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에서는 안철수 의원의 외연 확대가 녹록지 않아 보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탈당 명분이 약하고,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 의원들이 신당 합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13일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안철수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던 13일 오전 11시 직전까지도 문 대표 측 연락을 기다렸다고 한다. 혁신 전당대회 수용까진 아니더라도 문재인 대표가 사퇴할 경우 탈당을 재고할 수 있다는 게 안 의원 입장이었다. 안 의원에게 탈당은 최선이 아니라 차선의,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카드였다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안 의원이 과연 탈당할 만큼의 절박함이 있었느냐’, ‘본인조차 망설였는데 누가 뒤따라가겠느냐’ 등의 의문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비록 초선이긴 하지만 안 의원 정도의 무게감을 가진 정치인이 제1야당에서 탈당을 할 땐 좀 더 큰 명분을 가지고 단호하게 움직였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안 의원이 그렸던 최상의 시나리오는 탈당 이후 지난 2012년 정치판을 뒤흔들었던 ‘안철수 신드롬’이 재현되는 것이다. 당시 안 의원은 별다른 조직은 없었지만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무기로 기존의 정당세력과 견줄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안 의원이 그동안 새정치연합 계파 갈등에서 사실상 비주류 측 수장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1야당 울타리에서 뛰쳐나온 현실은 안 의원 측 기대와는 다소 달랐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안 의원 탈당 직후 조사한 ‘안철수 신당’ 지지율은 16.7%로 새누리당(37.6%)과 새정치연합(25.2%)에 이은 3등이었다. 보기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세력화’에 한계가 있다는 게 권대우 정치평론가의 설명이다.
“안철수 신당으로 인해 중도층 지지율이 겹치는 새누리당은 다소 하락했지만 새정치연합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야권에선 안철수의 새정치보다는 분열을 우려하는 민심이 더 크다는 얘기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표가 새정치연합 쪽에 더 쏠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의 신당 지지율로는 안 의원이 세력을 모으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신당 참여를 놓고 고민하던 새정치연합 비주류 의원들 대부분 관망 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 역시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20일 현재 문병호 유성엽 황주홍 김동철, 단 네 의원만이 안 의원 뒤를 이어 탈당했다.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송호창 의원과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안 의원 지분으로 공천을 받은 윤장현 광주시장은 이미 새정치연합 잔류를 선언했다. “탈당파가 최대 30명에 달할 것(문병호 의원)”이라던 주장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치권에선 많아야 5명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김한길계는 내부적으로 갑론을박 중이지만 탈당보다는 잔류 쪽이 우세한 견해인 것으로 전해진다. 안철수 의원과 김한길 의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특히 10여 명 안팎으로 추산되는 김한길계의 스탠스는 안 의원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김 의원은 현재 비주류 측 막후 전략가로 꼽히고 있다. 야권 정계개편에 있어서 키를 쥐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라는 얘기다. 김 의원은 2007년 정계개편 때도 23명 의원들과 열린우리당을 집단 탈당한 바 있다. 당초 안철수 신당 합류를 위해 탈당이 유력했던 김한길계는 내부적으로 갑론을박 중인 모습이다. 탈당보다는 잔류 쪽이 우세한 견해인 것으로 전해진다.
김한길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익명을 요구하며 “(탈당은) 안 의원 개인의 선택이다. 우리와 사전에 논의하지도 않았다. 굳이 따라 나갈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내부에서 친노와 치열하게 싸우는 게 정치적으로 합당한 수순이라고 본다”면서 “새정치연합에서 총선 공천이 힘들다고 생각되는 의원들 정도만이 합류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이들을 받아들이는 게 안 의원에겐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철새 집합소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탈당 전후 물밑에서 현역 의원은 물론 외부 인사 영입에 공을 들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엔 박원순 서울시장, 손학규 전 상임고문, 김부겸 전 의원 등 야권은 물론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 여권(성향) 인사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끈다. 특히 안 의원은 박 시장과 손 고문, 유 의원을 스카우트 영순위로 꼽았다고 한다. 모두 차기 대권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정치인들이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안 의원은 여야를 떠나 중도를 지향하는 새로운 당을 제3지대에서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새누리당 의원을 포함해 광범위하게 접촉했다”며 “그런데 몇몇은 안 의원 만남 요청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안 의원이 탈당을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다. 지금 안 의원은 본인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던 것처럼 그야말로 ‘혈혈단신’이나 다름없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외연 확대에 차질을 빚자 안 의원 진영에서도 불안해하는 기류가 퍼지고 있다. 또 일각에선 그동안 안 의원의 문제점으로 여러 번 지적됐던 의사소통 문제가 탈당 과정에서 반복됐다는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안 의원 거취에 대해 좀 더 심사숙고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는데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신당에 대한 지지율이 예상과는 달리 10%대에 그칠 뿐 아니라 현역 의원들의 후속 탈당이 부진하자 안 의원 리더십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앞서의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이런 말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 의원이 탈당 기자회견에서 나침반과 지도는 없지만 새누리당 세력을 막겠다는 목표는 분명하다고 했다. 그런데 리더가 나침반과 지도도 없이 우리를 어떻게 이끌고 간단 말이냐. 또 17일 전주 방문 때는 인재 영입 기준으로 부패하거나 막말하는 사람, 국민에 상처를 주거나 남을 배척하는 사람, 기득권이나 힘 있는 사람 편에 서는 사람을 제외한다고 했다. 너무 모호하다. 이러다 보니 ‘안 의원 본인도 새정치가 뭔지 모르는 것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측근이 안 의원을 떠났는데 지금도 그런 상황과 유사하다.”
정치권에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안 의원 입지가 점점 좁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야권 단일화에 대한 압박이 거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재광 정치평론가는 “일여다야 구도가 된다면 안철수 신당은 성공이다. 그래야 단일화 국면에서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안철수 신당이 있더라도 새누리와 새정치연합의 일대일 구도가 유력하다. 그만큼 안철수 신당 전망은 어둡다”고 주장했다.
또 일각에선 안 의원이 탈당 전 문 대표에게 내걸었던 10대 혁신안 중 하나인 ‘원칙 없는 선거연대 반대’가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총선 과정에서 안철수 신당이 새정치연합을 비롯한 다른 야권 신당과 손을 잡을 경우 비난의 화살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 의원 측 또 다른 관계자는 “안 의원이 모처럼 스포트라이트도 받고,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런데 탈당파 세력과 호남 맹주 자리를 놓고 싸움만 실컷 하다 결국은 새정치연합으로 복귀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