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근 전 대표
지난 6월 17일 강 씨는 정 전 대표에게 1억 5000만 원을 송금한다. 하지만 강 씨는 정 전 대표가 약속했던 이자도, 원금도 돌려받을 수 없었다. 지난 8월 강 씨는 결국 경찰서에 정 전 대표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변제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으로 돈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전 대표는 ‘변제능력이 있었다’며 사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정 전 대표 관련자 등이 운영했다는 식당의 수익 등에 비춰 볼 때 빌린 돈의 변제능력이 있었는지가 사기 혐의를 입증하는데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사기죄로 확인될 경우 미필적 고의로 기망행위를 저지르는 등 감경 요소가 없거나 피해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는 가중요소가 없다면 1억 5000만 원의 금액은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라 1년 이상 4년 미만의 판결이 가능하다”며 “다만 돈을 갚을 경우 집행유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로 송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정 전 대표는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적이 있다. 지난 1997년 그는 미국의 호텔 카지노에서 거액을 빌려 도박을 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500만 원과 사회봉사 120만 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한때 재계 서열 14위의 한보그룹. 하지만 1997년 부도 이후 이제는 역사에서만 볼 수 있는 이름이 됐다. 일요신문 DB
정 전 대표 이외에 정태수 회장 일가는 많은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06년 정 전 회장은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자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2007년 해외로 도피한 뒤 아직 입국하지 않고 있다. 정 전 회장이 내지 않은 세금은 3000억 원에 달해 매년 고액 세금체납자 1위 자리를 2004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오고 있다. 정 전 회장의 넷째아들인 정한근 전 부회장(50) 역시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잠적했다.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 전 부회장은 293억 원의 국세를 체납한 상태다. 정 전 회장의 셋째아들 정보근 전 한보철강 대표(52)도 증여세 639억 원 등 999억 원의 세금을 체납했다.
재계 관계자는 “썩어도 준치라던 옛말도 통하지 않는 것 같다. 한보그룹이 망했다지만 재계 14위까지 올랐던 그룹인데 1억 5000만 원을 갚지 못해 사기 혐의를 받다니 말로가 비참하다”며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안 좋게 풀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