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죽인 범인으로 지목돼 12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더 킬러’ 샘 셰퍼드. 작은 사진 왼쪽은 죽은 아내 마릴린 리즈.
샘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잠결에 아내의 비명 소리를 들었고, 침실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가 뒤에서 내리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는 것. 이후 정신을 추스른 그는 피로 물든 아내의 맥박을 체크했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는 아들이 잠들어 있는 옆방으로 달려갔고, 다행히 안전한 상태를 확인했다. 이때 1층에서 소리가 들리자 뛰어 내려갔고, 범인을 쫓아 호숫가로 달려갔다. 범인과 난투극을 벌였지만 강한 린치를 당한 샘 셰퍼드는 다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이후 집으로 돌아온 그는 이웃과 경찰에 연락했고, 경찰이 도착했을 땐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18일 후인 7월 22일부터 공식 조사가 이뤄졌고, 셰퍼드에 대한 공판은 10월 18일에 열렸다. 지역 언론은 셰퍼드가 범인이라고 주장했고, 라디오 쇼엔 자신이 셰퍼드의 정부이며 아이의 생모라는 정체불명의 여자마저 등장했다. 검사는 셰퍼드가 수전 헤이스라는 간호사와 3년 동안 불륜 관계였다며 밀어붙였다. 하지만 아무 증거도 없었다. 아내가 죽었을 때 집에 있었다는 것이 유일한 증거였다. 범행에 사용된 둔기도 발견되지 않았다. 셰퍼드의 변호사였던 윌리엄 코리건은 셰퍼드가 범인에게 맞아 뇌진탕 증세를 겪고 있으며 몸 왼쪽이 거의 마비 상태에 가깝다고 말했지만, 판결에 참작되지 않았다. 셰퍼드는 범인이 더벅머리 남자였다고 말했고, 소환된 18명의 증인들 중 두 명이 그 날 어느 더벅머리 남자가 집 주위를 배회하는 걸 목격했다고 했지만 배심원들의 평결은 ‘유죄’였고, 1954년 12월 21일 판사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샘 셰퍼드와 조지 스트릭랜드
감옥에서 편지로 알게 된 아리아네 테벤요한스라는 여자와 출옥하자마자 결혼한 셰퍼드는 3년 후에 이혼했고, 1969년에 세 번째 아내 콜린을 만난다. 그녀는 프로레슬러인 조지 스트릭랜드의 딸이었고, 장인은 46세의 사위를 트레이닝시켜 링에 출전시킨다. 닉네임은 ‘더 킬러’. 그의 구구절절한 인생을 생각하면 꽤 아이로니컬한 이름이었다. 장인과 함께 팀을 이루기도 하며 40게임 이상을 뛰었지만, 사실 이 시기 샘 셰퍼드는 하루에 1.5리터씩 마셔대는 위스키 때문에 망가지고 있었고 1970년에 간부전으로 47세의 삶을 마감한다.
그렇다면 그의 첫 아내 마릴린을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지만, 유력한 용의자가 없는 건 아니다. 셰퍼드의 집에 가끔씩 잡일을 해주러 오던 리처드 에벌링이라는 남자였다. 그는 몇몇 전과 전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5년 후인 1959년 경찰 조사를 받았을 때 그가 훔친 물건들 중엔 마릴린의 반지 두 개도 있었다. 게다가 사건 현장엔 제3의 혈흔이 있었는데, DNA 분석가는 에벌링의 것과 90퍼센트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에 에벌링은, 반지는 사건 이전에 훔친 것이며 피는 그 집 유리창을 닦다가 베어서 떨어트린 것이라고 변명했다. 거짓말 탐지기 검사도 했다. 검사 당시엔 ‘진실’로 나왔지만 이후 그래프를 면밀히 조사한 분석가는 ‘거짓’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에벨 메이 더킨이라는 노파의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1984년에 종신형을 선고 받아 복역하던 중에 1998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감옥 동료 중 한 명은 에벌링이 “사실은 내가 마릴린을 죽였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전해진 이야기일 뿐, 법정에서 밝혀진 진실은 그 어떤 것도 없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