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들로 구성된 미국의 수비진이 느리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황선홍과 박지성이 깊게 침투해서 패스를 받는 장면과 미드필더의 김남일, 유상철이 하프라인까지 넘어와서 수비를 하는 부분 등은 10번 레이나를 꽁꽁 묶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좋은 찬스들이 많았음에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부분은 정말 아쉽다. 설기현이 그 많은 기회에서 한 골만 넣었더라도 경기는 쉽게 풀어갈 수 있었다. 한국팀의 수비진도 상대 공격수들에게 쉽게 뚫리거나 미드필더들이 중간에서 제 역할을 못하는 바람에 몇 차례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다.
특히 수비 숫자가 상대 공격수들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았음에도 한두 명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앞으로 남은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을용이 찬 페널티킥이 불발로 끝난 것은 오늘밤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할 것 같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만약 준비를 하고 있던 홍명보가 킥을 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히딩크 감독의 용병술이 돋보이는 부분은 황선홍과 안정환을 교체한 순간이다. 그러나 계속 슛 찬스를 놓친 설기현을 빼지 않은 부분은 쉽게 납득할 수가 없다. 설기현을 빼고 최태욱을 투입했다면 좀 더 활발하게 경기를 풀어가지 않았을까.
후반 15분 정도를 남겨 놓고 공격수와 수비수들간의 거리가 벌어진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아무리 파워프로그램을 통해 체력을 단련시켰다고 해도 미국 선수들뿐 아니라 우리 선수들도 그 시간엔 집중력이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한 골 먹고 나서 순간적으로 어수선한 플레이를 선보였던 부분과 잦은 패스미스 등도 지적할 부분이다.
오늘 경기는 최근 보여준 대표팀 경기 중 제일 나쁜 내용이었다. ‘고질병’으로 지적된 골 결정력 문제가 다시 심각한 치명타로 부상됐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오늘의 숙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