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의 대권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안철수 신당’이 야권의 주도세력을 교체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안철수 의원이 목표로 내건 100석 달성도 지금으로선 허황돼 보인다. 하지만 ‘안철수 대망론’을 넘어 정권교체 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복안은 마련됐다. 코드명은 ‘결선투표’. 추진세력은 안철수 독자신당파. 시기는 내년 제20대 총선 직후. 명분은 거대 양당체제 타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을 ‘담합 정당’으로 규정한 뒤 한국 정치의 업그레이드 모델을 제시한다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는 지난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12년 대선 전후로 불었던 ‘안철수 현상’을 복원할 수 있다는 전략적 셈법이 깔렸다. 안철수 신당의 독자세력화부터 대권 탈환까지, 이 모든 전략에 친노(친노무현)계 이해찬 의원과 더불어 야권 최고 전략가이자 킹메이커인 김한길 의원이 개입했다는 말도 나온다.
안철수 의원이 다당제 정착을 위해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돌고 있다. 지난 12월 14일 안철수 의원이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10단지 경로당을 방문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전선은 만들어졌다. 안 의원은 선도 탈당을 통해 인물 구도를 명확히 그었다. 야권 발 정계개편의 변수인 범야권 지지층 경쟁구도를 ‘문재인 vs 안철수’로 단순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른바 ‘친노계=낡은 진보’, ‘안철수 신당=합리적 진보+알파’다. 알파에는 성찰적 보수를 비롯해 중도세력까지 포함하는, 이른바 외연확장 전략이 담겼다.
‘더 이상 철수는 없다’며 ‘강철수’의 면모를 보여준 그는 탈당(12월 13일)한 지 일주일 만인 지난 21일 ‘내년 2월 창당’을 골자로 하는 신당 프로젝트를 띄웠다. 이는 야권의 대규모 탈당인 ‘1월 빅뱅설’과 맞물리는 지점이다. 새정치연합 공천 내홍이 극에 달하는 2016년 신년 초 사실상 독자세력 추진을 마무리하겠다는 얘기다.
안철수 독자세력화 전략은 맞아들어가고 있다. 안철수 발 탈당으로 신당은 ‘컨벤션효과(정치적 이벤트 이후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를 보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2015년 12월 14∼18일까지 5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753명을 대상(95% 신뢰수준에서 ±1.9%포인트)으로 차기 총선 때 지지할 정당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새누리당 38.2%, 새정치연합 25.7%, 안철수 신당 16.3% 등의 순으로 답했다. 정의당은 5.8%, 천정배 신당(국민회의)은 1.3%로 집계됐다. 무당층은 9.1%였다.
안철수 신당을 뺀 주간(12월 셋째 주) 정례조사(95% 신뢰수준에서 ±1.8%포인트)에선 새누리당 40.2%, 새정치연합 29.2%, 정의당 5.7%로 조사됐다. 새누리당은 전주 대비 2.1%포인트 하락한 반면, 새정치연합은 2.4%포인트 상승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새누리당의 40% 붕괴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안철수 신당을 포함할 경우 새누리당 정당 지지도는 대체적으로 30% 후반에 머물렀다. 이는 새누리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했던 중도보수층이 이탈한 결과로 분석된다. 다른 하나는 안철수 탈당 이후 새정치연합 지지도 역시 상승세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안철수 신당을 포함할 땐 새정치연합 지지도가 다소 빠졌지만, 친노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안 의원의 탈당으로 유권자 지지층 분화가 ‘보수(새누리당) vs 중도(안철수 신당) vs 진보(새정치연합)’로의 재편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해석도 나온다. 안철수 신당이 중도층 표상으로 자리매김할 경우 야권 분열을 뛰어넘는 이념적 분화를 꾀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새정치연합의 비노계 관계자는 “안철수 신당으로 여야 정치권에 ‘메기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이다. 메기효과란 미꾸라지만 있는 서식지에 메기 한 마리를 집어넣으면 생존 위기에 처한 미꾸라지들이 움직임을 빠르게 하면서 생기를 잃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안철수 신당 지지도가 내년 총선 때까지 20∼25% 안팎을 유지한다면, 호남 민심은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전략적 투표’ 성향 때문이다. 호남은 역대 선거 때마다 될 사람을 적극 지지하는, 이른바 ‘전략적 투표’를 통해 야권 민심의 방향타 역할을 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대망론도, 노풍(노무현 바람)도, 안철수 현상의 진원지도 모두 호남에서 시작한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재인으로는 안 된다’는 정서가 팽배할 경우 호남 민심이 20대 총선 막판 안철수 신당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4년 7·30 전남 순천·곡성(이정현 새누리당 의원), 2015년 4·29 광주 서구을(천정배 무소속 의원) 보궐선거에 이어 또다시 호남 민심 이반 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광주 8개 지역 중 과반이 탈당한 상태다. 광주에서 촉발한 탈당 도미노 현상이 전·남북을 거쳐 수도권으로 북상할 것이란 전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김한길계는 순차적 탈당을 통해 ‘친노 고립작전’을 펼칠 전망이다. 2014년 4월 2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에 참석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이종현 기자
이미 김한길계는 ‘순차 탈당’을 통해 친노 고립 작전을 개시했다. 김한길계 중 수도권 의원은 서울 광진갑의 김 의원 본인을 비롯해 노웅래(서울 마포갑) 민병두(서울 동대문을) 안민석(경기 오산) 이종걸(경기 안양 만안) 정성호(경기 양주·동두천) 최재천(서울 성동갑) 의원 등이다. 이 밖에 전북 군산의 김관영 의원과 변재일(충북 청원) 이상민(대전 유성) 주승용(전남 여수을) 의원 등도 있다. 이들을 주축으로 한 비주류는 1월까지 순차적 탈당을 통해 친노계를 벼랑 끝으로 몰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범주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사실상) 책사인 김한길 의원 작품이 아니냐”며 “비주류 의원들이 집단 탈당하면, 컨벤션효과가 일시에 떨어질 수 있으니까, 순차적으로 탈당해 당을 휘두르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김한길계의 집단 탈당설을 흘리면서 안철수 신당 ‘플랜 B’를 가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당 안팎에선 김 의원과 이종걸 원내대표, 박지원 의원 중 한 명은 2월 안철수 신당 창당 직전까지 새정치연합에 잔류, 친노계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당의 원심력에 불을 지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이 모든 것은 20대 총선 때 최대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노림수다.
그 이후엔 안철수 대권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고리는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다.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때 1·2위 후보자를 대상으로 2차 투표를 진행, 최종 당선자를 가리는 제도다. 유럽의 다당제 구조에선 일반화된 선거제도다. 거대 양당 체제의 공간을 노리는 안 의원으로선 최상의 선거 룰인 셈이다. 안철수 대권 프로젝트의 핵심인 결선투표제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안철수 신당이 최소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하면 총선 이후 다당제를 전면에 내걸고 경쟁적 정당체제를 주창한다. 특히 대통령제인 한국 정치에서 다당제가 구현되려면, 결선투표제는 필수라는 논리를 편다. 새정치연합 지지층에도 1차는 지지성향대로, 2차는 전략적 투표를 하면 묻지마식 선거연대 없이 ‘반새누리’ 전선을 확장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정의당 등 현재의 제3당이 지역구는 ‘제1야당’, 비례대표는 ‘소수정당’에 투표해달라는 논리와 같다.
이는 2013년 당시 안철수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이었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주장한 안이기도 하다. 안 의원도 2014년 2월 민주당과 통합 직전까지 “정공법으로 제도 개혁에 더욱 관심을 둬야 한다”며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개혁,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 도입, 다당제 정착을 위한 제도적 개편 등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제대로 보완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안 의원 측 관계자도 “내부적으로 결선투표제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안철수 대권 프로젝트는 ‘안철수 탈당→2월 독자신당 구축→인재영입을 통한 세 확장→20대 총선 최소 원내교섭단체 구성→결선투표제 등 정치혁신 고리로 대권열차 탑승’이라는 단계적 전략이다. 안철수 대권 프로젝트 성공 가능성은 4개월 뒤 판가름 난다. 그 첫 번째 단추는 안철수 신당의 2월 창당의 현실화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