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구 한국금융 부회장은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 등과 함께 금융권에 몇 안 되는 오너 최고경영자(CEO) 중 한 명이다. 김 부회장은 한국금융 지분 20.2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김 부회장은 박현주 회장처럼 자수성가형이 아니라 조정호 회장처럼 재벌 2세로 태어나 형제간 계열분리 과정을 거쳐 금융업을 택한 인물이다.
김 부회장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196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났다. 경성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게이오대 대학원에서 경영관리 석사학위를 받았다. 김 부회장은 한때 우리나라 정·재계에서 큰 화제가 된 바 있는 재벌 2, 3세들의 모임 ‘브이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현재 우리나라 재계를 이끌고 있는 대기업 총수들이 이 모임에 적극적인 회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과 김 부회장의 사이가 그리 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벌2세에 걸맞지 않게(?) 김 부회장의 경영수업은 꽤 혹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부회장과 관련된 일화로는 원양어선을 탄 일, 말단사원으로 입사해 수년간 근무한 경력 등이 대표적이다.
김 부회장은 1987년 대학 졸업 후 4개월간 원양어선을 탔다. 먼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야 하는 동원산업 사업 특성과 경영수업은 밑바닥부터 해야 한다는 아버지 김재철 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다. 원양어선을 타고 돌아와서는 동원산업에 사원으로 입사해 근무했다. 여느 재벌 황태자와 분명 다른 경영수업이다. 이러한 과정을 밟은 김 부회장은 누가 봐도 동원그룹 후계자로 인식됐다.
김 부회장의 길이 바뀐 것은 1991년 게이오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동원증권으로 옮기면서다. 금융업무와 관련이 거의 없었던 김 부회장은 동원증권에 몸담기 시작하면서 금융·증권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김 부회장은 이후 동원증권에서만 근무하며 상무, 부사장 등을 거쳐 2004년 3월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다.
김 부회장이 사장으로 올라설 당시까지만 해도 동원증권은 증권업계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증권업 선두업체가 아닌 탓이었다. 동원증권이 증권업계 태풍을 몰고 온 때는 지난 2004년 7월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로 있던 한국투자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다. 사장 취임 4개월 만에 동원증권보다 덩치가 큰 한국투자증권 인수에 나서 성공한 것이다.
당시 동원증권이 써낸 입찰가는 5412억 원. 김 부회장은 5400억 원을 써낸 세계 최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칼라일을 불과 12억 원 차이로 따돌렸다. 2005년 2월 한국투자증권 인수 본계약 체결, 그 해 5월 동원금융지주에서 한국투자금융지주로 사명 변경, 김 부회장의 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 취임까지 거침없이 내달렸다. 그는 2011년 2월 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라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국금융은 지난 3월 말 한국투자증권·한국투자저축은행 등 6개 자회사와 한국투자신탁운용·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등 15개 손자회사, 그리고 증손회사인 홍콩현지법인 한국투자운용아주유한공사를 거느린 자산 25조 3444억 원의 거대 금융지주사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3조 6871억 원, 영업이익은 3269억 원을 기록했다.
한국금융은 2009년 자산 5조 3510억 원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처음 지정됐으나 2014년 ‘금융업전업집단’으로 전환되면서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반대로 금융업을 주로 하는 데다 한국금융처럼 오너가 최고경영자로 있는 미래에셋그룹은 부동산사업과 온라인사업 등을, 교보생명은 교보문고와 정보통신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기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포함된다. 한국금융은 2011년 대선주조와 새한정관, 2013년 시원네트워크 등을 계열사에서 제외하면서 금융업전업집단으로 전환됐다.
한국금융은 동원그룹에서 계열분리됐다. 동원그룹은 창업주 김재철 회장이 여전히 왕성한 경영활동을 하고 있던 2000년대 초반부터 일찌감치 형제간 계열분리 작업을 본격화했다.
이 또한 여느 재벌 기업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흥미로운 점은 계열분리 과정에서 장남인 김 부회장이 금융부문을, 차남인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이 동원그룹을 맡았다는 것.
우리나라 재벌 정서상 장남이 가업의 뿌리를 잇는 것이 보통인데 동원그룹은 오히려 차남에게 가업을 잇게 하고 장남에게 금융 부문을 ‘떼어내 준’ 셈이다. 김 부회장은 열 살이나 어린 동생 김남정 부회장(1973년생)에게 가업을 맡기고 본인은 ‘재벌 2세 후계자’에서 ‘금융인’으로 변모했다. 동원그룹 쪽에서는 김재철 회장의 뜻으로 보고 있지만 한국금융은 “김 부회장의 선택”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금융 관계자는 “원래 금융에 관심이 많았고 포부도 크다”며 “집안마다 사정이 다르기에 장남이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구태의연하다. 현재 동원그룹과는 기업적으로 보면 남남이나 마찬가지”라고 못 박았다. 동원그룹 관계자 역시 “서로 보유하고 있는 소규모 지분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한국금융과 완전히 분리됐으며 (계열분리) 이후 경영 간섭은 물론 교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재철 회장은 현재 한국금융 지분 1.09%를 보유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2010년대 들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대선주조와 이를 인수했던 투자목적회사(SPC) 시원네트워크가 파산 신청까지 이르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 또 시원네트워크 파산 신청 과정에서 투자자들의 분노와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금도 민원 발생이 가장 많은 증권사다. 또 민원을 해결하고 이를 실행하려는 의지를 평가하는 금융당국의 민원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고 있다. 올해 9월까지만 해도 한국투자증권은 민원 발생 건수 185건으로 2위 KB투자증권의 90건보다 2배 이상 많은데다 지난해 금융당국의 민원평가에서 4등급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업이익·당기순이익 4년 연속 1위 증권사에 걸맞지 않은 결과다.
2011년 한국금융 부회장에 오른 뒤 조용하던 그가 다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전문은행과 대우증권 인수전에 동시에 출사표를 던지면서다. 이 중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에는 이미 성공했으며 대우증권 인수에 대해서도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김 부회장은 오는 2020년까지 ROE(자기자본이익률) 20%, 시가총액 20조 원이라는 ‘비전 2020’을 목표로 세워놓고 있다. 현재 한국금융의 시가총액은 3조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쉽지 않은 목표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대우증권을 인수한다면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김남구, 대우증권 인수 고민은? 대우증권 노조가‘캐스팅보트’ 쥐나 사실 한국금융은 대우증권 인수전에 뒤늦게 참여했다. KB금융과 미래에셋이 일찌감치 인수 의지를 밝히며 적극적으로 검토한 데 반해 한국금융은 지난 10월 29일에야 “대우증권 매각 예비입찰에 참여하기로 최종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대우증권 몸값이 예상보다 높게 책정되지 않자 한국금융의 참여를 독려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이 때문에 “대우증권 매각 흥행을 위해 참여하는 듯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국금융의 참여에 대한 의구심이 사라지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처음엔 들러리로 나온 줄 알았는데 상황을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며 “오히려 KB금융과 미래에셋의 2파전에서 미래에셋과 한국금융의 2파전으로 바뀌는 듯하다”고 말했다. 학교(고려대) 선후배, 동원증권 직원과 오너의 관계 등 묘한 인연이 있는 박현주 회장과 김남구 부회장의 자존심 싸움으로 비치고 있기도 하다. 지난 11월 2일 열린 예비입찰에서 한국금융은 가장 큰 금액을 써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본입찰”이라며 “대우증권을 인수해 오는 2020년 아시아 최고 증권사로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과 대우증권 인수를 동시에 추진하는 데 따른 자금 부담에 대한 우려가 짙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처음부터 투 트랙으로 진행해온 일이고 인터넷은행은 1500억 원 수준이라 자금 부담은 전혀 없다”며 “증자 등의 방법 없이 자체 조달이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한국투자증권이 만약 대우증권을 인수하는 데 성공한다면 자기자본 8조 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증권사로 성장할 수 있다. 또 1991년 동원증권에서 증권업을 시작한 김남구 부회장은 25년 만에 업계 1위 증권사를 거머쥘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경쟁입찰 방식에서 결국 누가 더 많은 금액을 써내느냐가 관건이지만 김남구 부회장이 과연 예비입찰 때처럼 경쟁사들보다 큰 금액을 써낼지 관심을 모은다. 워낙 신중한 성격의 김 부회장이 아무리 필요한 매물이지만 무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문제는 또 있다. 구조조정과 조직 화합이다. 대우증권은 오랫동안 산업은행이 대주주였던 데 반해 한국투자증권은 증권업계에서 흔하지 않은, 오너가 CEO로 있는 증권사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투(한국투자증권)의 조직문화는 워낙 빡빡하기로 유명하다”며 “오랫동안 주인 없는 증권사였던 대우증권과 타이트한 한투가 결합하려면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KDB대우증권노동조합(위원장 이자용)은 벌써 한국투자증권으로 인수될 경우 합병에 따른 대규모 구조조정과 생존권 위협 등을 염려하고 있다. 특히 오너가 있는 회사에 인수될 경우 대립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우증권노조는 ‘우리사주조합’ 이름으로 예비입찰에 참여, 직접 대우증권 인수전에 나섰다. 사실상 우리사주조합이 인수하기는 어렵지만 매각 협상 과정에서 캐스팅보트는 쥐겠다는 의도다. 한국투자증권 출신 한 인사는 “한투가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 형식으로 돈을 줘가면서 구조조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수 후 1~2년 뒤면 직원들이 알아서 나가는 자연스러운 정리 수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동원증권이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던 2004~2005년에도 비슷한 과정을 밟아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본입찰을 하기도 전에 구조조정을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인수한다면 그 후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