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가 미네소타 트윈스와 ‘헐값 계약’을 했다는 탄식이 터져나오고 있다. 박병호가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타깃 필드에서 열린 공식 입단 기자회견에서 테리 라이언 단장과 악수하는 모습.
뚜껑을 열어보니 박병호의 몸값은 4년에 1200만 달러였다. 평균 연봉이 300만 달러였다. 구단이 4년 이후 1년 옵션을 행사해봐야 5년 총액 1800만 달러(약 208억 원)가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각종 포털사이트와 야구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박병호의 몸값에 대한 실망과 비난이 주를 이뤘다. 가장 비난의 중심을 이룬 이는 에이전트 앨런 네로의 협상 능력이었다.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글로벌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회사인 옥타곤 월드와이드의 야구 부문 대표인 앨런 네로는 미국 내에서 내로라하는 거물급 에이전트이다. 야구 매니지먼트 회사인 CSMG의 설립자이기도 했던 네로는 옥타곤과 합병하면서 야구부문 수장 역할을 하고 있다. 펠릭스 에르난데스(시애틀), 시카고 존 매든 감독 등 거물급 선수와 지도자 등을 비롯해 일본으로 복귀한 구로다 히로키, 이와무라 등 다수의 일본 선수도 그의 고객이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괴물’ 랜디 존슨의 에이전트이기도 했고, 2004년부터 2010년까지는 추신수와 인연을 맺었다.
넥센 히어로즈 이장석 대표와의 인연으로 강정호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고, 이후 박병호까지 고객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선수 입장에선 구단 대표가 나서서 에이전트를 소개해주는데 못하겠다고 뿌리칠 수는 없었을 터. 앨런 네로로선 이 대표와의 좋은 인연 덕분에 ‘앉아서’ 한국의 주요 선수 두 명을 고객으로 받아들였고, 실제 메이저리그 팀에 입단시키면서 거액의 수수료도 챙길 수 있었다.
에이전트 앨런 네로
앨런 네로는 클리블랜드 시절의 추신수를 고객으로 두기도 했다. 추신수가 FA를 앞두고 고민 끝에 앨런 네로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스캇 보라스와 손을 잡은 이유에 대해 추신수는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털어 놓은 적이 있었다.
“앨런 네로는 내가 미국에서 만난 가장 인간적이고 따뜻했던, ‘패밀리’ 같은 분이었다. 그는 나와 내 가족들을 아버지처럼 보살폈고 챙겼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때로는 에이전트의 힘이 필요할 때가 생기더라. 내가 어린 나이에 미국에 온 이유가 메이저리그에서 최고가 되기 위함이었고, 최고가 되기 위한 내 꿈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가족 같고 아버지 같았던 앨런 네로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나를 성장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앨런 네로도 훌륭한 에이전트였지만,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데 함께 갈 수 있는 동반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뒤에 어떤 에이전트가 있느냐에 따라 구단에서 선수를 보는 평가가 달라진다. 비즈니스 논리가 팽배한 이곳에서 ‘정’으로 가느냐, 아니면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보고 이성적으로 움직이느냐를 놓고 숱한 고민 끝에 스캇 보라스를 선택했다.”
추신수가 전한 다음 얘기도 주의 깊게 읽어 볼 필요가 있다.
박병호가 지난 11월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과 쿠바 대표팀의 평가전에서 타석에 선 모습.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그렇다면 한국 여론이 들고 일어난 것처럼 앨런 네로가 선수보다는 구단 입장에서 박병호의 계약을 성사시킨 것일까. 아니면 앨런 네로가 강조한 것처럼 한국의 포스팅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송재우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은 “아무리 유능한 에이전트라고 해도 이미 포스팅 비용으로 1285만 달러를 지불하는 미네소타 구단을 상대로 박병호의 연봉을 더 얻어내긴 힘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네소타 입장에선 박병호에게 투자된 금액이 개런티한 금액만 따지자면 2475만 달러에 이른다. 피츠버그가 강정호에 투자한 보장 금액인 1600만 달러보다 50% 이상 높은 투자 금액인 것이다. 물론 박병호의 1200만 달러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원화로 환산하면 139억 원이 넘는 규모다. 이 정도 규모의 계약이면 최근 몇 년간 박병호가 보여준 활약이나 팀 성적에 대한 기여도를 감안하고 최근 KBO리그 FA 시장을 감안하면 고개가 끄덕여질 수준이다.”
하지만 송재우 위원도 올 시즌 메이저 리그 선수들의 평균 연봉이 425만 달러라는 것을 감안할 때 박병호의 몸값이 아쉽다는 얘길 전했다.
또한 송 위원은 박병호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네소타 구단이 제시한 연봉을 거절할 경우 넥센 히어로즈는 1285만 달러의 포스팅비를 받지 못하게 되고, 선수는 다른 구단과 협상하지 못한 채 1년 또는 2년 후까지 넥센에서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포스팅 제도를 통해 메이저리그의 한 팀하고만 협상하는 상황에서 선수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박병호라고 왜 더 많은 금액을 받아내고 싶지 않았겠나. 그러나 그 계약을 포기할 경우 돈보다 더 많은 걸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박병호의 나이가 내년이면 31세이다. 서른 살을 넘기면서부터 선수의 나이와 몸값은 반비례한다. 박병호는 지금의 1년, 2년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예상보다 낮은 금액임에도 사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병호는 헐값계약 논란에 대해 “내가 만약 돈만 추구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메이저리그가 꿈이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왔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한다”고 말했다.
“물론 나도 아쉬운 점은 있다. 그러나 미국으로 들어오기 전에 한국에서 이에 대한 설명을 다 들었고, 왜 이런 연봉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어느 관점에선 한국의 FA 선수들에 비해 내가 손해 보는 계약을 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난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야구선수로 살면서 미국에서 야구할 수 있는 기회가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게 아니지 않나. 내가 만약 돈만 추구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메이저리그가 꿈이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왔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한다.”
박병호의 몸값을 놓고 아무리 장탄식을 늘어놔도 이미 계약은 끝났고, 박병호는 미네소타 트윈스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식에서 만난 박병호는 진심으로 계약 자체를 즐거워했고, 미네소타의 유명 스타플레이어인 1루수 조 마우어를 만난 데 대해 신기해하며 기뻐했다. 박병호는 당분간 미니애폴리스에 머물며 가족들이 살게 집을 알아볼 예정이다. ‘겨울왕국’으로 유명한 미니애폴리스의 현지 날씨는 영하 3도였지만 겨울이 깊어질수록 영하 10도, 20도로 내려간다고 한다.
미니애폴리스=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빅리그 도전자들 거취는? 이곳저곳서 ‘삼인방’ 입질 중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린 박병호와 달리 김현수, 이대호, 오승환은 자유의 몸이다. 팀에 건네주는 이적료 없이 자유롭게 메이저리그 팀과 협상할 수 있다. 먼저 김현수(27·두산 베어스)는 두산 베어스와의 FA 협상을 포기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지난 1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KBO에 김현수의 신분 조회를 요청했다. 신분조회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한국 선수와 계약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로, 영입하는 데 신분상 걸림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김현수에 대한 관심 차원을 넘어서 실질적 계약을 염두에 두고 움직인 구단이 있다는 뜻이다. 김현수의 에이전트사인 리코스포츠 이미령 대표는 이미 복수의 구단으로부터 영입제의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미국으로 출국했고, 현지에서 김현수를 영입하려는 구단과 실질적인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수는 2006년 프로 데뷔 후 10시즌 동안 통산 타율 0.318, 142홈런, 771타점 등의 활약을 펼치며 장타율 0.488, OPS 0.895를 기록했다. 미국 현지에서도 김현수에 대한 기사가 계속 나오는 중이다. 미국 야후스포츠의 칼럼니스트 제프 파산은 김현수를 “최근 10년간 한국에서 가장 꾸준한 타자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최근에는 볼티모어 지역 신문인 <볼티모어 선>이 “코너 외야수가 필요한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프로 경력 10년의 좌타자이자 FA인 김현수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이대호, 오승환, 김현수(왼쪽부터). 사진은 합성. 일요신문 DB 이대호의 에이전트사는 MVP스포츠그룹으로 메인 에이전트 대니 로사노가 이대호의 ML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이대호는 미국 야후스포츠의 자유계약선수(FA) 랭킹 29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 신문은 ‘이대호의 장타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올 시즌 일본에서도 31홈런을 기록했다. 이대호는 한국에서 10년 이상 뛰었고 일본에서 4년을 보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33세의 나이가 다소 걸림돌이 되지만 포스팅 비용이 들지 않는 FA 신분이기 때문에 다년 계약이 충분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돌부처’ 오승환은 시즌이 끝나자마자 한국 내 에이전트사인 스포츠인텔리전트 김동욱 대표와 함께 미국 뉴욕을 방문한 바 있다. 일주일가량 뉴욕에서 머물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한 뒤 귀국했다가 지난 주 다시 출국했다. 지난 시즌까지 오승환이 뛰었던 한신 타이거즈는 2016시즌 보류 선수 명단에서 오승환의 이름을 제외시켰다. 오승환의 메이저리그 진출 의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승4패 39세이브 평균자책점 1.76으로 센트럴리그 구원왕으로 오른 오승환이 메이저리그에서 받는 몸값이 많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승환은 내년 시즌 반드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겠다는 의지가 대단히 강하다. 이미 미국 클리블랜드 지역 언론 <클리블랜드닷컴>은 ‘클리블랜드 구단에서 오승환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혔고, 강정호가 뛰고 있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도 닐 헌팅턴 단장이 오승환에 대해 조사를 마무리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12월 안에는 또 다른 도전을 꿈꾸는 세 선수의 미래가 결정되지 않을까 싶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