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한 의류회사의 신입사원인 이 아무개 씨(여·23)는 특이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매 주말마다 백화점으로 향한다. 과제는 타 브랜드 의류 매장에 진열된 신제품을 찍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 씨는 주말마다 50장씩 찍어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파파라치처럼 몰래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것에 큰 부담감을 갖고 있다. 일부 매장 직원들은 이 씨의 행동을 눈치 채고 매장에 올 때마다 ‘몰카 손님’임을 눈치 챈다고 한다.
# 또 다른 의류업 종사자인 한 아무개 씨(여·35) 역시 입사한 지 수년이 돼 가는 베테랑이지만 이 과제를 위해 백화점에 드나들고 있다. 한 씨는 아무런 숨김없이 옷을 보고 100장이 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안경 몰래카메라를 착용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몰래카메라라고 의심을 하지 않기 때문에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수십 개의 마네킹과 옷을 눈에 담을 수 있다.
A 의류업체에서는 부서 및 팀을 막론하고 ‘시장조사’라는 이름으로 타사 매장에 전시된 의류를 촬영해야 한다. 옷의 경우 다른 제품보다 유행에 민감하고 유행이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디자인팀이나 MD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부서의 직원들이 시장조사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심지어 소재팀 직원들은 옷 안에 붙어있는 혼용율 표까지 찍어야 할 때도 있다. 옷을 직접 만져보고 안쪽에 위치한 표까지 찍으려면 고도의 기술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휴일임에도 회사 밖에서 업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디자이너 김 아무개 씨는 “흔들려서 찍거나 화질이 안 좋으면 제출할 수가 없어 많이 찍어가도 상당수는 제출을 하지 못한다. 최근 들어 몰래카메라를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며 “우리 회사뿐 아니라 다른 업체에서도 찍어가니 창의적인 디자인이 나오기는커녕 백화점 매장에 전시된 의상의 디자인이 천편일률적일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들은 진열된 옷을 촬영할 뿐만 아니라 옷을 직접 입어보고 입은 상태 자체를 촬영하기도 한다. 옷을 입은 상태의 촬영은 주로 탈의실에서 몰래 촬영이 이뤄지는데 간혹 웃지 못 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요즘 백화점 의류 매장 탈의실에는 몰카를 방지하기 위한 카메라 감지기가 설치돼 있는 곳이 많다.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는 모습을 몰카로 촬영하지 못하도록 설치해 놓은 감지기인데 옷 자체를 찍기 위한 의류업체 직원들의 행동까지 감지하는 것이다.
한 백화점 매장 관계자는 그런 경우까지 감지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몰래 찍는 이들이 있다면 이들을 막는 이들도 존재한다. 백화점 내 매장마다 사진촬영 금지를 내걸고 있다. 백화점 입점한 의류 매장의 대다수는 본사로부터 방문하는 고객들의 사진촬영을 금지하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다.
매장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경쟁사뿐만 아니라 로드숍 및 개인디자이너들도 매장을 찾아 몰래 사진을 찍어가고 있다”며 “새로 나오는 옷들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는데 의장등록이 돼 있는 상품의 디자인 도용시 해당 법률에 의거해 법적 조치가 취해질 수 있는데 몰래 찍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물증이 없다”고 말했다.
몰카를 판매하는 매장에서는 의류업계 종사자들이 가장 큰 고객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 촬영을 막다 보니 찍어야만 하는 이들의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었다.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몰래 촬영하는 대신 몰래카메라를 이용하는 것이다.
의류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선 안경에 초소형 카메라 렌즈를 부착한 안경 카메라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기자가 실제로 몰카를 판매하는 매장을 찾았더니 몰카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 몰카는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안경 카메라는 안경 알 가운데에 렌즈가 감촉같이 부착돼 있고 안경다리 양쪽에 배터리가 들어있었다. 배터리 하나당 1시간 동안 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두 시간 동안 아무 제재 없이 촬영이 가능한 셈이다.
판매자는 “의류업계 종사자들이 가장 많이 사가는데 의류뿐만 아니라 가전제품 쪽에서도 사가고 있다”며 “품목에 제한 없이 신제품 박람회를 가시는 분들도 유용하다며 많이 사가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머리를 풀고 착용하면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두 번째는 의류를 찍는 것 대신에 일단 사가는 것이다. 구입해서 가져간 뒤 직물과 디자인 등을 훑어 본 후에 환불 및 교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패턴을 뜯어 분석한 뒤 다시 부착하거나 일부분을 오려낸 뒤 다시 복구하는 등 제품에 손상이 생기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일부 매장에서는 상품 디자인 무단 도용시 교환 및 환불 불가는 물론이고 제재를 가한다는 안내를 하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동영상을 촬영하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오프라인에서 위장형 카메라를 판매하는 행위를 규제할 수는 없다”며 “카메라를 이용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거나 카메라만 남기고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몰래 촬영을 하는 것 이외에는 처벌이 따르지 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몰카 판매와 사용을 규제하는 법적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월 11일 조정식 새정치연합 의원은 ‘몰카’를 이용한 범죄 등을 방지하기 위해 초소형 카메라 판매를 허가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판매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소지자도 행정자치부 부령에 근거해 소지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조 의원은 “최근 초소형 카메라의 불법 판매와 유통으로 몰래 카메라 범죄가 급증, 사생활 침해와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지만 관련 규제가 미약하다”고 밝힌 바 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