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900는 기존의 고유명사식 작명법을 따르지 않았다. 더불어 내외관의 럭셔리함을 통해 세계적인 명차와 겨루겠다는 현대차의 야심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독일명차와 겨루기 위한 기술개발은 과제로 남아 있다. 사진은 지난 19일 열린 EQ900 발표회 현장. 발표회장에는 정몽구 회장과 황교안 총리 등이 참석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EQ900를 보면, 기존 현대차의 관행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드러난다. 일단 ‘에쿠스’ ‘그랜저’ ‘쏘나타’와 같은 차명을 버리고 숫자만으로 간결하게 라인업을 구성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의 고급차들은 굳이 고유명사로 이름을 짓지 않는다. 그저 7시리즈, S-클래스, A8처럼 무심하게 숫자로 표현한다. 이들에 비해 브랜드가 약한 메이커들은 ‘골프(폭스바겐)’ ‘캠리(도요타)’처럼 히트상품을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제품군까지 브랜드파워를 넓히는 전략을 추구한다.
# 고급스러움은 명차에 뒤지지 않아
최근 2~3년 이내에 기함의 세대교체를 끝마친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BMW는 출시와 더불어 세계 최초, 세계 최고의 기술을 선보이며 화제를 끈 바 있다. EQ900는 ‘후측방 충돌회피 지원 시스템(SBSD·Smart Blind Spot Detection)’을 국산차 최초로 적용했다. 이는 후측방 사각지대 차량을 발견하지 못하고 차선을 변경하려다 사고가 날 듯하면, 미리 차선 반대편 바퀴의 브레이크를 잡아서 차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이다.
국산차 최초로는 ‘부주의 운전 경보 시스템(DAA·Driver Attention Alert)’도 있다. 이는 운전대의 조작 각도 및 강도, 그리고 차선 내 차량 위치 등의 주행패턴을 종합해 운전자의 운전 위험 상태를 5단계로 표시하는 것이다. 기존 졸음운전 방지 기능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다만 이러한 기능들은 ‘신기술을 장착해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마지못해 내놓은 듯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메르세데스-벤츠 뉴 S-클래스의 경우는 주행 중 센서로 전방의 노면을 감지해 서스펜션을 최적으로 조절하는 기능을 선보였고, 그보다 2년 뒤 나온 BMW 뉴 7시리즈는 A필러에서 C필러로 이어지는 루프라인 내부에 CFRP(수지강화탄소섬유) 소재를 적용해 충돌안전성과 저중심을 동시에 추구하는 아이디어를 선보인 바 있다.
그럼에도 ‘엔지니어의 시각’에서 벗어나면 EQ900는 최고급 세단이 추구하는 럭셔리의 진수를 보여준다. 자동차는 엔진룸 내부에서 극한의 폭발이 일어나고 있지만, 실내에서는 거실 소파에 무심하게 앉아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시트의 질감이 중요하다. EQ900에서는 이탈리아 명품 가죽 가공 브랜드인 ‘파수비오(Pasubio)’사와의 협업으로 최고급 소재를 개발했고, 정교한 스티치는 오스트리아의 프리미엄 시트 브랜드인 ‘복스마크(Boxmark)’사와 공동 개발했다.
이미 많은 최고급 ‘쇼퍼 드리븐 카(Chauffeur Driven Car·기사가 있는 차)’에서 선보인 2열 퍼스트 클래스급 가변 시트 역시 적용됐다. 이런 차들의 ‘사장님석(2열 오른쪽)’에 앉아 시트를 최대한 눕히고 잠을 청하면 마치 안방 침대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CEO(최고경영자)가 하루에 4시간밖에 자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사실 좋은 차를 타면서 치는 허풍인지도 모른다.
실내의 리얼우드 내장재 또한 꼼꼼하게 신경 썼다. 일반적인 자동차에서도 우드트림을 많이 보기에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기겠지만, 대부분은 플라스틱에 무늬를 입힌 것이다. 국산차에서 리얼우드를 쓰는 차는 기존 에쿠스에 이어 EQ900뿐이다. 나무를 얇게 슬라이스 한 뒤 모양을 내고 이를 붙이는 작업은 굉장히 섬세해야 한다. 모두 수작업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리얼우드 자체만으로도 수백만 원의 비용이 추가된다. 따라서 1억 원이 넘는 고가 차량에만 적용할 수 있다.
EQ900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최상급 베니어를 수매한 뒤 독일의 염색 기술과 이탈리아의 성형 기술을 사용했다. 나파 가죽시트와 리얼우드는 EQ900의 세 가지 라인업(3.8 GDI, 3.3 T-GDI, 5.0 GDI) 모두에서 1억 원이 넘는 최고급 사양인 ‘프레스트지’급만 적용됐다. 최고급 차는 기계적 성능에서도 최고를 추구하지만, 감성적인 부분도 이처럼 최고를 추구한다. 최고의 가죽 가공기술, 최고의 박음질 솜씨, 최고의 가구(리얼우드) 기술 등 명품 수준의 공예솜씨가 동원되는 것이다.
# 독일차와 겨룰 기술 개발은 과제
기술적인 면에서 EQ900를 눈여겨볼 부분은 현대차 최초로 3.3ℓ 터보엔진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기존 현대차 터보엔진은 2.0ℓ가 최대 배기량이었다. 기존 제네시스를 몰아보면 3.3ℓ 자연흡기 직분사(GDI) 엔진도 꽤 괜찮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3.3ℓ T-GDI 엔진은 최대토크 52.0㎏·m(최대출력은 370마력)로 5.0ℓ 자연흡기 엔진의 53.0㎏·m(최대출력 425마력)와 맞먹는다. 3.3ℓ 터보엔진은 효율성이 좋지만 힘을 짜내듯 발산하고, 5.0ℓ 자연흡기는 넉넉한 힘과 8기통의 우렁찬 엔진음이 매력적이다. 다만 저속에서 정속주행 할 경우는 너무 조용해서 엔진 사운드의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 뉴 S-클래스는 4.7ℓ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을 적용해 최대토크가 71.4㎏·m, BMW 뉴 7시리즈는 4.4ℓ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에서 66.3㎏·m의 최대토크를 구현하는 등 무시무시한 성능을 발산한다. 물론 7170만 원부터 시작하는 EQ900와 1억 2000만~1억 3000만 원(국내가격 기준)대에서 시작하는 S-클래스, 7시리즈와는 가격차가 크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현대차뿐만 아니라 렉서스, 인피니티 등 일본 고급 브랜드들도 초고성능보다는 실용적인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차가 고급차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이상 효율성을 넘어서는 고성능 엔진 라인업을 구축하는 것도 하나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양산차 메이커들은 매출이 정체되면 개도국에 진출해 저렴한 차를 파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지만, 고급차 메이커들은 더욱 비싼 차를 내놓아 부자들의 주머니를 노린다. 이런 ‘스피릿(Spirit)’의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우종국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