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피 탈출 실패 바이오 테마주 등이 상승 랠리를 이끌었지만 올해 증시도 결국 ‘박스피’를 탈출하지 못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삼성전자 지난 3월 1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에서 삼성 ‘갤럭시S6’가 공개됐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S6는 ‘엣지’ 모델에 양 측면에 곡면 디스플레이를 채택, 눈길을 끌었다. 2014년 한때 100만 원이 위태로웠던 주가는 3월 20일 151만 원까지 치솟는다. 하지만 4월 20일 출시 이후 판매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8월 말 주가는 다시 103만 원까지 추락한다. 반도체부문의 호조와 11조 원대의 자사주 매입 등 주주정책 강화로 주가는 11월 들어 130만 원대를 회복하지만,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또 다시 악재가 됐다.
스마트폰 부문에서 성장성이 없다고 판단한 외국인들은 삼성전자를 더 이상 ‘한국의 안전주식’으로 인정하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 12월 4일 외국인 비중 50%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올 들어 15일까지 외국인이 판 삼성전자 주식은 3조 7673억 원어치다. 올 들어 외국인이 코스피에 순매도한 금액 2조 9186억 원보다 많다. 그 어떤 종목보다 삼성전자를 집중적으로 팔았다는 뜻이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물산 사옥. 연합뉴스
합병 발표 직전인 1분기 말 기준 자산은 제일모직이 약 8.4조 원, 삼성물산이 29.6조 원이다. 순자산(회사를 당장 청산했을 때 가치)은 각각 4.7조 원, 13.9조 원이다. 지난해 매출도 제일모직이 5.1조 원, 삼성물산이 28.4조 원이다. 합병 발표 직전인 지난 11월 22일 기준 시가총액이 제일모직 22조 원, 삼성물산 8조 8000억 원이다. 어떻게 봐도 삼성물산이 훨씬 큰 회사다. 그런데 양사 간 합병비율을 보면 삼성물산 주식 1주에 제일모직 주식 0.35주를 주는 방식이다.
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외국인과 소액주주들을 규합하며 주가인 시가 외에 프리미엄을 얹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삼성은 시가가 기준인 ‘법대로 하자’며 맞섰다. 엘리엇이 국부를 노리는 악덕 자본이라는 역공도 펼쳤다. 결국 팽팽했던 양측의 지분대결은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삼성 손을 들어주면서 승부가 갈렸다. 이 과정에서 삼성은 주주들을 가가호호 방문하고, 전국적인 방송광고를 내보이는 등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주총에서 합병이 가결된 후 삼성물산 주가는 급락했고, 양사가 합병한 후에도 통합 삼성물산 주가는 줄곧 내리막을 걸었다. 삼성물산 소액주주와 국민연금 등은 막대한 손해를 봤고, 엘리엇도 투자차익을 거두지 못한 채 지분을 철수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왼쪽), 신동빈 회장
신 회장은 신 총괄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경영에서 배제시키고, 호텔롯데 주주사인 L투자회사의 이사회를 장악했다. 또 일본 롯데홀딩스를 동원해 롯데제과 지분 매집에도 나섰다. 롯데제과는 호텔롯데와 함께 그룹 내 최대 회사인 롯데쇼핑의 경영권을 좌우하는 대주주다.
이 롯데 사태로 그룹 상장사 주식 대부분이 급락했지만, 지분경쟁이 붙은 롯데제과는 12월 들어 주가가 급반등하며 사태 발생 전 수준을 넘어섰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과 신 전 부회장 측도 계열사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데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를 여전히 통제하고 있어 최종 승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 6월 25일 정성립 사장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해양플랜트 손실분을 2분기 실적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언급한다. 20일 뒤인 7월 15일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당국이 2분기 3조 원대 적자 가능성을 인정했고, 1만 2000~1만 3000원대이던 주가는 5000원대로 반 토막이 난다.
지난해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이미 플랜트부문에서 대규모 손실을 봤지만 대우조선만은 꾸준히 신규수주에 성공하며 남다른 모습을 보였기에 시장의 실망은 더 컸다. 10월 말 산업은행이 4조 2000억 원의 자구안을 발표했지만 주가는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여의도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대우조선 회사채와 기업어음에 투자했던 금융기관들이 쓴맛을 봐야 했다. 특히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된 산은은 그동안 애지중지 아꼈던 증권업계 1위 대우증권을 매물로 내놔야 했다. 현재 대우증권은 KB금융그룹과 미래에셋, 한국투자금융지주 등이 인수경쟁을 벌이고 있다. 결과에 따라 증권은 물론 금융업계에 판도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빅딜이다.
폴크스바겐 그룹 계열의 브랜드인 아우디 일부 차량에도 배출가스 저감 장치 조작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시내의 한 아우디 매장. 연합뉴스
20만 원선이 위태로웠던 LG화학 주가는 반등, 최근 33만 원을 넘어서고 있다. 삼성SDI 역시 7만 원대까지 추락했던 주가가 12만 원선을 석 달여 만에 회복했다. 특히 양사 주가는 저유가에 따른 석유제품 원가하락과, 삼성의 자동차 전장사업 강화 등과 맞물려 더욱 탄력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금호산업 9월 18일 금호산업 최대주주인 채권단은 보유지분을 7228억 원에 박삼구 회장에게 넘기기로 결정한다. 박 회장이 이를 9월 23일에 수락한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로 그룹의 지주회사 격이다. 2010년 1월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지 5년 9개월여 만에 박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되찾는 순간이다.
박삼구 회장
한국항공우주 지난해 하반기부터 꿈틀대던 한국항공우주 주가는 올 들어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차기 전투기(F-X) 도입 사업(3차)에서 록히드마틴사의 F-35A로 기종이 선정되고 한국항공우주가 한국 내 사업자로 뽑혔기 때문이다. 올 8월 주가는 한때 10만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런데 9월 미국 측이 F-35 핵심기술 이전을 거부했다. 정부는 F-35 도입과정에서 확보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형 차기 전투기(F-X)를 개발할 예정이었다. 만약 기술이전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한국항공우주의 일감이 없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주가는 6만 원대로 급전직하했다. F-35 도입 계획이 철회되지 않고, 미국 측이 일부 핵심기술을 이전해주기로 하면서 주가는 빠르게 회복됐지만 한국형 차기 전투기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은 남아 주가는 8만 원선에서 답보중이다.
내츄럴엔도텍 4월 22일 한국소비자원은 시중에 유통 중인 32개 백수오 제품 중 진짜 원료 사용 제품 단 3개에 불과하다고 발표한다. 뒤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같은 검사결과를 내놓고, 4월 30일에는 금융감독원이 내츄럴엔도텍 임직원 미공개정보 이용 주식매매를 조사한다. 2014년 2만 7000원에서 5만 5000원으로 두 배 넘게 올랐던 내츄럴앤도텍 주가는 이 사건이 터지기 직전 9만 원선까지 넘어선 상태였다.
사건이 터지자 주가는 급락했고, 검찰이 수사에 들어간 5월에는 8550원까지 주저앉으며 10분의 1토막이 났다. 결국 내츄럴엔도텍이 고의로 가짜 백수오를 판매한 혐의가 없음이 드러나고, 회사 측도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면서 주가가 3만 원대까지 회복되지만 실추된 이미지를 만회하지는 못했다. 10월 식약처가 주요 경영진을 허위광고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주가는 다시 2만 원대로 주저앉았다.
한미약품 올 한 해 주식투자자들의 승부는 단 한 종목, 한미약품에 의해 갈렸다. 3월 초만 해도 10만~11만 원이던 주가는 11월 87만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당뇨 등 지속적인 약물 투여가 필요한 환자에게 장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도록 만든 바이오 신약 덕분이다. 한미약품은 조 원 단위 기술수출 계약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올해 최고의 주식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회사 내 연구원이 이 같은 정보를 먼저 증권사에 유출했고, 펀드매니저들까지 연루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결국 검찰이 수사가 시작돼 관련자들을 기소한 상태다. 또 총수일가가 주식증여 과정에서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사실까지 국세청에 적발되면서 다시 한 번 체면을 구겼다. 한미약품 주가는 12월 들어 고평가 논란 등으로 64만 원 아래로까지 떨어졌다.
바이오 테마주 셀트리온은 연중 내내 높은 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인천시 연수구에 위치한 셀트리온 본사. 연합뉴스
이들 모두 다국적 제약사 등을 통해 글로벌 매출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생산능력도 확대되고 있어 새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많다. 다만 시가총액이 셀트리온 9조 원, 메디톡스 2조 7000억 원, 바이로메드 2조 3000억여 원으로 회사 규모에 비해 상당히 높아져 있어 밸류에이션(가치평가) 부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