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식당주인이 살해된 채로 발견된 건물.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지만 결정적 목격자는 없었다.
지난 12월 1일 기자는 광주지방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을 찾았다. 반갑게 맞아준 것도 잠시, “대인동 식당 주인…”이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담당 형사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 묻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건은 최근 7년 동안 뒤쫓던 용의자 검거에 성공했다. 단 두 명의 형사로 구성된 광주지방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이 일궈낸 엄청난 성과다. 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이 생긴 이래 오로지 기록 검토만으로 용의자를 추적해 검거한 것은 이 사건이 전국 최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미제로 남았다. 최초의 용의자 검거 자체는 개가를 올린 것이지만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대인동 식당 주인 살인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사건은 지난 2008년 10월 20일 오전 10시 50분께, 광주 동구 대인동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남성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이웃 주민 김 아무개 씨(당시 57)는 평소 알고 지내던 인근 식당 주인의 아내로부터 이날 이상한 전화를 받았다. “다른 지역에 있는 딸의 집에 와 있는데, 어제부터 남편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
경찰은 김 아무개 씨를 용의자로 보고 검거했지만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경찰 조사 결과 범행은 전날인 지난 2008년 10월 19일 오후 10시 50분 이후에 이뤄진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길을 지나던 이웃이 혼자 가게에서 술을 마시던 최 씨를 목격한 것. 사건이 발생한 식당은 대인동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지만, CCTV도 없었고 늦은 밤에는 인적이 드문 골목이라 추가 목격자 역시 없었다.
사건 현장은 깨끗했다. 단지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망치와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족적 등 두 개의 증거만 발견됐다. 하지만 현장에 떨어져 있던 망치는 물에 씻은 듯 혈흔이 일부 지워져 있었고, 실제로 국과수 분석 결과 피해자의 혈흔을 제외하면 지문 등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최초 강도 살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장에서 360만 원 상당의 금시계와 반지, 현금 등이 사라진 것. 손님을 가장해 침입한 강도의 소행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실제로 경찰은 주변 탐문수사와 동종 전과자들을 상대로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면서 단순 강도 살인 사건만으로 보기엔 이상한 점이 많았다. 식당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망치는 식당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숨진 최 씨에게선 반항을 하거나 몸싸움을 벌인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특히 범인이 최 씨의 후두부를 8차례나 때려 숨지게 한 것으로 볼 때,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은 아닌 것으로 추정됐다.
여기에 수상한 인물도 나타났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숨진 최 씨와 과거 말다툼을 벌였던 이웃이 있었던 것. 그는 식당 위 2층에 위치한 모텔에서 6년 동안 속칭 ‘달방’ 생활을 하던 장기 투숙자 김 아무개 씨(62)였다. 최 씨는 과거 뇌종양 수술로 인해 눈이 침침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종종 인상을 찌푸리며 사람을 보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를 모르는 김 씨가 “기분 나쁘게 본다”는 이유로 최 씨와 다퉜던 것으로 조사 됐다. 여기에 김 씨는 최 씨가 숨진 채로 발견된 날 오후 6시께 모텔에서 나섰다가 20시께 돌아왔고, 곧바로 다시 모텔을 떠난 뒤 자취를 감췄다.
당시 경찰 수사기록을 보면, 사라진 김 씨는 ‘보부상’처럼 인근 다방과 업소 여종업원들을 상대로 치약과 양말을 팔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김 씨는 그동안 본명이 아닌 자신이 머물던 모텔 업주 이름을 사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김창용 광주지방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 형사는 “김 씨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치약 거래에서도 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 업체와 거래를 했는데 카드나 ATM기를 사용하지 않고 무통장 입금을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도 가명을 썼으며, 택배를 받는 수취인의 이름도 가명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 씨의 치약 거래 정황을 포착하고 인근에 있는 한 은행에서 무통장입금 전표와 은행 창구 CCTV에 찍힌 김 씨의 사진을 확보했다. 당시 김 씨는 백발을 하고 있었으며 170cm가량의 건장한 체격이었다. 하지만 김 씨에 대한 단서는 여기까지가 전부였다. 김 씨의 본명조차 알 수 없어 더 이상의 추적은 불가능했다. 결국 경찰은 사건 발생 2개월 뒤인 지난 2008년 12월 16일 살인 혐의로 김 씨를 공개수배하고 전단 4000장을 제작해 전국에 배포했지만, 의미 있는 제보는 단 한 개도 없었다.
제자리만 맴돌던 수사는 4년이 지난 2012년 광주지방경찰청에 미제사건전담팀이 꾸려지며 급물살을 타게 됐다. 앞서의 김 형사는 “미제팀이 생긴 이후 지난 2013년부터 광주청에 있는 미제살인사건을 모두 모아서 기록을 검토했다. 해결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추리는 과정에서 ‘이 사건은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미제팀은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이 확보한 무통장 입금 전표에 주목했다. 김 씨가 직접 작성한 전표에서 지문이라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경찰은 김 씨가 이용하던 은행 지점 23곳을 모두 방문해 그가 작성한 전표 119장을 모두 수거했다. 앞서의 김 형사는 “다행히도 해당 은행에서 과거 무통장 입금 전표를 보관하고 있었다. ‘사건이 해결되려고 운도 따라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광주지방검찰청 전경.
해결의 실마리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난항은 계속 됐다. 미제팀은 수거한 전표를 모두 국과수로 분석 의뢰했지만, 국과수에서 ‘감식 불가’라는 답을 보내온 것. 용의자 특정까지 한 걸음만 남겨둔 상태에서 포기할 수 없었던 미제팀은 수소문 끝에 한 대학 종이지문감식 전문가를 찾아, 젖은 종이류에 남은 지문을 채취하는 ‘피지컬 디벨로프’ 방식과 2013년 개발된 지문판독시스템을 통해 김 씨의 신원을 특정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후에도 발생했다. 이번엔 김 씨의 신원을 특정했지만, 주민등록이 말소돼 있는 것으로 조사된 것. 이에 더해 김 씨는 수년간 신용카드나 휴대전화 등 사용 내역도 전혀 나오지 않아 생사 여부조차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미제팀은 과거 수배 전단보다 구체적인 김 씨의 정보를 담아 다시 전국에 공개 수배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드디어 김 씨가 미제팀에 의해 검거됐다. 수배 전단지를 본 한 시민이 “김 씨를 본 것 같다”는 제보 전화를 걸어온 것. 경찰은 즉시 신고가 접수된 곳으로 출동해 김 씨 검거에 성공했다.
그런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 김 씨는 사건 당일 도주한 이유에 대해 뜻밖에 진술을 했다. 지난 1998년까지 인쇄업을 하며 부족함 없이 지내던 김 씨가 IMF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나며 아내와 갈등이 생겼다는 것. 이 과정에서 김 씨는 자신이 “아내가 2억 원대 사기 혐의로 고소한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숨진 최 씨가 발견되고 현장 주변에 경찰들이 오가자, 자신의 사기 혐의도 드러날까 도망쳤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앞서의 김 형사는 “실제로 김 씨는 사건 당시 수배가 된 상태는 맞았다. 하지만 2억 원대 사기 혐의는 아니고 향군법(향토예비군설치법) 위반으로 20만 원가량의 벌금만 내면 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거짓말 탐지기 반응도 ‘진실’ 반응이 나왔다.
마지막 남은 유일한 단서는 족적. 경찰은 여기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 이 역시도 무산됐다. 사건 현장에 남아있던 족적은 265㎜, 김 씨의 신발 크기는 255㎜였다. 경찰은 발 크기가 현장에 남은 족적보다 크다면 일부만 찍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족적에 비해 발 크기가 작다면 애초에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일부러 큰 신발을 신고 다녔을 가능성도 있지만, 증명할 길은 없었다. 결국 경찰은 김 씨와 살인사건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고, 향군법 위반에 대한 공소시효도 지나 김 씨를 석방했다.
결국 대인동 식당 주인 살인사건은 피해자는 있으나 범인은 없는 ‘찜찜한’ 사건으로 남았다. 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이 생긴 뒤 기록 검토만으로 용의자 검거에 성공한 최초의 사례지만, 결국 사건은 해결하지 못했다. 현재 이 사건은 유력한 용의자가 사라진 ‘강도 살인 사건’으로 분류돼 있다. 경찰의 심증대로 김 씨가 대인동 살인사건의 범인일까, 아니면 김 씨의 주장처럼 진범은 따로 숨어 있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진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미제사건전담팀 운영 딜레마 시간 걸리는 난제들…실적 평가 어떡하지? 하지만 일부 실무자들은 미제사건전담팀 운영 방안에 대해 고민이 많다고 한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미제사건전담팀 운영 방안에 대해 ‘실질적 수사’와 ‘형식적 수사’ 두 가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며 “경찰도 결국엔 조직이고, 실적 평가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제사건은 수년 간 쌓인 자료 분석에만 최소 2∼3개월이 걸린다. 여기에 재수사 방향 설정, 수사 아이템 선정, 그리고 추가 분석과 회의 등이 필요해 재수사가 시작될 때 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는 “미제사건전담팀 구성원에게 미제사건만을 맡기면 6개월 동안 실적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직원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형식적인 수사를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물론 미제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추적한다는 의지를 보이는 측면에서 미제사건전담팀은 ‘경찰 홍보 효과’에 최적화돼 있다. 하지만 미제사건전담팀에 배정된 형사들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형사들이다. 이들을 ‘경찰 홍보용 형사’로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방청 경찰 관계자 역시 “이러한 문제는 오는 2016년 인력이 추가 보강되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서울·수도권 등 미제사건이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이라면 몰라도, 지방청은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 담당자는 “최근 미제사건전담팀이 구성돼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라며 “추가 인력 보강은 물론이고 유동적으로 각 지역 경찰서 강력팀, 또는 광역수사대 등을 통한 지원도 아끼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