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1일 발표한 검찰 고위 인사는 이 한 문장으로 설명된다. 그만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반면 김수남 검찰총장은 가장 권한이 강력할 때인 취임 초기인데도 인사를 ‘핸들링’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와중에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오히려 호남 출신 일부를 챙기면서 실속을 찾았다는 후문이다.
검찰 고위급 인사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반면 김수남 검찰총장의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왼쪽부터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 김수남 검찰총장, 김현웅 법무부 장관.
검사장급 이상 인사안이 공개된 후 검찰 안팎에선 “우병우가 참 무섭다”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에 충성심이 있으면서 내부 신망이 있고, ‘사고’를 칠 것 같지 않은 인사를 절묘하게 찾아냈다는 이유에서다. 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검찰 내에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이영렬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을 보자. 인사 발표 전 언론에서는 연일 김주현 법무부 차관과 김진모 인천지검장이 중앙지검장 자리를 놓고 물밑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결국 최종 낙점을 받은 이는 이 지검장이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충성심은 있으면서도 내부 신망이 두텁고, 사고 칠 위험이 없는 인물이 바로 그였던 셈이다.
이 지검장 낙점 배경을 놓고선 여러 해석들이 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설’이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 한 인사는 “VIP(박근혜 대통령)가 매우 좋아한다는 얘기가 언제부턴가 들리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두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연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이유로 그냥 낭설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의 보직 관리가 그렇게 친분설을 내세울 정도로 잘 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논란을 최소화하다 보니 이 지검장이 낙점됐다는 분석에 오히려 힘이 실린다. 사법시험 4년 유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당시 김주현 차관이 중앙지검장으로 올 경우 검찰 안팎에서 반발이 적지 않을 수 있었다. 또 다른 후보였던 김진모 지검장의 경우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사건 당시 청와대 민정2비서관이었던 만큼 이 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이렇듯 논란이 있는 이들을 하나씩 배제하다보니 최전방 야전사령관에 이 지검장이 ‘간택’됐다는 것이다. 한 검찰 고위 인사는 “이 지검장이 VIP와 친하다는 얘기는 근거가 없다”며 “결국 논란이 되는 사람을 피하려다 현 정부 입장에선 안성맞춤인 사람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지검장은 취임 일성으로 ‘법질서 확립’을 강조, 시작부터 청와대와 코드 맞추기를 하려고 한다는 논란이 일었다.
사법시험 폐지 유예 방안을 직접 발표했던 김주현 전 차관을 대검 차장에 앉힌 것도 우 수석의 힘이라는 분석이 힘을 받는다. 사법시험 폐지 유예 방안을 실무에서 담당했던 봉욱 법무실장은 동부지검장으로 보내 사실상 좌천시켰으면서 김 차장에게는 오히려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혔다. 대검 차장은 평소 총장 대신 청와대와 소통하는 만큼 그 자리에는 아무나 보낼 수가 없다.
검찰 조직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우 수석이나 청와대가 김 차관을 엄청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아니냐”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봉 실장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김 차장을 자신의 전공 분야와 꼭 맞는 대검 차장으로 간 것은 우 수석 본인이 직접 뛰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김 차장이 대검으로 오면서 가장 불편할 법한 이는 김수남 총장이다. 평소 검찰 내에선 “김 총장이 김 차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 불편해 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돌았다. 김 차장이 청와대와 너무 가깝다는 게 김 총장으로선 적지 않은 부담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현직 총장 한 사람에 ‘차기 총장 예비군’ 두 명(김주현 차장, 박성재 서울고검장), 이영렬 지검장 등이 모두 서초동에 포진하면서 앞으로 검찰 내부에서 권력 암투가 더욱 적나라하게 벌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서초동과 거리를 두고 있는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이번 인사 과정에서 사법연수원 17, 18기들에게 직접 나가라고 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철이 되면 통상 법무부 검찰국장이 검찰 선배들에게 전화를 해서 옷을 벗기는 것과는 달리, 김 장관은 직접 사실상 독촉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나가달라, 남아도 보직에 신경 써줄 수 없다, 내년을 보장해줄 수도 없다’는 치명적인 세 가지 얘기를 하면서 말이다.
왼쪽부터 김주현 대검찰청 차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박성재 서울고검장, 이창재 법무부 차관. 우병우 민정수석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렇듯 적극적으로 움직인 덕인지 김 장관은 일부 호남 출신 인사들과 양부남 광주고검 차장을 승진시키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시절 기조부장을 했던 이창재 북부지검장을 법무부 차관에 기용한 것도 김 장관의 입김이라는 후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 차관은 채동욱 전 총장 체제에서 기조부장을 하면서 ‘채동욱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는데 그와 관련된 오해를 풀었으니 차관으로 갔을 테고, 그를 위해 김 장관이나 본인이 적극적으로 청와대에 얘기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검찰 내에선 실세가 아닌 김 장관이 이번에 예상외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챙겼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의 평소 스타일상 그렇게까지 하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은 주말이나 휴일에는 직원들 근무시키는 게 미안해 관용차를 타지 않고 택시를 이용할 정도로 소박한 성품을 갖고 있다.
우 수석의 대학 동기인 최윤수 부산고검 차장검사 역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고, 우 수석과 19기 동기이지만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조은석 검사장은 고검장 승진에 물을 먹고 법무연수원 부원장으로 부임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 ‘김수남 사람’이라고 꼽을 수 있는 이가 거의 보이지 않고 우 수석과 친분이 있거나 황교안 국무총리의 성균관대 라인 등이 고검장이나 검사장으로 승진한 것으로 보이는 게 특징”이라며 “이러니 결국 검찰 인사는 정권에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김근호 언론인