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에서 12시에 고등학생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는 중학생들(위). 아래는 고등학생 교실 모습.
오늘은 중학교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갑니다. 저는 제가 소속된 단체에서 양곤에 파견한 교육담당입니다. 제가 일하는 ‘빈민아동’ 공동체 학생들은 인근 초중고대학에 다닙니다. 이 아이들에겐 교육만이 살 길입니다. 우리들의 가난했던 시절처럼. 그런데 공부를 안 하는 아이들이 몇 있어서 담임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가는 길입니다. 가끔 선물도 사가지고 선생님을 만나 부탁도 드립니다. 성적이 떨어지는 과목이 있으면 방과 후 집으로 모셔와 ‘과외’도 부탁드립니다. 외국어는 우리 스태프들이 직접 가르칩니다. 아이들과 교실 밖에서 12시까지 기다립니다. 고등학생들의 수업이 12시에 끝나야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고등과정은 7시에 시작해 12시에 끝나고 중학과정은 12시에 시작해 5시에 끝납니다. 점심은 다 집에서 먹어야 하는 시스템입니다. 쉽게 말해 오전반, 오후반입니다. 수업시간이 짧으니 교과목도 많지 않습니다.
저는 이 나라에 학교를 짓는 꿈을 갖고 왔습니다. 교육현실을 파악하려고 드나들다 이 소망을 갖게 되면서 완전히 이주를 했습니다. 교육을 통해서 인재를 키우고 지역을 살리자는 소속단체의 슬로건과 일치합니다. 인재를 키우려면 지금의 교육현실로는 어렵습니다. 현지인들까지 저를 낯설게 보기도 하고, 학교부지, 건축, 재정지원 시스템 등 과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이곳 양곤에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셔서 용기를 냅니다. 한번은 양곤서 한 시간 걸리는 모비라는 곳에 갔습니다. 10에이커(약 1만 2000평)인데 평평하고 자립농장도 겸할 수 있어 학교부지로는 적합한 장소입니다. 퇴역한 장군의 땅이고 3억 원 이상 나가는데 1억 7000만 원까지 깎아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저기 다녀봐도, 학교 지을 땅은 너무 멀고 너무 비쌉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학생들 자는 숙소 옥상에 올라가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좋은 땅이 있지만 너무 멀고 비쌉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다공대학교 인근에 하이스쿨부터 짓고 싶습니다. 숙소도 가깝고 대학도 가깝고. 그러며 그 땅을 간절히 바라다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일이 생겼습니다. 그 바라다보던 땅에 학교부지를 희사하겠다는 분을 만난 겁니다. 저도 돌아다니다 지쳐서 통역과 함께 우연히 쉬러 간 농장에서.
그분은 한국에서 유학한 50대 후반, 선한 인상의 농장주인데 저와 똑같은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부지는 학교와 기숙사와 운동장을 하면 딱 맞는 강 언덕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부인은 이 나라에서 사립학교를 설립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갖고 있습니다. 땅값이 오르며 팔라는 사람이 많이 왔지만 팔 생각이 안 들더랍니다. 우린 교육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내가 청소년들 얘기를 하자, 그분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이 한 말이 지금도 가슴에 남습니다. “저는 너무 가난해 한국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공부해서 한국에 빚을 졌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와 남아있던 돈으로 이 땅을 샀어요. 그땐 아주 싸게 샀지요. 우리 청소년들을 위해 한국에서 학교를 짓는다면 저희 부부는 교사를 하겠습니다.”
아직은 교실과 기숙사, 도서관과 식당, 자립농장 건축, 완전 장학금의 하이스쿨이므로 재정지원 시스템 등 과제가 많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꿈이 만났습니다. 아이들도 제 꿈을 알기에 옥상에서 저와 똑같은 소원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12시가 되어 고등학생들이 달려나옵니다. 교정으로 들어가는 중학생들을 바라봅니다. 저 아이들이 언젠가 그 학교에서 공부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좋아하는 축구도 하고, 도서관에서 밤늦게 책도 읽고, 올바른 정치를 위해 외국 명문대학에 유학도 가고, 한국 선생님이 와서 농업기술과 한국어도 배우고, 튼튼한 기초 학문 위에 기술력과 창의력를 꿈꾸는 곳. 그날이 올 수 있을까요?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고아를 위한 NGO Mecc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