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렛츠런파크서울에서 열린 그랑프리 대회에서 볼드킹즈(맨 안쪽)가 금포스카이를 간발의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초반엔 예상했던 대로 감동의바다가 먼저 치고나왔다. 11번 금포스카이가 발빠르게 따라붙으며 외곽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는데, 이때 뜻밖에도 최외곽에 있던 클린업조이가 생애 최고의 스타트능력을 선보이면서 순식간에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동안 출발문제가 고질적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늦출발이 잦았던 마필이라 섬뜩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3위 안에는 무조건 오겠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일코너에 접어들자 세 마필 간에 어느 정도 순위가 가려지기 시작했다. 감동의바다가 앞으로 쑥 나섰고 그 뒤를 2선에서 바짝 붙어온 6번 볼드킹즈와 외곽에서 조금 밀린 11번 금포스카이가 따라가고, 16번 클린업조이는 조금 더 밀려나 9번 간다이와 나란히 달리게 됐다. 우승후보인 10번 트리플나인은 3선에서 따라가다 4선으로 밀렸다. 2코너에 진입하자 8번 클린업천하가 거리를 좁히면서 같은 집 마필인 16번 클린업조이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10번도 조금 거리를 좁혔다.
뒷직선주로가 끝나는 3코너에 접어들자 4번 언비터블이 무빙으로 2선에 가세하면서 경주는 불꽃을 튀었다. 4코너에 접어들자 11번 금포스카이가 힘을 내면서 2번 감동의바다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그 뒤를 6번 볼드킹즈와 10번 트리플나인이 2선을 형성했고, 3선에선 16번 클린업조이가 힘을 비축하면서 서서히 탄력을 붙이고 있었는데, 출발이 늦었던 15번 치프레드캔이 바깥쪽에서 일순간에 따라붙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마지막 직선주로. 모든 마필들이 젖먹던 힘까지 동원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질주했다. 2번 감동의바다가 더 이상 힘을 내지 못하고 서서히 뒤로 밀려났고, 6번 볼드킹즈와 11번 금포스카이 두 마필 간의 우승다툼이 시작됐다. 한때 금포스카이가 조금 앞서는 듯 보였지만 이는 카메라 각도가 만든 착시현상이었을 뿐 볼드킹즈는 내내 근소하게 앞서면서 막판까지 1위를 지켜냈다. 가운데로 치고나온 클린업조이가 3위, 트리플나인이 4위, 클린업천하가 5위였다. 치프레드캔이 6위였다. 치프레드캔은 초반에 제어하고 너무 뒤로 처져있다가 급격하게 거리를 좁히느라 뒷직선과 3~4코너 구간에서 무리하게 가속을 한 탓인지 장기인 뒷심을 살리지 못했다. 출발을 아주 잘한 경주였기 때문에 너무 뒤로 처진 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게이트가 너무 불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기도 했다.
한편 4번 언비터블은 중반에 무빙한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최후미로 처져 꼴찌를 했다. 참고로 언비터블은 인코스로 자리잡은 뒤 힘 안배를 잘할 때만 뛰어주는 말이다. 그랑프리 대회에서 욕심을 부려본 것으로 보였는데, 입상까지 기대한 편성은 아니었지만 인코스를 포기하고 나온 것은 너무 모험이었다는 분석이다.
이날 경주는 주로가 다습했고 그에 따라 기록도 좋았기 때문에 뒷선에서 전개하는 말들이 과연 추입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이론이 분분했었는데, 전문가들은 그래도 대상경주이고 거리가 2300미터라 따라가는 말들이 유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지만 결과는 역시 앞선이 유리했다.
우선 스타트가 상당히 빨랐고, 그 후의 가속도 조금 무리스럽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다. 지난해도 SF타임이 13.6으로 빠르게 전개됐는데 올해는 13.5초였다. 3코너, 4코너까지도 페이스가 흐트러짐 없이 달려 앞선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주로가 가벼워서인지 선입권 말들이 끝까지 잘 뛰어줬다. 기록은 지난해 경부대로가 세운 2분29.0보다 1.6초나 빠른 2분27.4초가 작성됐다. 이 거리 최고기록보다는 0.4초 부족했지만 주로상태와 부담중량, 우승마의 마령을 생각하면 사실상 최고기록에 버금가는 기록이라 할 만했다.
혈통상으로도 주목할 만한 경주였다. 역시 2300미터 경주는 장거리 혈통이 유리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메니피 자마들이 2000미터에서도 상대가 강하면 판판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일년에 한두 번 치러지는 2300미터 경주는 사실 혈통적 기대치가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장거리 경주도 한 달에 한 번씩은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입상한 마필들의 혈통적인 거리적성을 살펴보자. 우승마인 6번 볼드킹즈는 부마인 어플리트익스프레스(Afleet Express)도 2000미터까지 잘 뛰었던 마필이지만 조부마인 어플리트알렉스(Afleet Alex)는 2400미터까지 우승했던 말이다. 모계는 비록 장거리에서 활약한 적은 없지만 장거리 유전인자를 충분히 갖고 있는 혈통이라 앞으로 더 뛰어줄 가능성이 높다. 이번 경주가 인코스 최적전개 후에 얻은 우승이라 평가절하할 전문가들도 있지만 마령 3세의 어린 말이 최강자들을 만나서 처음으로 뛰는 2300미터 장거리경주를 이겨냈다는 것은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2위를 한 금포스카이는 비카의 자마이고 모계도 특별히 장거리 인자가 없어 거리적성면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있겠지만 딱 한마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실전검증이 최고’라는 전가의 보도다. 이 말은 그동안 경주거리와는 상관없이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거나 한 번 쉬어가는 타이밍을 잡았을 때는 늘 막판 대시가 좋았다. 게다가 이번 경주는 주로상태가 다습했기에 선두권에서 질주했지만 체력 소모가 상대적으로 덜 했다. 좋은 기수가 타고 힘 안배가 가능한 레이스에선 강자들에게 언제든지 일격을 가할 수 있는 마필로 분류된다.
3위를 한 클린업조이는 예상평에서도 자세히 언급했지만 풀핏(Pulpit)의 손자마이기도 하지만 모계 쪽의 거리적성도 워낙 길고, 특히 모마가 블랙타입 경주 우승마를 포함, 모든 자마들이 잘 뛰었던 만큼 기대치는 훨씬 더 높게 가질 수 있다. 더군다나 이번 경주에선 그동안의 고질이었던 출발불량 문제도 말끔히 해결된 모습을 보여 한층 고무적이다.
최고 인기마였지만 4위에 그친 트리플나인도 과소평가해선 안될 말이다. 4위가 그냥 4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12전의 실전경험을 갖고 있는 마필이 2300미터 첫 출전인 데다 전개가 꼬인 상황에서도 큰 거리차 없이 끝까지 선전한 것이다. 한참 성장기에 있는 3세마인 데다 혈통적으로도 장거리형에 속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뛰어줄 구석이 많다. 특히 모마인 어리틀포크는 거의 모든 자마들이 상위군에서 뛰었거나 현역으로 있어 안정감이 돋보이는 혈통이다.
김시용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