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투하는 김병현. 최근 그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 ‘쓴맛’을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
올 시즌 초반을 지나면서 이들 두 선수는 극명하게 명암이 갈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 지난 5년 연속 평균 15승 이상을 기록하며 최고 선발 투수의 대열에 다가간 박찬호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6천5백만달러의 ‘메가 딜’을 성사시킨 후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올 시즌 7게임에 선발로 나서 2승3패에 방어율이 10.02로 나쁘다.
반면 김병현은 전년도 월드시리즈 우승팀 애리조나의 든든한 마무리로 역투를 거듭, 첫 올스타전 출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32게임에서 2승 18세이브를 기록하며 방어율 1.28의 발군의 성적을 자랑하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두 선수는 성격적인 면에서 자신들의 투구 동작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정통파 강속구 투수인 박찬호는 오히려 지나치게 완벽하려고 하고, 실수를 겁내는 면이 있다. 반면 잠수함 투수 김병현은 늘 당당한 자신감으로 정면 돌파하는 뚝심을 지녔다. 이런 성격차도 올시즌 두 선수의 명암에 큰 작용을 하고 있다.
박찬호의 경우 부상이라는 악재가 가장 큰 이유지만, 지나친 부담감과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무감 등이 오히려 나쁜 작용을 했다. 자신을 각별히 대해주는 톰 힉스 구단주를 비롯해 자신을 에이스로 데려온 구단에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부담감이 그를 지나치게 서두르게 만들었고, 결국은 부상 악화와 부진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됐다.
▲ 삭발투혼’을 불사르는 박찬호. [대한매일] | ||
또한 다저스 시절 5선발로 시작, 끝까지 2선발에 머물며 온실 속에서 보호를 받았던 것도 이번 부상 악재를 떨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리그를 바꿨다는 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악재가 겹친 셈이었다.
그러나 이제 점차 컨디션과 자신감을 되찾고 있는 박찬호는 7월이나 늦어도 8월이면 제 모습을 다시 찾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 그의 경기력이나 기록들을 살펴보면, 여전히 메이저리그에서 보기 드문 뛰어난 선발 투수이기 때문이다.
김병현의 경우는 지난 ‘폴 클래식(월드시리즈)’에서의 좌절이 오히려 큰 약이 됐다. 평소 자신이 최고의 투수라는 자부심을 갖고, 어떻게 보면 너무 쉽게 메이저리그에 정착해 자만심을 갖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던 김병현에게 월드시리즈에서의 좌절은 많은 깨달음을 가져다 주었다. 그에게 따뜻한 격려와 박수를 아끼지 않은 동료들과 팬들에게도 큰 몫을 돌려야 한다.
박찬호에게는 뒤늦게 찾아온 난관이 김병현에게는 일찍 찾아오면서 오히려 ‘일찍 맞은 매’가 된 셈이다. 만약 박찬호가 같은 좌절을 겪었다면 회복에 조금 더 시일이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만으로 양 선수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박찬호는 누가 뭐래도 메이저리그에서 인정받은 선발 투수로, 이번 고난을 겪고 나면 한걸음 더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김병현은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여전히 후반기의 체력 걱정을 하게 된다. 박찬호만큼 확실히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해지고 겸손해지는 기회가 된다면 오히려 보약이 될 수 있다. 김병현은 자신감을 잃지 않고, 항상 겸허하게 도전하는 자세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두 명의 한국인 투수가 나란히 올스타전 마운드에 서는 날이 올 수 있음은 여전히 실현 가능한 희망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