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LG 트윈타워, 삼성전자 사옥, SK그룹 본사 사옥. 재계는 연말 인사에서 능력있는 CEO를 주력사업에 배치하는 ‘선택과 집중’ 트렌드를 보여줬다.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11월 26~27일 LG그룹이 2016년 정기 임원인사를 실시한 것을 시작으로 주요 대기업들의 임원인사가 이어졌다. 예년 같으면 그룹 안팎으로 축하 분위기가 물씬 풍겼겠지만 올해는 사정이 판이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올해 인사를 통해 승진한 임원도 있지만 옷을 벗은 임원이 상당수여서 다른 때보다 우울하다”며 “자리 이동도 잦아 임원들의 이동에 따라 직원들의 보직이 변경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권영수 부회장(왼쪽), 한상범 부회장
지난 4일 실시한 삼성그룹은 더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에서 처음 실시하는 임원인사로 관심을 모은 올해 삼성그룹 임원 승진자는 모두 294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보다 무려 59명이나 줄었으며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 단행한 2009년 임원인사 이후 최소 규모다.
특히 올해 임원인사를 통해 삼성그룹은 승진한 임원보다 옷을 벗은 임원이 더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올해 인사 시즌은 어수선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삼성 한 계열사 직원은 “지난해 연말만 해도 승진이니 상여금이니 기대하는 직원이 많았는데, 올해는 구조조정이다 사업재편이다 해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다른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4대그룹 중 SK만 유일하게 올해 임원 승진자가 지난해보다 늘었다. SK그룹의 올해 임원 승진자는 모두 137명으로 지난해 117명보다 20명 늘었다. 사상 최대 승진자를 배출한 2013년 141명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SK그룹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과 SK하이닉스 실적 호조에 따른 것”이라면서도 “전체 임원 승진자 수는 지난해보다 늘었지만 신규 임원 선임은 줄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SK그룹 올해 임원인사에서는 SK이노베이션 계열에서 33명, SK하이닉스에서 19명의 승진자가 나와 전체의 3분의 1이 넘었다. 임원 신규 선임자는 지난해 87명에서 올해 82명으로 줄었다.
올해 대기업 임원인사의 또 하나 특징은 ‘선택과 집중’이다. 이는 최고경영자(CEO)들의 자리 이동과 관련이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다보니 그룹의 미래 주력사업과 신수종사업,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능력 있는 CEO들을 보내 힘을 실어주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LG그룹은 임원인사를 통해 권영수 부회장을 승진과 함께 LG유플러스의 새 사령탑으로 기용했다. 권 부회장은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을 거치며 가는 계열사마다 당대 최고 회사로 성장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이다. 특히 지난 4년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사장)을 맡으며 LG화학을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거듭 강조하는 ‘시장 선도 기업’으로 발전시켰다.
용퇴 의사를 밝힌 이상철 전 LG유플러스 부회장의 자리를 권 부회장으로 채운 까닭은 LG그룹이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맞아 LG유플러스를 차세대 핵심 계열사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LG그룹은 이밖에 박종석 LG전자 최고기술자문(CTA) 사장을 LG이노텍 대표이사 사장으로, 김영섭 LG유플러스 CFO(최고재무책임자) 부사장을 LG CNS 대표이사 사장으로, 이웅범 LG이노텍 사장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 사장으로 이동시켰다. 재계 고위 인사는 “LG그룹 임원인사는 LG가 향후 전지를 비롯한 자동차부품과 사물인터넷 분야를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고한승 사장(왼쪽), 전동수 사장
전 사장은 지난 2년간 삼성SDS 대표를 맡으면서 삼성SDS 상장, 삼성SNS와 합병 등을 통해 삼성SDS의 기업 가치를 높였다. 뿐만 아니라 개인 최대주주 이재용 부회장에게 후계구도를 위한 발판을 다진 인물이다. 전 사장을 의료기기사업부장으로 이동시킨 것은 바이오사업과 함께 향후 ‘이재용 체제’의 미래 삼성이 중요시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대변한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8월 경영에 복귀한 후 첫 인사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 SK그룹 임원인사는 ‘안정 속 세대교체’로 요약된다. 새로 임원으로 승진한 82명 중 48명이 40대로서 59%를 차지한다. 지난해 48%보다 40대 비율이 높아진 것. 그러나 대부분 CEO들은 유임됐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총수 부재에도 CEO들이 경영을 잘 한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 적자를 기록한 SK이노베이션은 올해 2조 원대의 흑자가 예상되고 있으며 SK하이닉스의 실적도 지난해에 이어 계속 좋았다. SK그룹의 내년 주력사업은 여전히 정유, 반도체, 통신이라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앞서의 재계 고위 인사는 “올해 대기업 임원인사의 특징 중 하나는 핵심 인물들의 주력사업 전진배치”라며 “각 기업이 새해 사업과 경영, 먹잇감을 어디서 찾는지 보여주는 인사”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오너일가 움직임 젊은 후계자들 ‘전진, 앞으로!’ 대기업들의 연말 임원인사 때 늘 주목받는 부분 중 하나가 그룹 후계자와 오너 일가의 움직임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구광모 ㈜LG 상무 등 이른바 4대그룹 ‘황태자’들의 승진과 이동은 없었으나 재계 순위 10위권 안팎 대기업들의 후계자들의 움직임은 활발했다. 정기선 전무(왼쪽), 김동관 전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역시 상무 승진 1년 만에 지난 6일 전무가 됐다. 지난 1년간 태양광사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승진 인사인 한편 한화그룹의 주력사업과 후계구도가 엿보이는 인사이기도 하다는 평가다. 김 회장의 차남 김동원 부장은 한화생명 전사혁신실 부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화생명에 부실장 자리가 생긴 것은 처음이다. 삼성그룹에서는 이서현 사장이 패션부문을 도맡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사장은 비록 승진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패션부문을 함께 맡고 있던 윤주화 사장이 사회공헌위원회 사장으로 이동하면서 이 사장 ‘원톱’ 체제를 갖췄다. 이 사장은 겸직하던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 사장직까지 버리고 자신의 전공인 패션 부문에 올인하기로 했다. 이밖에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장남 허윤홍 GS건설 전무, 정유경 신세계그룹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장남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 등 오너 후계자들의 승진이 잇달았다. 특히 정유경 사장은 부사장 승진 후 6년 만에 사장 자리에 올랐으며 이규호 상무는 부장에서 올해 임원으로 선임됐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