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까지만 해도 연봉 상한선 30만 달러에 묶여 있던 외국인 선수들이 이제는 연봉 200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는 니퍼트, 로저스, 테임즈(왼쪽부터).사진제공=두산 베어스·한화 이글스·NC 다이노스
# 몸값은 원래 ‘눈 가리고 아웅’
한국 프로야구 규약에는 1999년 처음으로 외국인선수 고용 규정이 등장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는 연봉 상한이 20만 달러였지만, 2004년 12월에 당시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이었던 30만 달러로 개정됐다. 이후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은 50만 달러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한국의 용병 몸값 상한선은 2013년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한 구단 스카우트 담당자는 “한국 프로야구도 성장을 거듭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통하려면 최소한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들어가 있는 선수를 잡아와야 한다. 그런 선수들을 30만 달러에 데려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했다. 게다가 내 눈에 괜찮다 싶은 용병은 남의 눈에도 좋아 보이기 마련이다. 극소수의 용병 풀 안에서 국내 구단들뿐만 아니라 일본 구단과도 영입 경쟁을 펼쳐야 했다. 계약 성사 직전에 돈 보따리를 앞세운 일본 구단에 선수를 뺏긴 한국 구단이 한둘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용병들의 몸값도 뛰었다. 별다른 메이저리그 경력 없이 100만 달러를 요구하는 용병들도 등장했다. 이면계약이 점점 더 늘어갔다. 구단의 공식 발표 연봉을 곧이곧대로 믿는 야구계 인사도 없어졌다. ‘누가 사실은 얼마를 더 받았다더라’는 얘기는 비밀 축에도 못 꼈다. 오히려 ‘발표 그대로’ 30만 달러만 받고 온 용병들이 더 화제에 올랐다.
예상치 못한 경로를 통해 실제 몸값이 알려지는 일도 허다했다. 미국에서 제법 이름을 알렸던 선수들이 한국에 진출하면서 현지 언론도 그들의 이적 소식을 전하기 시작한 탓이다. 일례로 한화는 2012년 12월 볼티모어 메이저리그에서 뛴 왼손투수 대나 이브랜드를 총액 30만 달러에 영입했다고 발표했지만, 볼티모어 지역신문은 “이브랜드가 한화와 최대 90만 달러에 계약했다. 보장금액 67만 5000달러에 성적에 따른 보너스 22만 5000달러를 챙길 수 있다”고 전했다. 또 올해 kt로 유턴했던 저스틴 저마노가 삼성에서 뛰다 보스턴으로 돌아갔을 때도, 보스턴 지역신문은 “저마노가 삼성의 100만 달러 제안을 거부한 채 보스턴으로 왔다”고 썼다.
# 공식 발표와 진짜 계약서 사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 발표는 늘 규약에 따라야 했다. 외국인선수는 첫 해 옵션을 포함해 최대 30만 달러(복리후생비 제외)를 초과해 받을 수 없고, 재계약하더라도 인상률이 25%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버젓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발표액과 실제 지출 금액 간의 괴리는 점점 커지기만 했다. 2011년 1월 두산이 더스틴 니퍼트를 영입했을 때도 그랬다. 키가 203cm에 달하는 장신의 강속구 투수, 만 30세의 젊은 나이, 게다가 바로 직전해인 2010년에 텍사스 유니폼을 입고 월드시리즈까지 뛰다 온 경력까지. 30만 달러로 데려올 수 없는 선수라는 것을 누구나 알았다. “두산이 진짜로 과감한 투자를 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100만 달러의 벽이 깨졌다” 등의 풍문이 나돌았다. 물론 그때도 두산은 계약금 10만 달러와 연봉 20만 달러를 포함한 총 30만 달러의 조건에 니퍼트와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다른 구단도 마찬가지다. 용병 몸값 상한선 조항이 마지막으로 적용됐던 2013년 시즌에 앞서 LG 벤자민 주키치와 레다메스 리즈는 나란히 37만 5000달러, 니퍼트는 41만 달러, 한화 데니 바티스타는 30만 달러, 롯데 라이언 사도스키는 44만 달러에 잔류 계약을 했다. 그러나 외국인선수 관련 정보에 정통한 야구 관계자들은 “니퍼트는 아예 2년간 200만 달러가 넘는 계약을 맺었고, 리즈도 100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귀띔했다. 다른 선수들도 발표 금액보다는 훨씬 많이 받았다는 게 기정사실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한때는 100만 달러가 마지노선으로 여겨졌지만, 언젠가부터 이름값에 따라 200만 달러를 넘어 300만 달러까지 요구하는 용병들도 드물게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탄했다.
# 몸값 상한선의 허와 실
이 때문에 외국인선수 연봉 상한선에 대해서는 늘 회의적인 시선이 쏠렸다. 안 그래도 유명무실한 조항인 데다, 날이 갈수록 현실과의 격차가 더 커졌던 까닭이다. 많은 야구 관계자들은 “차라리 이럴 바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상한선을 폐지하고 좀 더 좋은 용병을 데려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구단과 용병 전문가들의 시각은 또 달랐다. 용병 스카우트와 통역으로 잔뼈가 굵은 한 관계자는 “어차피 트리플A에서 아무리 많은 연봉을 받더라도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는 어렵다.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을 포기해야 하는 시점이 되면 많은 선수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다른 리그 진출을 추진하기도 한다”며 “올 선수는 어차피 오게 돼 있다. 상한선이 있으면 적어도 ‘우리가 이 규정을 어기고 이만큼을 더 챙겨 준다’는 식의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또 다른 용병 담당 관계자는 “이미 한국 사정이 에이전트들에게 모두 알려졌기 때문에 아무도 30만 달러라는 상한선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미 기준선이 한참 높아진 지 오래”라고 역설했다.
KBO 역시 후자와 같은 의견에 결국 동의했다. 지난해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선을 폐지했다. 그 후 첫 용병 계약이 발표된 사례가 바로 한화의 앤드류 앨버스였다. 당시 앨버스의 몸값은 총액 80만 달러. 이와 동시에 그동안 한국 구단과 계약했던 용병들의 몸값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됐다. 앨버스보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더 많거나 이미 국내 무대에서 검증을 마치고 재계약한 선수들은 80만 달러를 훌쩍 넘어 100만 달러 이상의 몸값을 받았다는 계산도 가능해진 것이다.
# 몸값 무한 경쟁 시대의 자화상
한때는 용병들의 몸값 때문에 국내 선수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까 우려하는 관계자들이 많았다. 이제는 국내 선수들의 가치도 만만치 않게 껑충 뛰었다. FA 대박 한 번 터트리면 용병 부러울 게 없다. 토종이든 외국인이든 관계없이 야구만 잘하면 엄청난 몸값을 받을 수 있는 시장이다. 눈치를 봐야 했던 규약도 없어졌으니 경쟁도 불이 붙었다. 앞서 언급했듯 로저스가 190만 달러를 받은 게 그 증거다. 게다가 로저스는 지난 8월 뉴욕 양키스에서 한화로 오면서 70만 달러(공식 발표 금액)를 받았다. 그때도 뉴욕 언론은 “로저스가 100만 달러 이상을 받고 한화로 갔다”고 썼다. 그 보도가 사실이라면, 선발 등판 한 경기당 1억 원꼴을 받는 셈이다. 이번 계약을 놓고도 벌써 이런저런 풍문이 떠돌고 있다. “1년 190만 달러가 아니라 300만 달러다” “2년간 600만 달러에 계약했다” 등의 내용들이다. 당연히 한화는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로저스가 한국에 오자마자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냈다 해도 너무 위험부담이 큰 금액이라는 것이다.
일부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상식적으로 로저스는 올해 2개월 동안에만 100만 달러를 받은 선수다. 한 시즌(6개월)을 풀로 뛰었다고 생각했을 때 1년에 300만 달러가 된다. 로저스가 마지막 2개월간 보여준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면, 고액의 국내 투수 FA들과 비교했을 때 충분히 그 정도 모험을 걸어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런 사정은 한국에서 함께 뛰고 있거나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다른 용병들이 그 누구보다 잘 안다. 한 선수가 몸값의 기준선을 올려놓으면, 다른 외국인 선수들과 타 구단들의 협상은 출발점부터 달라진다. 실제로 2015년 한 용병은 후발 주자인 로저스의 월급을 전해들은 뒤 “메이저리그에서는 로저스가 나보다 한 수 아래였다. 나도 보상을 해 달라”고 버티면서 구단의 불펜 전환 요구를 듣지 않고 버텼다. 그 용병은 결국 한국을 떠나게 됐다. 또 아직 한국 무대에서 뛰어 보지 않은 KIA의 새 용병 헥터 노에사는 2016년 한 시즌 동안 170만 달러를 받는다. 2015년 정규시즌 최우수선수인 NC 에릭 테임즈는 150만 달러에 사인했고, 롯데 에이스로 활약한 조쉬 린드블럼은 12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 니퍼트는 이미 2015년 150만 달러를 받았고, 2016년에는 더 받고 싶어 한다.
이뿐만 아니다. 삼성은 2년간 함께 했던 용병 야마이코 나바로와 결국 몸값 부분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2016년 시즌부터 제일기획으로 구단이 이관되면서 이전처럼 과감한 투자는 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FA 박석민도 잡지 못한 마당에, 나바로에게 무모한 금액을 투자할 수는 없다. 반면 2015년 70만 달러를 받은 나바로는 이미 다른 잔류 용병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다 알고 있다. 게다가 일본 구단들도 나바로를 탐낸다. 더 많은 돈을 주는 곳으로 가고 싶은 게 당연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마지노선’이었던 100만 달러가 이제는 A급 용병의 ‘기준선’이 되고 있는 시대. 그러나 손실의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공식적으로 100만 달러 이상을 받은 용병 세 명 가운데 NC 찰리 쉬렉과 LG 잭 한나한은 시즌 도중 퇴출됐다. 나머지 한 명인 니퍼트도 정규시즌의 부상과 부진을 포스트시즌에 보여준 괴력으로 간신히 만회했다. 구단들은 그저 점점 더 규모가 커지는 투자를 그만큼 큰 수익으로 돌려받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배영은 스포츠 자유기고가
용병 다년계약제 폐지 논란 ‘FA’밴 헤켄에 이적료…이게 뭥미? 일본 세이부로 이적한 밴 헤켄.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일본은 한국보다 용병 활용에 대해 여러 모로 열려 있다. ‘저팬 드림’을 꿈꾸기에 좋은 환경이고, 반대로 생각하면 용병도 ‘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역설적으로 자국 내 야구 인프라가 폭넓게 갖춰져 있고 선수층도 두껍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은 용병을 세 명까지 보유할 수 있고 한 경기에는 두 명만 출전할 수 있지만, 일본은 용병 보유수 제한이 없고 1군 엔트리에도 네 명까지 등록할 수 있다.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무조건 포지션이 달라야 한다는 원칙 정도만 존재한다. 게임 로스터 25명 안에 포함되면, 네 명 모두 한 경기에 출장할 수 있다. 일본 명문 구단들은 용병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기로 유명하다. 마음먹고 달려들면 국내 구단들이 이길 수가 없다. 아예 일본 무대에 진출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에 오는 용병들도 적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일본은 공식적으로 다년 계약까지 허용한다. 용병 신분인 선수들이 1년이라도 더 미래를 보장 받고 좀 더 많은 목돈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다. LG에서 뛴 적이 있는 로베르토 페타지니는 2003년과 2004년 야쿠르트에서 뛰면서 2년간 매년 7억2000만 엔을 받았다. 역대 일본 용병 연봉 1위다. 삼성 이승엽은 2007년 요미우리에서 6억 5000만 원을 받아 역대 용병 연봉 2위로 기록돼 있다. 2014년까지 삼성에서 뛰었던 릭 밴덴헐크는 2015년 소프트뱅크와 2년간 4억 엔의 계약을 맺고 일본으로 떠났는데, 실제 받게 되는 금액은 발표된 액수의 두 배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제 한국도 다년 계약 제한을 풀고 시장을 더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용병들의 몸값 상한선이 그랬듯, 이제 다년 계약 금지 조항도 실효성을 잃었다는 의미에서다. 실제로 니퍼트, 찰리, 넥센 앤디 밴 헤켄, 로저스 등 국내에서 수준급 활약을 했던 선수들은 대부분 다년 계약설을 피해가지 못했다. 심지어 넥센은 밴 헤켄이 2015 시즌 직후 일본 프로야구 세이부와 계약하면서 이적료 명목으로 30만 달러를 받았다. KBO리그 용병은 1년씩 계약하는 게 원칙인데, ‘자유계약선수’인 밴 헤켄의 이적에 이적료가 발생하는 상황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넥센과 밴 헤켄이 이미 다년계약을 해놓았기에 벌어진 일이라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최근 열린 KBO 윈터미팅에서 “차라리 외국인 선수의 다년 계약 제한을 없애자”는 의견이 나온 이유다. 물론 반대 의견도 여전하다. 한 야구 관계자는 “다년 계약 제한을 풀면, 연봉 상한선과 마찬가지로 구단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중요한 협상 카드 하나를 잃게 된다. 이러다 몸값 인플레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차피 일본 구단과의 ‘머니 게임’에서 이기지 못할 바에야 최소한의 견제 장치라도 마련해둬야 한다는 얘기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