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4일 인천아시안게임에 참석 차 방한한 북측 고위층 대표단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가운데),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오른쪽) 등이 남쪽대표단과 오찬을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통전부는 지난 1977년, (공식적으론 김일성의 교시겠지만) 김정일의 직접 지시에 의해 1978년 1월 정식 조직됐다. 애초 이름은 ‘문화연락부’였고,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83년에 이르러서였다. 남북 대화와 같은 공개적인 협력 사업은 물론 대남·해외 공식 및 비공개 공작사업, 선전·심리 사업, 우상화 교육 사업 등 종합적인 대남 관련 공식부서로 설립됐다.
제1대 통전부장으로 지난 1991년 사망 전까지 조직을 이끌었던 허담은 명실상부 북한 최고의 1세대 외교통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 연재를 통해 몇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외교통 허담은 당의 장성택, 군의 오극렬과 함께 김정일의 세습 안착을 이끌었던 세 명의 최측근 세력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이전에 대남 관련 비서로 류장식 연락부장이 있었다. 하지만 류장식은 1976년 6월 김정일의 후계자 옹립을 반대했던 김동규 전 부주석과 함께 숙청됐다.
당 국제담당비서와 대남담당 비서, 북일 수교회담 책임자, 북미 고위급 회담 단장 등을 역임한 김용순 제2대 통전부장은 허담 이후 대남·대외 정책을 수행한 북한의 대표적 외교 전략통이었다. 그는 지난 2000년 6·15 정상회담 당시, 남북 정상들의 환담 자리에 유일하게 배석했던 인물로도 유명하다. 특히 김용순은 숙청된 장성택의 숙적이었다는 점에서 주요 인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통전부를 이끌고 있는 김양건 제3대 통전부장은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 최고 실세 중 한 사람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김양건은 1970년대 당 국제부에서 엘리트 외교관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책임부원(지도원), 유럽과장 등을 거쳤으며 1997년 당 국제부장, 국방위 참사를 역임한 뒤 현재까지 통전부를 이끌어오고 있다.
김양건은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단으로 남한을 방문한 바 있으며, 지난해 10월엔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귀빈으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전 근로단체 담당 비서와 함께 다시 한 번 남한을 다녀갔다. 그 만큼 국내 언론에 노출 빈도가 높았던 만큼 그는 북한 인사 중에서도 익숙한 사람이다.
김양건이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 된 데에는 역시 엘리트 외교관으로서 실력이 주된 이유다. 단, 그의 출신 성분도 무시하지 못한다. 특히 그의 형은 일명 ‘낙동강 줄기’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낙동강 줄기란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까지 남하한 북한군 소속의 인사들을 말한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김양건의 형은 당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왔던 5군단 군의부장으로 참전했다. 이후에도 그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동생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활동했다. 정확한 사실이 확인된 건 아니지만, 김양건의 부인 역시 김 씨 일가의 친인척 관계에 있다는 설도 존재한다.
양지와 음지를 불문하고 대화와 공작 등 거의 모든 대남 관련 프로파간다(선전·선동) 활동을 기획하고 통제하는 통전부 내부에는 상당히 복잡다단한 산하 조직들로 이뤄져 있다. ‘직접침투과’ ‘남북회담과’ ‘해외담당과’ ‘조국통일연구원(남조선연구소)’ 등은 그나마 국내에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조직이다.
‘직접침투과’는 소위 말하는 대남 공작원들의 침투 및 파견을 담당하는 부서다. ‘해외담당과’는 해외 한국인 유학생 포섭과 조총련을 포함한 재외 한인 조직들의 조직화 활동을 꾀한다. ‘조국통일연구원’은 대남 공작·포섭 활동에 있어 일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다. 한국의 각종 정보들을 분석해 자료집을 내고 교육을 실시하는 대부분의 활동을 기획하고 지도한다. 여기에 일명 6과라고도 불리는 ‘외부단체과’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한국민족민주전선, 해외동포영접위원회, 재일평화통일촉진협의회 등 외부단체를 주관하는 전문 부서다.
이러한 조직 외에도 통전부에는 몇몇 부속기관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부속기관으로는 40호실, 101연락소(현재 주요 해킹 관련 부서로 전환), 310연락소, 4호 청사, 평양학원(비로봉연락소) 등이 있다. 40호실은 삐라를 포함한 선전물·출판물을 제작하는 전문부서이며 101연락소는 공작활동에 필요한 여권, 신분증 등을 위조하는 전문 부서다. 최근 조금씩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310연락소는 휴전선 인근에 10개 정도의 기지를 통해 대남 선전물을 살포하는 일을 진행한다.
4호 청사는 한 마디로 대남·해외 공작 활동에 있어서 통전부의 통신 및 무선 활동을 진두지휘하는 전문 부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곳에서는 위성중계시설, 무선탐침시설, 전신시설 등 각종 통신전문시설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평양학원은 일종의 공작원 양성 전문교육 기관이다. 현재는 주로 일본을 포함한 제3국 침투 공작원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밖에도 최근 점점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통전부 산하 부속 무역회사들도 지켜볼 대상이다. 조선장미무역총회사를 비롯해 각종 화장품회사, 경공업 및 전자 제품 수출입 회사들이 이 통전부 산하에서 영리활동을 꾀하고 있다. 외부에서 목격되고 있는 북한의 남문무역, 와룡, 대길, 상명 등의 무역회사가 모두 통전부 산하 회사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 부분에서 특히 유심히 살펴볼 대목이 바로 내각 225국이다. 오랜 기간 중앙당 대외연락부 혹은 사회문화연락부란 이름으로 활동해온 이 조직은 대남 및 해외 공작활동을 꾀해왔다. 그런데 이 225국이 지난 2009년 정찰총국 개편 당시 통전부 산하로 귀속됐다. 일부 국내 전문가들은 통전부와 225국의 활동을 아직 개별적으로 파악하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 현재 225국을 통제하고 관할하는 주체는 통전부다. 지난 2014년까지 225국을 이끌어온 강관주 국장은 그해 11월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며, 현재는 공석으로 전해진다. 다만 아직 내각 225국의 활동 보고와 결과는 통전부 부부장 격인 225국 국장(강관주 이후 미상)이 직접 보고하고 있다. 형식적으로 통전부 산하에 225국 지도과가 있지만 기존 통전부 부서들과의 협력적 연락관계만 통보하는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12월 24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개성총국에서 이희호 여사에게 전달하는 김정은의 친서를 대독하고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김정은 시대 들어 통전부의 성격이 점점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통전부는 여러 대남 활동 중에서도 전통적인 공작활동에 비중을 많이 둔 조직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통전부의 운영방식은 점차 공작활동의 비중을 줄이고 경협 및 대북지원을 유도하는 대남 공개 활동을 꾀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변화는 2000년 남북회담 이후 경협이 활성화되면서 점차 시작됐지만 최근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통전부 산하의 정통적인 공작담당 부서들의 비중은 점차 줄고 경협과 무역 사업을 관장하는 실익 부서들이 점차 뜨고 있는 추세다. 1997년 2월 대남 담당과의 이한영 저격 사건 이후 북한은 사실상 이렇다 할 공작활동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남한에서의 공작활동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되레 남파 공작원들이 현실에 눈을 떠 전력에서 이탈해 귀순하는 사례도 보고되면서 위험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꼭 필요할 경우, 남한 본국으로의 침투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정보 취득이 용이한 중국 등 제3국 루트를 활용하는 추세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중앙무대서 사라진 최룡해 생존 신호 포착 친딸이 대외활동…숙청 안됐단 반증? 지난 11월 7일, 리을설 전 호위사령관의 사망 당시 장의위원회에 불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실각설이 나돌던 최룡해 당 비서가 생존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최룡해의 친딸과 관련한 활동 사안이 최근 필자에 의해 포착됐기 때문이다. 최룡해 당 비서 만약 최룡해가 정치적 과오로 숙청되거나 실각됐다면, 친인척들의 대외 활동은 어렵게 된다. 물론 이러한 판매대금 역시 못 받을 확률이 높고 심한 경우는 아예 동결된다. 허나 최룡해의 친딸은 아버지가 중앙무대에서 사라진 뒤에도 현재 정상적인 대외 무역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러한 단서를 종합해 본다면, 현재 잠시 중앙무대에서 사라진 최룡해는 단기적인 자숙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14년 초, 이미 한 차례 실각돼 자숙을 경험한 바 있는 최룡해가 조만간 당직에 다시금 복귀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최룡해는 이전 북한 청년동맹 제1비서 재직 시 중국 공청(공산주의청년동맹) 관련 대중라인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최룡해의 실각은 김정은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최근 모란봉악단 귀국 사건은 그의 복귀를 촉구할 소지가 다분하다. [걸] |
필자 이윤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