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대표팀이 아깝게 결승진출에 실패한 가운데 월드컵 이후에 대한 몇가지 궁금증이 히딩크 감 독 주변을 떠돌고 있다. | ||
1. 이전 인터뷰에서 ‘내가 만약 유럽으로 진출하게 된다면 현 대표팀 선수들중 2~3명 정도는 데려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만약 그런 기회가 생겼다면 가장 가능성 있는 선수가 누구인가.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지금 선수 이름을 거론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내 생각보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선수들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송종국이 단연 앞섰다. 나 또한 외신과의 인터뷰 때마다 송종국의 멀티플레이 능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얼마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월드사커’의 편집장이 유상철과 이영표 박지성 등을 유럽에서도 충분히 통할 만한 재목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월드컵 중에는 유럽 에이전트들이 박지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설기현도 좋은 선수인데 소속팀 안더레흐트와 계약이 1년 남아 있어 어떤 제스처를 취할 입장이 아니다.
2. 향후 거취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네덜란드 PSV아인트호벤 감독으로 내정됐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그쪽에서 오퍼가 온 것은 사실이다. 구두로 언질을 했는지, 안했는지 여부는 여기서 확인시켜 줄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아직까지 어느 팀과도 계약서에 사인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설령 그 팀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줬다고 해도 월드컵이 끝나기 전까지는 확실한 멘트를 해줄 수 없다. 만약 더 좋은 팀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프러포즈를 해온다면, 그 이후는 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 박지성 | ||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축구를 즐기고, 선수와 감독에 대해 호감을 나타내는 것은 그라운드에서만이다. 다분히 매스 미디어가 만든 산물이다. 물론 내 능력을 인정받고 엄청난 성원을 받는 일은 무척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축구에서 끝나야 한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도 훈장을 준다면 고맙게 받겠다.
(이 질문에 대해 허진 언론담당관은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였다. 즉 엄청난 돈을 투자해서 고용한 감독에게 국적을 부여하고 별장을 지어주며 도로를 만들어 주는 것은 넌센스라는 것. 한국팀의 월드컵 성적표는 감독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23명 선수들, 코치들, 팀닥터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돼서 움직여줬기 때문이다. 감독 혼자서 이뤄낸 성과인 것처럼 환호를 보내기 전에 혼신의 힘을 다해 뛴 선수들, 그리고 벤치를 지킨 선수들에게 더 먼저 박수를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4. 포르투갈전부터 계속해 심판 판정시비가 일고 있다. 스페인전이 끝나고 견해를 밝히긴 했지만 더 붙이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다. 진 팀에선 당연히 그런 식으로라도 책임전가를 하고 싶을 것이다. 물러날 때는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도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주는 일이다.
5. 4강전까지 오르게 된 원동력이 무엇인가.
▲한 가지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협회의 막강한 지원, 나에 대한 선수들의 믿음과 신뢰,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응원단 ‘붉은 악마’의 열렬하고 조직적인 응원의 힘이 무척 컸다.
6. 월드컵 개막 전에 한국팀이 4강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었나.
▲솔직히 이렇게까지 잘할 줄 몰랐다. 특히 4강전은 예상할 수 없었다. ‘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세계를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다행히 너무나 훌륭한 팀워크와 하고자 하는 의지 등이 한국에 기적을 안겨준 것 같다.
▲ 유상철(왼쪽), 이영표 | ||
▲분명한 것은 이번 월드컵 성적으로 인해 다음 대표팀을 맡을 감독의 부담감이 엄청날 것이다. 항간에서는 나와 같이 있는 핌 베어백 코치를 후보로 거론하기도 하던데 그는 아마 그가 가고자 하는 길로 갈 것이다(허진씨는 핌 코치는 히딩크가 큰 틀을 만들어 놓은데서 세부적인 프로그램을 창출하는데는 탁월하지만 히딩크처럼 선수단 전체를 이끌고 탁월한 전술과 전략으로 팀을 만들어가기에는 부족함이 있다고 평가했다). 아직도 월드컵이 진행되는 중인데 내 입으로 차기 감독에 대한 운운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다.
8. 마지막으로 골키퍼 김병지가 이운재와의 경쟁에서 밀려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알고 싶다.
▲이운재가 훨씬 안정감 있어 보였다. 또 어떤 훈련에도 아무 불평 없이 묵묵히 소화해냈고 필드플레이어들보다 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더욱이 선수들이 이운재가 골문을 지킬 경우 더욱 안정돼 보였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 관계자들의 표현대로 굉장히 프로다운 정신을 가졌다. 프로답다는 설명이 좋은 의미도 포함돼 있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다분히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부분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의 생애에서 한국대표팀을 맡았던 1년6개월이란 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전에서 자신이 가르쳤던 옛 제자들을 상대로 냉엄한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 것처럼 한국을 떠난 뒤엔 언제 다시 상대팀 감독이 돼 경기를 치를지 모르는 일이다.
히딩크 감독에 대한 찬양 일색의 여론도 좋지만 그가 떠난 뒤의 대표팀을 미리 걱정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하는 몇몇 관계자들의 조심스런 언질 속에 그에 대한 진짜 궁금증은 또 다음 기회로 남겨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