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주형씨 | ||
조성민의 아버지 조주형씨는 그렇게 자신도, 또 세상도 아들 부부 문제를 기억 너머에 묻어두기를 바랐다. 그러나 세상사가 심정대로만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때마침 터진 이경실 부부의 ‘야구 방망이’ 구타 사건은 조성민-최진실 부부의 이름 석자를 다시 세상 한가운데로 불러냈다. 문득 아들과 며느리 문제로 가슴을 태우던 조주형씨가 떠올랐다.
조성민-최진실 양측의 매스컴을 통한 공방전이 연일 수위를 더해 가던 당시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타서 재가 되어버린 속내를 털어보였던 ‘아버지’ 조씨. 그를 만나 이후의 상황 변화와 출산을 코앞에 둔 며느리 최진실에 대한 생각 등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다. 만나자마자 조씨가 자신에게서 어떤 멘트도 들을 수 없을 것임을 거듭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술과 명확한 주제가 눈앞에 있는데도 언제까지나 변두리만 맴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일은행 연식정구 선수 출신이라는 사실, 팀이 해체되면서 조기 은퇴한 후 은행원으로 변신했지만 ‘선수 출신’이란 꼬리표 때문에 힘든 경쟁을 벌여야 했던 일, 지점장으로 퇴직하기까지 남몰래 기울였던 노력과 청렴한 생활 등등의 과거사가 이어지다가 결국 ‘자식’ 문제가 거론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2일 저녁 양수리 집 건너편에 있는 ‘김치 삼겹살집’. 소주잔을 기울이다 기사화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풀어가던 조씨는 막판에 ‘본색’을 드러낸 기자의 ‘직업정신’에 갈등을 하면서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
먼저 조성민-최진실의 이혼 파동 이후의 상황에 대해 물었다. 조씨는 “자네처럼 ‘직업 정신’이 투철한 기자들 때문에 힘들었다”며 운을 뗐다. 집의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전화번호를 노출시키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알았는지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걸려오는 바람에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음을 고백했다.
“난 지금도 두 애들이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가능하다면 두 사람을 화해시킨 후 같이 살고 싶어. 같이 살면서 가족이라는 게 무엇인지,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면서 두 사람을 교화시킬 생각이야.”
조씨는 여전히 두 사람의 이혼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확고히 했다. 예전 <일요신문>과의 단독인터뷰(554호 보도)에서도 ‘이혼만큼은 절대 안된다’고 말했던 부분의 연장선상이었다.
그는 자신의 바람이 현실화되기까지엔 어려움도 많고 또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들 부부가 잘 되길 바라는 것은 부모만이 가질 수 있는 안타까움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 조씨는 며느리 최진실이 요양차 양평에 위치한 별장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됐다. 손자 환희를 데리고 있다는 내용을 보고 환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안부도 물을 겸 최진실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결국 몇 차례 음성메시지를 남긴 끝에 며느리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 요미우리 소속 시절 조성민과 그의 부모. 부친 조주형씨 (가운데)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외로움을 덜어 주기 위해 아카사카의 코리언클럽에 내가 처음 데려갔었 다”고 털어놨다. | ||
조씨는 최진실 모자가 양평에서 다시 잠원동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와 함께 잠원동으로 어려운 발걸음을 옮겼다고 한다. 이유는 한 가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환희가 보고싶었던 것이다.
한때 거리낌 없이 손자와 만났던 순간을 떠올리며 반가운 해후를 기대했지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탓인지 할아버지를 대하는 환희의 표정은 예전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두 부부를 가슴 아프게 한 것은 최진실, 최진영의 태도였다.
“아직 이혼한 게 아니잖아.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거고. 그런데 서로의 허물을 들춰내봐야 뭐가 좋겠어. 부부는 사이 좋을 때, 행복할 때만 부부가 아니야.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하고 좌절할 때 용기도 줄 수 있어야지. 결혼 승낙을 받기 전에는 뭐든지 다할 것 같던 사람들이 살게 됐다고 해서 변심하면 안되는 거야.”
조씨는 ‘환희 할아버지’란 사실은 설령 조성민-최진실이 이혼을 했다고 해도 변할 수 없는 진리라고 강조했다. 정작 자식보다도 환희 걱정이 훨씬 앞서는 듯했다. 지금은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부모가 신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지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진실이가 연기 생활을 계속한다면 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물론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는다는 조건에 한해서지만. 환희와 새로 태어날 아이에게 돈이 능사가 아니라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야.”
조성민이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아카사카의 코리언 클럽에 자주 드나들었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조씨도 인정했다. “처음엔 내가 데리고 다녔어. 한국인들이 많이 몰려 있다보니 외로움을 덜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지. 사람들과 대화 나누는 걸 좋아했던 성민이로선 아카사카가 유일한 ‘해방구’였을지도 몰라. 얼마나 자주 들락거렸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아카사카에 출입하게 된 건 순전히 내 탓이야.”
조씨는 조성민이 재기 의지를 다지고 야구를 다시 시작한다면 모든 걸 바쳐서라도 뒷바라지해주고 싶다고 한다. 만약 부상당하지 않고 결혼 후 행복한 생활을 영위했더라면 박찬호가 부럽지 않을 만큼의 성장세를 나타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톱스타를 며느리로 뒀지만 단 한 번도 며느리 덕을 보고 살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돈 잘 버는 며느리 둬서 좋겠다’는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진실이도 알 거야. 내가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지. 만약 조금이라도 진실이의 재산에 관심을 뒀다면 난 얼굴 들고 살지 못하지. 지금 이 집은 퇴직금으로 마련한 거야. 자식한테도 손을 안내미는 판에 며느리한테 기대고 살겠어 내가.”
인터뷰 말미에 최진실이 아이를 낳게 되면 찾아가볼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당연히 가야지. 사네 안사네 해도 손자는 영원한 손자거든.”
4시간 동안 앉아 있다보니 어느덧 소주 4병이 비워졌다. 다음날 조씨는 ‘잘 들어갔냐’는 안부 전화와 함께 전날의 부탁을 잊지 않았다. “기왕 쓰기로 했으니까 잘 써야 돼. 두 사람이 잘 되게끔 기자들도 도와줘야지. 애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