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지역 44개 여성·인권단체 회원들이 지난 3일 여수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여수시 학동 소재의 한 유흥주점 종업원 사망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초동수사 미흡을 비판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뇌사 판정을 받은 강 씨에 대해 병원에 접수된 내용은 ‘음식물이 목에 걸려 벌어진 사고’였다. 그렇지만 연락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온 강 씨의 유가족은 피해자 몸 곳곳에서 멍을 발견해 여수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수사가 지지부진했다.
결국 유가족은 지난달 24일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 ‘언니네’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유가족뿐 아니라 같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동료 여종업원들도 함께했다. 이들을 상대로 상담을 마친 ‘언니네’ 측은 여수경찰서에 수사를 촉구했고 이후 경찰은 수사 주체를 여수경찰서에서 전남경찰청 광역수사대로 변경했다. ‘언니네’ 역시 광역수사대에 정식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여수시 학동은 유흥업소 밀집 지역으로 사건사고가 종종 있어왔다. 지난 9월 한 유흥업소 룸 내부에서 성관계를 맺게 한 혐의로 업주가 붙잡혔고 11월에는 마사지업소로 위장한 성매매업소가 적발되기도 했다. 강 씨가 일했던 유흥업소는 손님이 룸에서 여자 종업원들과 술을 마신 뒤 경우에 따라 2차를 가는 시스템이다. 이 업소에는 바지사장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운영은 박 아무개 씨가 맡았다고 알려졌다. 해당 업소의 종업원들은 박 씨가 폭력과 폭언을 일삼고 갖가지 명목으로 벌금을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언니네’는 보도자료를 통해 “강 씨에 대한 박 씨의 폭력이 특히 가혹했다. 거의 매일 폭력을 휘둘렀으며 사건이 일어난 당일에도 한 시간 가까이 폭행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사건 이후에도 박 씨는 종업원들에게 경찰의 전화를 받지 말라는 지시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언니네’ 측은 “사건 담당 여수경찰은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업주의 말만 듣고 단순한 개인적인 사고로 처리했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여수경찰서 측은 이를 강력히 부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절차대로 이상 없이 진행했다. 폭행으로 신고를 했는데 당연히 폭행으로 조사를 했지 다른 걸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광역수사대가 압수수색을 했을 때 CCTV 녹화 내용은 이미 지워졌고 장부 등 주요 증거도 사라진 뒤였다.
일부 인권단체에서는 성매매 피의자 가운데 경찰이 포함돼 있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했다. 이것이 바로 ‘성매수자 리스트’인데 이는 해당 유흥업소 종업원들이 작성해서 경찰에 제출했다. ‘언니네’ 등 인권단체들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성매수자들 가운데 여수경찰서와 전남경찰청 소속 경찰들도 있다”고 폭로했다. 이에 광역수사대 측은 “(성매수자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해당 경찰은 수사팀에서 철저히 배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여수경찰서의 수사 축소 의혹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성매수자 리스트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해당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2차를 나가면 반드시 손님(성매수자)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 와야 했다고 한다. 휴대폰 번호를 알아오지 못하면 업주에게 벌금을 물어야했을 정도. 종업원들은 이렇게 2차를 나갈 때마다 알게 된 휴대폰 번호를 토대로 성매수자 리스트를 작성했다.
현재 해당 유흥업소는 폐쇄됐고 업소에서 일했던 9명의 종업원들은 현재 광주 인근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은 “현재 병원에 있으며 나머지는 각종 시설에서 따로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종업원들은 지난 10일에도 전라남도 순천에 위치한 전남경찰서 광역수사대동부지부를 찾아 조사를 받았다. 조사는 오후 2시께부터 6시 40분까지 이루어졌다. 문영상 광역수사대장은 “아직 수사 중이라 경과를 말할 수는 없고 곧 보도자료를 통해 브리핑할 계획”이라며 “업주도 소환해 조사했고 성매수자 리스트에 대해서도 조사 중에 있다. 가급적 수사를 빨리 끝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