 위해서는 사회복지사의 상담평가를 거쳐야 한다. 이와 동시에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주민등록증, 가족관계증명서와 혼인관계증명서 등의 서류도 필요하다. 그런데 각 병원 내 장기이식센터의 일선 근무자들은 신분 확인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부산지역 한 종합병원 장기이식센터의 사회복지사는 “우리 병원은 타인 간 기증은 잘 안 받는다”며 “친족이 아닌 경우 서로 돈이 오가지 않고 친한 사람인 걸 알기 위해 면접을 통해 계속 묻지만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마음먹고 온 가족이 통째로 신분증 위조를 하는 등 작당하고 나타나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신분증뿐이다. 신분증에 사진이 박혀 있으면 우리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다른 대학병원 장기이식센터 관계자 역시 “의심스러운 전화가 자주 온다. 그래서 타인 간 기증은 진행할 때 꼼꼼히 본다”며 “신분 위조가 확인되면 병원 책임이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심지어 장기기증 신청자의 ‘지문’ 날인 절차도 임의 규정으로 실효성이 없다. ‘살아있는 자의 장기 기증 업무 매뉴얼’에는 “신청일과 기증자의 성명을 기재한 후, 기증자가 반드시 서명 또는 날인하되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지문을 찍도록 한다”고 쓰여 있다. 또 “명확한 본인여부 확인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수술실 등에 지문인식기를 설치하여 초기 상담 시 확보된 기증자의 지문과 수술실 입실 바로 직전의 기증자의 지문을 재확인해 기증자 본인 확인 여부에 참고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또는 ‘참고할 수 있다’는 애매한 문구 탓에 일선에서 신분확인을 위한 지문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꼭 지문확인을 하라고 하진 않는다. 안 한다고 해서 우리가 감사를 하지는 않는다”며 “병원이 본인 확인 책임이 있으니까 병원 쪽에서 자율적으로 지문을 날인한다. 신분확인의 1차적 책임은 병원이다”고 밝혔다.
장기밀매단은 지문 날인 절차의 허점도 파고들고 있다. 수술 대상자의 신분을 순식간에 ‘바꿔치기’하는 방법이다. 경남지방경찰청 외사 수사대 관계자는 “지문확인 이후에 사람이 바뀌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수술하기 전에 조카로 찍어놓고 수술할 때는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거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 종합병원 장기이식센터의 코디네이터 역시 “기증자에 대한 상담 시에 지문날인을 하고 있지만 수술실엔 지문인식기가 없다. 사후 문제가 될 경우에만 한다”며 “수술실 들어갈 땐 확인을 안 한다”고 설명했다.
부산=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