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문턱에 다가선 어느 일요일 오후 그 시설의 문에 들어섰다. 빛바랜 회색 건물 두 동이 괴괴한 침묵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건물의 지하에서 올라오는 실낱같이 가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나지막한 소리로 기도하고 있었다.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도 일자리를 얻지 못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회개하지 못하고 모두 교도소까지 갔다 온 죄인이고 신용불량자들입니다. 죄인인 우리들이 고난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지하실에서 하는 그들만의 모임이었다. 진솔한 고백이었다. 그 시설을 둘러보았다. 불기 없는 찬 방에 한 노인이 얇은 요를 깔고 책을 보고 있었다. 한 교도관이 출소하는 그 노인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인의 눈빛은 ‘난 당신이 추측하는 것과는 달라’라고 개결한 자존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독립투사인 윤봉길 의사의 조카였다. 서울대 법대 출신도 있었다고 했다. 성경을 탐독하다가 집총거부의 확신범이 되어 감옥에 갔다가 그곳으로 흘러들었다는 것이다.
끔찍한 죄인들만은 아니었다. 차가운 비가 내리는 인생 산맥을 걷다보면 누구나 절벽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 깊은 골짜기에서 살려달라는 그들의 손을 뿌리치는 사회는 좋은 세상은 아니다. 그 시설을 운영하는 가구점 남자는 어느새 칠순이 훌쩍 넘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 오늘도 가구점 골방에서 성경을 읽고 있다. 그는 10년 전부터 중풍에 걸려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 가구점이 힘들어져도 그 부부는 지금도 변함없이 돈을 벌어서 대고 있다.
그에게 왜 하필이면 전과자냐고 물었다. 되갚을 능력이 없는 가장 비참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빛도 없이 이름 없이 감사하며 섬기는 성자 부부였다. 그날 난 지하실에 모여 있는 그들에게 밥 다음으로 필요한 건 그들의 마음을 녹여줄 따뜻한 온기라는 걸 알았다. 온기를 찾아 나섰다. ‘사랑으로’라는 곡으로 유명했던 듀엣 ‘해바라기’가 가서 노래해 주겠다고 했다. 함께하는 세상이라야 서로 체온이 전해져 따뜻해진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