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포 속의 비밀, 미치도록 가렵도다>는 선조들은 어떤 병을 앓았으며 이를 어떻게 치료했는지를 연구해온 저자가 조선 왕들이 빈번하게 앓았던 ‘가려움증’에 초점을 맞춰 풀어낸 이야기다.
왕들이 가려움증을 앓았던 이유는 다양했다. 인조는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뒤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항상 떨어야 했다. 게다가 삼전도에서 청나라 사신에게 항복 의식을 치르며 삼킨 분노가 인조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는 급기야 간에 문제를 일으켜 몸이 가렵고 초록색 땀이 나는 증상이 나타났다.
경종은 스트레스성 땀띠 환자였다. 숙종은 세자 시절부터 성질이 사납기로 유명했고 왕위에 오른 뒤에는 다혈질 군주였다. 수십 년의 재위 기간 동안 그렇게 분노를 다스리지 못할 때마다 숙종의 간은 서서히 기능이 멈췄고, 결국 말년에는 간경화로 밤마다 가려움에 치를 떨어야 했다.
영조는 회충증 환자였으며 오래 살았던 만큼 병도 많았다. 효장세자의 빈인 현빈궁은 개창(옴)을 앓다가 토황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정조는 더위를 많이 타고 울화가 쌓인 체질이었고 인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이처럼 왕들은 단순한 피부병에서 가려움증이 비롯된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로 인한 내장 기관의 악화가 가려움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시대 왕의 하루 일과는 혹독했다. 해가 뜨기 전 기상해야 했고 밤 10시는 되어야 모든 공식적인 일정이 끝났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죽을 때까지 나랏일만 하는 것이 임금의 일과였다. 선위하거나 쫓겨나기 전까지는 절대 그만둘 수 없었다. 이러니 왕들에게는 스트레스도 많고, 그만큼 온갖 병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조선 왕들의 삶이 21세기 현대인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이 병을 얻은 이유 또한 스트레스 혹은 마음의 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낱’ 가려움증으로 고통받았던 한 인간으로서의 왕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조선 왕들의 성정은 어떠했으며 왕들의 질병이 조선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저자는 <승정원일기>에서만 ‘가려움’에 대한 기록을 2000여 건 넘게 찾아냈으며, 그 밖에 1만여 건이 넘는 여러 1차 사료 원문을 직접 해석하여 연구했다고 한다.
방성혜 지음. 시대의창. 정가 1만 50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