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와 서장훈은 왜 협상이 결렬됐으며, 또 서장훈은 어디로 갈 것인가. 여기 일부 구단의 고위층이 서장훈을 뽑지 않기로 담합하는 움직임이 포착되는 등 심상치 않은 농구계를 들여다봤다.
서장훈을 잡지 못한 SK는 부담이 있다. 농구는 물론 야구 축구팀까지 통틀어 SK그룹에게는 간판스타였기 때문이다. 전력면에서 서장훈이 차지하는 비중은 새삼 설명이 필요없다.
팀으로서는 연봉부담도 그만큼 높다. 2001∼2002시즌을 기준으로 서장훈은 팀 연봉 총액 10억5천만원 중 31.4%인 3억3천만원을 차지했다. 그것도 공식적인 발표액수일 뿐 ‘플러스 알파’를 고려하면 팀 전력의 50% 이상이라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다.
당연히 SK가 이처럼 절대적인 존재인 서장훈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농구단을 안하면 모를까, 서장훈을 놓칠 수 있느냐”는 여론에 대응할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설마설마 하면서도 농구계에서는 결국 난항 끝에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내다본 것도 이 때문이다.
SK는 일단 결렬의 원인을 “워낙 액수에서 큰 차이가 났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룹 고위층도 놀랄 정도로 엄청난 차이였고, 끝내 격차를 줄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서장훈은 “몸값에 대한 시각차도 있었지만 지난 4년간 SK맨으로 지내오면서 겪은 여러 갈등 요소도 최종 결별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SK가 한국농구연맹(KBL)에 재계약 결렬을 알리면서 제출한 서류에는 구단제시액은 4억3천만원, 서장훈 요구액은 5억원으로 적혀있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연봉은 샐러리캡(팀 연봉 상한제, 2002∼2003시즌 11억5천만원) 탓에 4억∼5억원선으로 추정되지만 정작 협상이 결렬된 이유는 사이닝 보너스, 즉 규정 외의 뒷돈 때문이다. 4년전 입단 당시 10억원이었던 만큼 이번에는 최소 20억원 이상이라는 게 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실제로는 서장훈이 30억원 이상을 요구하고 SK가 20억원이 밑도는 액수를 고집했다는 관측이다. 정확한 금액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현행법(KBL룰)상 불법’인 탓에 밝히지 않고 있다.
서장훈은 ‘4년전 10억원이었다면 지난 3년간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우승, 준우승, 3위를 이끈 자신의 공이 최소한 30억원은 돼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지난해 프로야구의 양준혁이 FA가 되면서 27억원이 넘는 목돈을 챙겼는데, 양준혁보다 팀 공헌도나 전력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자신은 30억원 이상을 받아야 된다는 논리다.
반면 SK는 한 구단의 매각대금이 고작 70억원 수준인 현 프로농구 시장을 고려하면 무리한 액수라고 주장한다. 첫 계약 때의 액수가 과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현실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서장훈이 요구한 총금액이 1년 구단 예산(30∼45억원선)과 맞먹는다는 말을 흘렸다.
▲ 한국농구가 낳은 최고의 센터로 평가받는 서장 훈. 자유계약선수로 풀리면서 거액의 몸값을 놓 고 벌이는 구단들의 신경전 때문에 자칫하면 어 느 팀에서도 뛰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지도 모 르게 됐다. | ||
서장훈에게는 두 가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첫번째는 잘 알려진 최인선 감독과의 불화를 포함한 구단 고위층과의 갈등이다. 서장훈은 언론에 공개할 수 없지만 인간적으로 용납할 수 없을 정도의 수모를 당한 바 있다고 심각성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바 있다.
두번째는 새 둥지만큼은 힘이 있는 주류구단으로 택해 한국 최고의 선수답게 우승도 많이 하고, 은퇴후 계획까지 확실하게 보장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97년 창단한 SK는 모기업이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농구계에 뿌리가 깊지 않아 심판판정과 선수들의 이미지 관리 등에서 많은 오점을 남겼다.
서장훈은 이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었고, 전통이 있고 농구에 대한 확실한 마인드를 갖춘 구단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구단측은 애써 서장훈과의 갈등은 결별 사유가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돈 문제와 함께 그동안 쌓여온 해묵은 감정이 폭발한 게 재계약 불발에 단초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서장훈이 자유계약 시장에 나왔다는 뉴스가 농구계를 뒤흔든 다음날인 6월1일. KBL 단장들의 모임이 있었다. 당연히 서장훈이 화제가 됐다. 문제는 여기서 SK 단장이 “서장훈에게 뒷돈을 줬다”는 양심선언을 했고, 몇몇 단장들이 이에 흥분해 SK에 대한 진상조사는 물론, 서장훈에게 뒷돈을 줘서는 안되는다는 결의를 했다는 것. 더 나아가 공공연히 뒷돈을 요구하는 서장훈을 한국농구계에서 매장시켜야 된다는 격한 발언까지 나왔다. 현 시점에서 서장훈에게 사이닝 보너스를 주지 말자는 것은 사실상 그를 데려갈 팀이 없음을 의미한다.
파장은 조용하지만 거세게 일었다. SK에 대해서는 “필요할 때는 규칙을 어기고, 자신과 관련이 없어지니까 양심선언을 했다”는 비난이 일었고, KBL제도를 악용해 선수들의 몸값을 지나치게 억제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더욱이 서장훈 외에 이상민(전주KCC) 김영만(울산모비스) 등 몇몇 스타플레이어들이 벌써 수년 전부터 테이블 머니를 받아왔다는 점에서 서장훈에게만 엄격한 룰을 적용, 한국 최고의 선수를 매장시키려는 것은 불순한 의도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다급해진 쪽은 서장훈이다. 전 소속구단 SK의 바람잡기와 몇몇 단장들의 담합으로 자신이 정말 어느 구단과도 계약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긴 것이다.
실제로 몇 차례 직간접으로 모비스와 삼성에서 영입의사를 타진해왔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협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러다 6월30일까지 계약하지 않으면 지난해 정인교처럼 ‘코트의 미아’가 될 가능성이 높은 실정이다.
잘못하다가는 월드컵이 끝나는 6월30일 한국 최고의 농구 선수가 오갈 데 없이 실업자로 전락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유병철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