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스나이퍼’ kt 장성호(38,왼쪽)와 ‘만 40세까지 뛰고 싶다’던 롯데 임재철(39,오른쪽)이 올 시즌을 끝으로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레전드 ‘스나이퍼’ 장성호가 이렇게 물러났다. 1996년 해태 타이거즈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장성호는, 2010년 한화 이글스를 거쳐 2012년 롯데 자이언츠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롯데의 보류선수 명단에 제외되는 바람에 2014 시즌을 마치고 은퇴 위기에 내몰렸지만 스승 조범현 감독의 부름을 받고 올 시즌 kt 위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kt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3월 개막전과 8월 상승세 도중 두 차례 부상을 당하며 경기보다는 재활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부상으로 시작해서 부상으로 막을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성호는 해태 타이거즈 시절 김응용 감독과의 인연 이후론 유독 감독과 불화설에 휘말린 일이 많았다. 롯데 시절 김시진 감독과도 몇 차례 마찰을 빚고 2군으로 내려가선 6개월가량 1군에 복귀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당시 김시진 감독님이 팀 성적이 좋지 못한 데 따른 분위기 전환용이라는 명목 하에 고참들을 2군으로 내려 보낸 후 시즌이 끝날 때까지 어떤 설명도 없이 2군에서 방치했었다. 구단은 내가 2군에서 잘하면 부담스럽다고 했다. 2군 성적이 좋은 베테랑 선수를 1군에 올리지 않으면 팬들의 비난이 들끓기 때문에 내가 못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다 (2군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니까 어느 순간부터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다. 그 후에는 2군도 아닌 재활군에 포함됐다.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만 하는 장성호만 존재할 뿐이었다. 사람이 왜 정신병에 걸리는지 알겠더라. 정말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올해 선수 생활 20년째를 맞아 2064게임에 출전, 2100안타를 기록한 장성호의 선수 생활 마지막은 불운했다. 현역으로 뛰는 동안 다시 한 번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길 소원했지만 그건 바람으로만 그칠 뿐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다.
은퇴 발표가 있던 다음날, 장성호는 기자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막상 그만둔다고 발표는 했는데 앞으로 뭘 해먹고 살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이것저것 정리 좀 하고 찾아뵐게요.”
장성호는 지도자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갈지, 아니면 오래 전부터 제안이 들어왔던 해설위원을 하게 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왼쪽부터 박명환, 이혜천, 손민한 사진제공= NC다이노스
‘만으로 40세까지는 현역으로 뛰고 싶다’던 롯데 자이언츠 임재철(39)이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올 시즌을 끝으로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했다. 1999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데뷔해 삼성-한화-두산-LG를 거쳐 롯데에서 은퇴하게 된 그의 마지막은 1군이 아닌 퓨처스리그였다. 스타플레이어들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뛰어난 수비력과 선구안, 작전 수행 능력을 갖췄고 무엇보다 젊은 선수 못지않은 체력과 자기 관리로 현장의 인정을 받았다.
2014 시즌 직후 임재철은 LG로부터 코치직 제의를 받았다. 현역 선수로 뛰고 싶은 마음에 LG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롯데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내면서 지난 6월 2군으로 내려갔고, 조원우 감독 체제로 바뀐 롯데는 임재철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 가을 마무리훈련 동안 어느 선수 못지않게 열심히 훈련에 참여하며 내년 시즌을 기다렸던 임재철로선 구단의 결정에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는 “마음으론 더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이 내려놓아야 할 때인 것 같다”는 말로 은퇴를 선언했다. 임재철은 자기 관리가 철저했던 선수로 정평이 나 있었다. 후배들이 이구동성으로 “지도자가 되면 대성할 선배”라고 말하지만 아직 어떤 길도 준비된 것은 없다. 롯데는 임재철의 코치 연수와 관련해 구단에서 계획하거나 준비한 것이 없다고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이제부터 철저히 혼자 새로운 길을 개척해가야만 한다.
NC 다이노스에선 대표적인 베테랑 투수 손민한 박명환 이혜천이 올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지난 8월 말부터 2군으로 내려갔던 박명환은 은퇴 결심 후 2군 고양 다이노스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아왔고, 시즌 종료와 함께 2군 투수코치로 선임되면서 지도자로 변신했다. 이혜천은 일찌감치 호주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즉 KBO리그에선 선수 생활을 마감하지만 구대성처럼 호주리그에서 또 다른 현역 선수로 뛸 계획을 세운 것이다.
박명환과 이혜천이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다소 초라한 모습으로 마무리했다면 손민한은 그 반대이다. NC에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올 시즌 화려한 재기를 선보였다. 1997년 롯데에 입단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손민한은 통산 123승 88패 22세이브, 평균자책점 3.55의 성적을 거두었다. 2012년 롯데에서 방출된 후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2013년 NC 다이노스에서 김경문 감독의 신임을 얻고 재기에 나섰다. 올해 11승(6패)을 거두며 제대로 부활했고,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 선발 등판해 KBO리그 역대 포스트시즌 최고령 승리투수(40세 9개월 19일)가 되기도 했다. 그는 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따낸 뒤 멋지게 퇴장하는 부분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떠밀려 나가는 게 아니라 좋은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 물러나는 걸 원했기에 그는 서둘러 은퇴를 결정했다.
올해 연봉은 1억 2000만 원. 올 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내년 시즌 연봉 인상 대상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민한은 아름다운 이별을 택했다. 이태일 NC구단 사장이 현역, 해외 연수, 코치 등 다양한 조건을 내걸며 설득했지만 손민한의 선택은 유소년 야구 육성이었다. 당분간 가족들과 휴식을 취하다 NC에서 유소년야구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게 손민한의 바람이었다.
해마다 겨울만 되면 베테랑 선수들은 더 추운 겨울을 맞이한다. 은퇴를 눈앞에 둔 선수들은 보이지 않는 무언의 압력을 체감하며 은퇴를 떠올리지만 그 결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누구나 아름답고 멋진 은퇴를 꿈꾸면서도 현실이 그것을 뒷받침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은퇴식도 못하고 쓸쓸히 떠난 ‘영원한 두목곰’ 김동주. 임준선 기자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운동선수들의 은퇴 후 삶은 두 가지 형태를 나타낸다. 해당 종목의 지도자 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해설위원이나 사업을 하며 진정한 사회인으로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지도자를 꿈꾼다고 해서 그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건 아니다. 10개 팀 코치 자리는 이미 꽉 차 있고, 공석이 나길 기다리지만 출신 성분, 학맥, 인맥 등으로 촘촘해진 틈을 뚫고 들어가 자리를 꿰차기란 어렵기만 하다. 무엇보다 선수 시절 받았던 연봉에 비해 코치의 연봉은 ‘새 발의 피’나 다름없다. 코치 초년 연봉이 5000만 원에서 출발하다 보니 억대 연봉을 받던 스타플레이어 출신들로선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2006년 두산 베어스에서 방출당한 문희성은 자연스레 은퇴 수순을 밟으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사회 속으로 뛰어드는 문제였다고 말했다.
“선수 유니폼을 벗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뭔가를 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막상 일을 시작하려 해도 두렵기만 했다. 주위에선 은퇴 소식을 듣고 이거 해보자, 저거 해라 등등 훈수도 두고 조언들, 사업 제안을 해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내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2년 동안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살았다.”
이후 문희성은 택시, 마을버스 운전기사 외에 택배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지금은 사회인야구장을 운영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문희성은 “난 그래도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아니라 택시나 마을버스를 운전할 수 있었지만 유명한 선수들은 은퇴 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제한돼 있다”면서 “선수 때는 인기 많은 스타플레이어가 부러웠는데 은퇴 후에는 전혀 부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타이틀이 없다는 게 홀가분했다”고 회상한다.
프로야구에는 다른 종목과 달리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회장 이순철)’가 설립돼 있다. 은퇴한 야구선수들의 권익 보호와 복지 증진을 위해 2013년 3월 설립한 단체로 현재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야구인 A 씨는 “유명 선수 출신들은 은퇴선수협회에서 안 챙겨줘도 다 제 갈 길을 간다. 문제는 유명하지 않았던 선수들이 은퇴 후 직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면서 “은퇴 선수들이 가장 쉽게 접하는 일이 영업인데, 이것도 이용만 당하고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선수들이 은퇴 전에 ‘제2의 인생’을 정확히 설계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선배 야구인들의 조언과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얘기를 전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축구 레전드를 대하는 구단들의 극과 극 자세 이동국은 떠받고 김병지는 떠밀고 ‘대박이 아빠’ 이동국(36)이 전북 현대와 2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2009 시즌, 성남에서 나온 이동국을 전북으로 끌어 들인 최강희 감독은 이동국과 함께 4회 우승(2009, 2011, 2014, 2015년)을 이끌며 동고동락했다. 이동국은 전북 소속으로 K리그 225경기에 나서 116골, 37도움을 기록하며 우승컵과 함께 MVP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K리그 최고 선수로 우뚝 섰다. 이동국(왼쪽), 김병지 이동국과 전북이 재계약하는 데에는 최 감독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절대적이었다. 전북은 우승이란 영광을 품에 안았지만 구단 재정이 축소되는 바람에 고참 선수들의 연봉을 삭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승 직후 이철근 단장이 최강희 감독을 만나 구단의 이러한 방침을 밝히며 이동국의 연봉이나 계약 기간을 줄이는 방안을 제안했다가 최 감독으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들어야만 했다. 최 감독의 측근은 “이동국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 이전과 같은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동국이 갖는 상징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게 최 감독의 입장이었다”면서 “최 감독은 전북이 K리그 전체 구단 중 경기장에 가장 많은 팬들이 찾아오는 팀인데 이동국의 연봉이나 계약기간을 축소하겠다고 나서는 건 자칫 일의 방향이 엉뚱하게 번지면서 선수도, 팬도 잃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최 감독은 기자한테도 여러 차례 “과연 이동국이란 선수를 영입하지 않았다면 우리 팀이 이렇게 많은 별을 달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팀에서 중심을 잘 잡아주기 때문에 항상 곁에 두고 싶다”고 말한 바 있었다. 이런 최 감독의 의중을 잘 알고 있는 이동국은 2015 K리그 대상 수상 직후 “감독님이 가는 곳이라면 나는 ‘1+1’로 따라가겠다”는 말로 의리를 과시했고, 구단은 2년 재계약으로 이동국과 최 감독을 응원하고 나섰다. 반면에 국가대표 출신 골키퍼 전남 드래곤즈의 김병지(45)는 최근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의사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노상래 전남 감독이 김병지의 잔류를 구단에 요청했지만, 구단은 끝내 이를 거부했다. 24시즌 동안 리그 706경기를 소화하고, 올 시즌에도 27경기에 출전해 30실점(경기당 1.11실점)만 한 전설의 골키퍼는 타의에 의해 은퇴 기로에 놓인 상황이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