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 안대희 전 대법관.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오거돈 케이스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문재인 대표 측근으로 꼽히는 친노계의 한 의원은 부산지역 총선 전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 이름을 불쑥 꺼냈다. 오 전 장관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 서병수 현 시장에게 졌지만 박빙의 승부를 펼친 바 있다. 당시 오 전 장관은 서 시장을 맞아 1.31%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16개 구·군 중 다섯 곳에선 오히려 서 시장 득표를 앞섰다.
새누리당 텃밭인 부산에서, 그것도 친박 중진을 상대로 거둔 이러한 결과에 정치권은 주목했다. 앞서의 친노계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거쳐 박근혜 대통령까지 8년여 동안 PK는 TK에 비해 홀대받고 있다는 불만이 강하다. 새누리당 심판론이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 (부산시장 선거는) 이러한 민심이 반영된 것이다. 여기에 오 전 장관처럼 인물만 괜찮다면 야당도 해볼 만하다는 게 증명됐다”면서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공천만 제대로 하면 성공적으로 부산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특히 새정치연합은 서부산권과 동부 경남을 일컫는 ‘낙동강 벨트’를 집중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부산의 북, 강서, 사상, 사하, 경남 김해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곳은 부산권에서 야당 지지세가 제법 높은 지역으로 분류된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총 8개 지역구 중 3석을 획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고향인 김해갑과 을을 싹쓸이했고 사하을에서 조경태 의원이 당선됐다.
18·19대 총선에서도 당은 비록 영남권에서 고전하긴 했지만 낙동강 벨트에서만큼은 2석을 따냈다. 19대 때는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사상구에 출마해 배지를 달기도 했다. 윤호석 정치평론가는 “낙동강 벨트는 바람이 좌우하는 지역구들이다. 새정치연합이 어떤 인물을 내느냐에 따라 선전이 가능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새누리당은 복수전 채비에 한창이다. 새정치연합에 빼앗긴 2곳을 다시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낙동강 벨트에 내보낼 장수를 찾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낙동강 전선’이 뚫릴 경우 부산은 물론 PK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19대 총선 때도 새누리당은 문재인 대표를 앞세운 ‘노풍’을 차단하기 위해 김태호 최고위원을 차출했다.
지난 11월 17일 김무성 대표 주재로 열린 서부산발전전략회의에서 박민식 부산시당 위원장은 “낙동강 지역은 서로 연계돼 있어 한 곳을 잃으면 인접 지역도 무너질 수 있다”며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새누리당 안팎에선 영도가 지역구인 김무성 대표나 해운대 출마가 유력한 안대희 전 대법관의 ‘낙동강 선봉론’까지 나돌았을 정도다. 그만큼 이 지역을 최우선 공략 지역으로 여기고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여야가 낙동강 벨트를 포함한 부산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 측 움직임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안 의원이 부산, 그중에서도 낙동강 벨트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들리고 있는 것이다.
안 의원의 최측근 인사는 “지금 (부산 출마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득실을 잘 따져보고 있는 것이다. 안 의원이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예전에 단호하게 부인했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만큼 정치인으로서 한 단계 성장했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그만큼 얻을 수 있는 열매도 달 것이다. 어차피 총선은 안 의원이 정치 인생을 걸고 승부를 봐야할 시점”이라고 귀띔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물론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부산 출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지난 9월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는 “책임 있는 분들의 백의종군이 필요하다”며 전직 대표들의 열세지역 출마를 촉구한 바 있다. 서울 노원병이 지역구인 안 의원에겐 부산 출마를 종용했다. 그러나 안 의원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강하게 일축했다. 그런데 주변 환경이 급변하면서 안 의원 스탠스도 바뀐 것으로 관측된다. 계파 싸움이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비주류 내 안 의원 입지가 점점 강화되자 자신감을 얻었다는 얘기다.
앞서의 안 의원 측근은 “안 의원은 호남에서 문 대표 지지율을 앞질렀다는 데 고무됐다. 그동안 존재감이 미미했던 안 의원이 지금은 사실상 비주류 수장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느냐. 이제는 안 의원도 과감한 ‘통 큰 정치’를 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부산 출마는) 대선으로 가기 위한 좋은 선택이다. 설령 지더라도 당의 어려움에 앞장 선 안 의원을 누가 모른 체하겠느냐. 호남을 찍고 부산을 돈 뒤 대선에 임한다는 대권 시나리오가 수립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안 의원은 부산 출마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진 않다. 그러나 참모들과 지인들 사이에선 긍정적 기류가 우세하다는 전언이다. 안 의원의 또 다른 측근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안 의원) 부산 출마는 원래 친노 쪽에서 밀던 카드였다. 안 의원을 사지로 몰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에 그동안 반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나쁘게 볼 필요만은 없는 것 같다. 지금 상황에서 부산 출마는 안철수 신드롬을 다시 일으킬 좋은 기회”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솔직히 말하면 노원보다는 부산 쪽 승산이 더 높을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쉽지 않은 노원병보다는 반 새누리당 정서가 강한 낙동강 벨트에서의 선거가 더 수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새정치연합에 안 의원이 있다면 새누리당은 안대희 전 대법관이 부산 공략의 첨병이 될 전망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으로 지난 2003년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국민검사’로 불렸던 안 전 대법관은 2012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안 전 대법관은 지난해 총리 후보로 발탁됐지만 전관예우 논란을 겪다 청문회에 가지도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그 이후 안 전 대법관의 총선 출마설이 끊이질 않았는데 결국 부산행을 택했다.
안 전 대법관의 경우 범 친박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비박계에서도 거부감은 그다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파를 떠나 지지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는 안 전 대법관 정도의 중량감 있는 인사가 필요할 만큼 부산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안 전 대법관과 가까운 한 친박 원로 인사는 “안 전 대법관이 왜 (출마를) 결심했겠느냐. 당에서 전폭적 지원을 약속하며 삼고초려했다. 안 전 대법관 역시 개국공신 중 한 명으로서 부산 총선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과 안대희 전 대법관 출마가 확정될 경우 부산은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둘을 포함해 당 대표 취임 공약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긴 했지만 여전히 부산 출마 가능성이 유력한 문재인 대표, 부산 영도의 김무성 대표 등 차기 주자군이 대거 뛰어드는 이유에서다.
이는 상대 진영 잠룡들을 저격할 수 있는 또 다른 거물급 인사들의 발탁과도 맞물린다. 새누리당에서 허남식 전 부산시장, 윤상직 산업통산부 장관 등을 맞춤형 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일환에서다. 또 안 전 대법관과 문 대표 간 ‘빅매치’와 같은 차기 주자 간 맞대결도 배제할 순 없다. 내년 4월 총선에서 부산이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격전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는 까닭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