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아주 오래된 옛날에 적막하기 그지없는 들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아이였건만 옥처럼 고운 여아였다. 하늘의 학이 날개로 덮어주고 보살펴준 그 아이를 사람들은 ‘오늘이’라고 불렀다. 어느 정도 성장한 오늘이는 하늘의 강 원천강에서 계절을 지키고 있는 부모를 찾아 삼만리 긴긴 방랑을 시작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
내일을 생각하면 막막해서 한걸음도 뗄 수 없다. 답은 오늘 속에 있다. 오늘, 오늘이를 키워주고 오늘이를 떠나보내는 백씨부인이 오늘의 과제를 준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걸어가면 글을 읽고 있는 도령이 있는데 그에게 길을 물어보면 된다는 것이다. 방랑길에서 글 읽는 도령을 만난 오늘이는 원천강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도령이 대답해준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다 보면 연화못이 나오는데, 연화못의 연꽃이 원천강에 이르는 길을 알고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원천강에 도달하면 왜 자신이 밤낮없이 글만 읽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물어달라고 한다.
연화못의 연꽃은 청수바닷가로 가라고 한다. 거기에 도달하면 이무기 한 마리가 놀고 있을 테니 그에게 길을 물어보라는 것이다. 걸어, 걸어 청수바닷가에 도달한 오늘이는 드디어 이무기를 만나 원천강에 이른다. 오늘이를 원천강으로 데려다 준 이무기가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다른 이무기들은 여의주를 하나만 물고도 용이 되어 승천하는데 자신은 왜 여의주를 셋이나 물었는데 승천하지 못하는지 알아봐 달라는 것이다.
모든 존재의 도움으로 원천강에 도달해 부모를 만난 오늘이는 부모를 만나기까지 자신을 도와준 존재들의 과제를 풀어준다. 이무기가 승천하기 위해서는 여의주 세 개 중 둘을 버려야 하고, 연꽃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한 꼭지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꼭지를 따줘야 한다. 책 속에 갇혀 있던 장상도령은 매일이라는 오늘이의 친구와 결혼하여 자기 감옥에서 나온다.
나는 오늘이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얼을 본 느낌이었다. 인간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가? 답은 ‘오늘’ 속에 있다.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막막한 인생길이지만 그 외로움과 막막함에서 도망가지 않고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하면 거기에 전체 혹은 궁극에 과제와 연결되는 다음 과제가 있다.
융이 말했다. 진정한 치유는 자기 자신이 되는 거라고. 그러나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은 욕심낼 일이 아니다. 천천히 단계, 단계를 밟아야 한다. 세상에 욕심으로 성급함으로 되는 일 중에 인격에 관한 일은 없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